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전시현 기자 | 우리 금융당국이 검토 중인 가상자산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과 은행 중심의 스테이블코인 발행 규제안을 둘러싸고 업계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한국핀테크산업협회(이하 핀사협)와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이하 인기협)가 잇따라 성명을 발표하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면한 과잉규제"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 핀테크·IT업계, '사유재산권 침해' 반발
인기협은 4일 성명서를 통해 "가상자산거래소의 대주주 지분 제한 추진과 은행 중심의 스테이블코인 도입 움직임에 강력히 반대한다"며 "이러한 금융당국의 시도에 대해 즉각 중단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인기협은 "가상자산 시장은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 스타트업이 자본과 위험을 감수하며 일군 산업"이라며 "시장이 형성된 후 사후적으로 규제를 도입해 주식 강제 매각을 요구하는 것은 명백한 사유재산권 침해이자 법적 신뢰 보호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보다 하루 앞선 3일, 핀사협은 호소문을 발표하며 "금융당국이 검토 중인 디지털자산거래소 소유 분산 규제(최대주주 지분 15~20% 제한)가 현실화될 경우 대한민국 디지털금융 혁신과 글로벌 경쟁력에 중대한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핀사협은 "재산권 침해, 소급입법 금지, 신뢰보호 원칙 위반 등 법적 논란과 해외 유사 사례와의 형평성 문제 역시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혁신 산업의 핵심 동력인 지배구조와 리더십을 행정적으로 조정할 경우 산업 전반의 의사결정 속도와 책임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우려"라고 강조했다.
◆ '51% 룰', 테더·서클과 정반대 길 가나
금융위원회는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 과정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의 법정 자본금 요건을 50억원 이상으로 하고 은행이 발행 컨소시엄 지분의 과반(50%+1주)을 보유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51% 룰'은 금융 안정성을 이유로 은행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의 통제권을 쥐어야 한다는 논리에 기반한다.
현행 은행법 37조에 따르면 개별 은행은 비금융회사에 15%까지만 투자할 수 있어 이 방안이 도입될 경우 4개 이상의 은행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합산 기준으로 과반 지분을 확보하는 구조가 예상된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 방향은 글로벌 스탠더드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유럽연합의 가상자산 규제법 미카(MiCA)에 따라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 기관 15곳 중 14곳은 은행이 아닌 전자화폐기관이다. 일본에서도 은행이 아닌 핀테크 기업이 엔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 허가를 받았다. 글로벌 시장에서 시가총액 1위인 테더(Tether)와 2위인 서클(Circle) 모두 은행이 아닌 민간 기업이 발행한다.
◆ 민주당 태스크포스도 문제 제기...지분율보다 기능 분리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도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태스크포스 간사인 안도걸 의원은 지난달 15일 "특정 업역이 지분의 50%를 갖도록 강제한 입법 사례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안 의원은 또 "이런 거버넌스 구조로는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얻고자 하는 혁신과 네트워크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은 은행 지분 51% 요건이 없더라도 준비자산 구성과 환매 절차, 결제 경로 등이 이미 기존 금융 시스템을 거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을 들어 통화·결제 영역에 대한 규율은 일정 부분 작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와 금융위원회가 4일 비공개 회의를 열고 쟁점 조율에 나서면서 규제안의 최종 방향이 갈림길에 섰다. 업계에서는 이번 회동이 디지털자산을 관리 대상으로 볼지 제도권 금융으로 편입할 신산업으로 볼지를 가늠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 전문가들은 은행 지분 51% 요건을 두지 않더라도 통화·결제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규제 설계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은행이나 지급결제 기관의 참여를 의무화하되 지분율은 강제하지 않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 경우 발행 컨소시엄 내에서 은행은 준비자산 예치와 환매 계좌 관리 등 핵심 기능을 맡고 비은행 사업자는 발행·유통과 서비스 설계를 담당하는 구조가 가능하다. 발행·유통과 준비자산 관리, 환매 기능을 분리하는 이 모델은 지분 구조를 기준으로 규제하기보다 기능별 책임을 명확히 나누는 데 초점을 둔다. 이에 대해 금융업계 전문가는 "환매 책임만 명확하면 지분 구조는 부차적 문제"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태스크포스와 금융위의 간극이 얼마나 좁혀질지가 향후 입법 속도를 좌우할 것"이라며 "오는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이번 기회를 놓치면 입법이 하반기 이후로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핀산협 '상장·ESG로 지배구조 개선해야'
핀산협은 국회와 금융당국에 소유 분산 규제보다는 상장 유도를 통한 시장 감시 기능 강화, 책무구조도 도입, ESG 의무 부과, 사외이사 선임 절차의 독립성 강화 등 시장 친화적이고 자율적인 방식을 통해 지배구조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책적 환경을 조성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핀산협은 "산업계와 학계, 법조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여 이용자 보호와 산업 혁신이 조화될 수 있는 합리적인 정책 방향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은행 중심 규제안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핀산협은 성명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성공은 수요 확보와 혁신적 서비스 개발에 달려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IT 기업과 거래소 등 다양한 민간 혁신기업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핀산협은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스테이블코인은 모두 비은행 혁신기업이 주도했다"며 "은행이 과반 지분(50%+1주)을 보유해야만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은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핀산협은 호소문에서 "오늘날 인류는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등 급격한 기술 발전으로 그 어느 때보다 빠른 구조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으며, 금융산업 또한 중앙집중형 장부 체계에서 분산형 디지털 인프라로의 전환이라는 되돌릴 수 없는 흐름 속에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디지털자산은 이미 기존 금융시장과 깊이 결합되었고, 과거 카드사·정산망·가맹점 계약을 중심으로 구성되던 지급결제 구조는 이제 스마트컨트랙트와 블록체인 네트워크 위에서 재구성되고 있다"고 밝혔다.
디지털자산거래소는 단순한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에 머무르지 않는다. 해외 거래소·글로벌 디지털자산과의 관문이고, 실물경제와의 연결고리이며, 국경과 계좌의 장벽을 뛰어넘는 차세대 금융 플랫폼으로 진화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 경직된 규제, 한국 금융산업 구조적 문제 반복 우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규제안이 오히려 한국 금융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반복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핀테크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기존 금융권의 디지털 전환과 해외 진출이 더딘 배경에는 급변하는 금융 환경에 신속히 대응하기 어려운 경직된 지배구조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며 "디지털자산 산업에까지 같은 틀을 씌우려는 것은 혁신의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상자산 업체 대표는 "이번 규제 논의가 한국 디지털자산 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분기점"이라며 "혁신과 안정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균형잡힌 규제 방안이 마련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디지털금융 분야 변호사겸 전문가는 "글로벌 시장에서는 민간 주도의 혁신이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이끌고 있는데, 한국이 은행 중심으로 규제할 경우 결국 갈라파고스가 될 수밖에 없다"며 "규제의 목적이 안정성이라면 지분 비율보다는 기능별 책임 분담과 투명한 감독 체계가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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