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을 공약했다. 그러나 당선 직후 건설 중단 문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 그 결정에 따르겠다고 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의 시민참여단의 공론 결과의 핵심은 다음 두 가지였다. 첫째, 신고리 5·6호기의 건설을 재개한다(재개 59.5%, 중단 40.5%). 둘째, 핵발전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에너지 정책을 추진한다(원전 축소 53.2%, 원전 유지 35.5%, 원전 확대 9.7%).
공론화 과정과 결과를 둘러싼 논쟁은 치열했지만, 정부는 "가장 광범위한 대표성을 갖추고 체계적으로 실시된 사실상 첫 공론조사"로 "대의 민주주의를 보완하고 숙의(熟議) 민주주의를 본격 추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에너지전환(탈원전) 정책 로드맵을 수립하고, 전력수급기본계획과 에너지기본계획에 이를 반영했다.
윤석열 정부가 집권하자 2017년 숙의 공론을 통한 제도화 실험은 끝이 났다. 다음 이재명 정부는 바람직한 에너지믹스 정책토론회(2025년 12월 30일 및 2026년 1월 7일)와 대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원자력 발전의 필요성은 전화면접 89.5%, ARS 82%로 나타났다. 신규원전 계획 추진 찬성엔 전화면접 69.6%, ARS 61.9%로 모두 높게 나타났다. 이런 배경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윤석열 정부 시절 수립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4~2038년)의 신규원전을 계속 추진할 계획을 밝혔다.
특정 이슈에 대한 여론 분포는 흐름과 국면에 따라 바뀌곤 한다. 따라서 여론 추이를 입체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최근 몇 년 동안의 핵발전 정책에 대한 일반 여론 지형은 이번 여론조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조사의 공식·비공식적 의도와 설문조사 방식에 따라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2026년 행태의 진실은 "의견수렴의 방식이 아니라, 수치로 포장된 정책 정당화"를 위한 원전 추진 여론조사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공론화(公論化)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단순 여론조사가 아닌 숙의성을 보장할 수 있는 공론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냐고 질문할 수 있다. 결점 없는 공론조사가 존재하긴 어렵겠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2017년의 실험이 왜 2026년에는 시도조차 되지 않았을까, 이런 의문이 든다. 사실 대의 민주주의를 보완하고 숙의 민주주의를 무조건 추진해야 하는 이유는 없다. 정치사회를 구성하고 대의 권력기관을 담당하는 정당, 그리고 선거 사이클에 위임 권력을 행사하는 행정부 역시 여러 이유에서 각각 당론과 정책 방향을 바꾼다.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과정을 통해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야말로 정당처럼, 국가처럼 보이게 하는 정치적 기제이자, 그 존재 이유이다.
그렇다면 2017년 공론화는 무엇이었는가? 이 질문에 답이 없다. 타운홀 미팅을 즐기는 대통령과 정부가 내세우는 '원전의 탈정치화'는 에너지 전환의 치열한 갈등을 회피하고 기술·경제관료적 우위를 지속하고, '전환의 정치'를 탈정치화하려는 지독한 무책임일 뿐이다. 우리는 도구적 공론화(空論化)라는 그 은폐된 답을 다른 곳에서, 여러 시간대에서 찾을 수 있다.
에너지·기후 의제에서 정부가 주도하거나 주최한 공론화는 '사용후핵연료 처리 공론화위원회'(2013~2015년)와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 위원회'(2019~2021년)가 대표적이다. 방사성폐기물법과 고준위방사성폐기물법에 공론화 조항이 명시되어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기후환경회의'는 국민정책참여단(2019/2020년)을 운영했다. 2050 탄소중립위원회의 '탄소중립시민회의'(2021년)는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확정하는 데 가동됐다.
한편, 현 정부는 전 정부가 추진하던 '기후위기대응댐' 14개 중 7개를 중단하고, 나머지 7개에 대해서는 대안을 검토하거나 공론화를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정책토론회라는 일련의 '대국민 공개논의'를 통해 2018년 순배출량 대비 2035년 53~61%로 확정했다. 공론화 및 숙의적 시민참여 모델이 제법 다양하지만, 결과적으로 토론회와 공청회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절차적 정의 측면에서 볼 때 '탄소중립시민회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른 한편, 2월 3일에 국회가 주도하는 '기후위기 대응 방안에 대한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한다. 헌재의 기후소송 판결(불합치)에 따라 탄소중립기본법을 개정해 2031~2049년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을 명시해야 한다. 이외 개정 사항도 적지 않고 입법권 확대를 위해서는 입법 과정에서 공론화 방식, 나아가 '기후시민의회'를 도입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공론화위원회, 자문단과 의제숙의단의 구성과 운영을 둘러싼 비판이 거세다. 두 달 동안 진행될 시민대표단의 공론 과정이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이런 우려도 마땅히 제기된다.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라는 심의·의결 기구가 존재하는데, 굳이 공론화를 통해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를 반영해야 할까? 참여·직접 민주주의라는 원론적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그런데 '탄소중립시민회의'의 성과를 계승하고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그 성과와 한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이런 궁금증이 든다. 최근 국회와 정부는 이런 공론장을 제도화하려고 한다. "시민들이 기후위기 대응 등 국가정책과 관련한 사항을 학습하고 토론하여 모인 의견을" 제안하는 "기후시민회의"를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에 설치하는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이 제출된 상태이다. 위원회는 공론화 목적, 대상, 결론 도출 방식 등을 반영한 공론화 모델을 설계하는 연구도 완료했다. 필요에 따라 일회적으로 진행되기보다는 상시로 운영되면, 체계성과 안정감을 기대할 수 있다.
국내외 유관 사례를 검토해 보면, '기후시민의회'를 통해 에너지·기후 관련 법과 정책을 개선하는 데 의미 있는 성과를 일부 확인할 수 있다. 2016년부터 공공기관의 기획, 사회적 요인, 국민 청원, 연정 프로그램 또는 시민사회 및 연구기관의 자발적 추진 등 여러 배경에서 국가 및 지역 단위에서 '기후시민의회'가 확산되고 있다. 반면 정치 과정에서 시민참여 활성화를 명분으로 하지만, 정당 체계와 선거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고, 엘리트 정당 및 선거제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시민의회가 활용된다는 지적도 타당하다. 따라서 제한적 영향력 및 반영이라는 한계에도 주목해야 하고, 전통적 의사결정 과정과의 관계를 성찰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 세 가지 논점에 집중해야 도구적 공론화를 전환적 공론화로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첫째, 시민의회 자체에 내재하는 설계 쟁점과 함께 이를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제도적 맥락, 그리고 위원회와 협의체 등 기존 거버넌스를 포괄하여 접근하는 통합적 설계 쟁점을 검토해야 한다. 둘째, 정적이거나 동적인 여론 분포를 확인하고 해석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환의 주체와 공간을 형성하여 대안적 '기후시민의회'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민주적 잠재력을 실현하는 급진적 비전을 갖춰야 한다. 셋째, 올해 지방선거에서 지역 스케일의 '기후시민의회' 도입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될 필요가 있다. 이미 일부 지역에서 여러 실험이 시도되었고 경험 성과도 일정하게 축적돼 있기 때문에, 토양이 척박하지 않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은 '기후시민회의가 "K-기후공론장의 성공모델"이 될 것이라는 전환 판타지에서 벗어나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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