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아니라 '시간'을 사는 성과급…SK하이닉스가 2964%를 택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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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아니라 '시간'을 사는 성과급…SK하이닉스가 2964%를 택한 이유

폴리뉴스 2026-02-05 09:59:17 신고

[사진=SK하이닉스]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가 올해 초과이익분배금(PS)을 기본급(연봉의 20분의 1) 기준 2964%로 책정했다. 반도체 업계 전반에 적지 않은 파장이 일고 있다. 연봉 1억원 기준으로 단순 환산하면 1억4천만원이 넘는 성과급이다. 숫자만 놓고 보면 '역대급 보너스'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번 결정을 단순한 통 큰 보상이나 호황기의 과실로만 해석하면 핵심을 놓치게 된다.

이번 성과급은 실적의 결과이자, 다음 경쟁을 위한 선제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 SK하이닉스는 성과급 액수보다도 보상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AI 반도체 시대를 맞아 더욱 치열해진 '인재 전쟁'이라는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하반기 노사 합의를 통해 PS 지급 기준을 전면 개편했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기존 최대 1000%였던 PS 상한을 폐지했다. 둘째, 전년 영업이익의 10%를 재원으로 삼는 구조를 명문화했다. 회사는 이 기준을 향후 10년간 유지하기로 했다.

이는 성과급을 경영 판단이나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사전에 합의된 규칙으로 고정했다는 의미다. 실적이 좋으면 보상이 커지고, 그렇지 않으면 줄어드는 구조를 명확히 한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커질 수 있는 선택이지만, 구성원에게는 성과와 보상이 직접 연결된다는 예측 가능성을 제공한다.

여기에 더해 개인별 성과급의 80%는 당해 지급, 20%는 2년에 걸쳐 이연 지급하는 구조도 도입됐다. 단기 보상에 그치지 않고, 일정 기간 조직에 머물도록 유도하는 장치다. 단순히 "많이 주겠다"가 아니라 "함께 오래 가겠다"는 신호에 가깝다.

이 같은 선택의 배경에는 반도체 산업 구조의 변화가 있다. 특히 AI 반도체 시대에 들어서면서 메모리 경쟁의 핵심은 단순 증설이 아니라 고난도 공정·패키징·수율 안정화·고객 맞춤 설계로 이동했다. 고대역폭 메모리(HBM)는 대표적이다.

HBM은 개발부터 양산, 고객 인증까지 전 과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으며, 일부 핵심 인력이 빠질 경우 일정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경쟁사가 따라오기 어려운 기술 격차는 결국 숙련된 엔지니어와 조직의 연속성에서 나온다. 이런 환경에서 인재 유출은 단순한 인력 손실이 아니라 시간 손실, 더 나아가 시장 주도권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SK하이닉스가 성과급을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인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막대한 설비투자와 동시에, 그 설비를 움직이고 기술을 축적할 사람을 붙잡기 위한 장치로 보상 체계를 재설계한 것이다.

이번 제도 개편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보상 체계와도 맞닿아 있다. 글로벌 선두 기업들 역시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인센티브 재원으로 활용하며, 장기 근속과 성과 연동을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 10%'라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이는 해외 인재 확보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 기업의 보상 체계는 종종 글로벌 경쟁에서 불리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보상의 예측 가능성과 규모 모두에서 비교 대상이 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번 개편은 최소한 '보상 구조의 언어'를 글로벌 기준으로 맞추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동시에 이는 주요 고객사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AI 반도체 공급망에서 고객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공급사의 기술 불안정과 조직 리스크다. 성과급 공식을 장기화하고 노사 합의를 통해 고정한 것은 조직 안정성을 제도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작동한다.

SK하이닉스는 PS의 일부를 자사주로 선택할 수 있는 제도도 운영 중이다. 최대 50%까지 자사주로 받을 수 있고, 이를 1년 보유하면 매입 금액의 15%를 현금으로 추가 지급하는 구조다. 또한 PS를 퇴직연금 확정기여(DC)형으로 적립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도 병행한다.

이는 성과급을 단기 현금 보상에서 기업 가치와 연동된 장기 보상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구성원은 회사의 중장기 성과에 더 직접적으로 이해관계를 갖게 되고, 회사는 단기 유출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보상의 성격이 '보너스'에서 '동행 계약'으로 이동하는 셈이다.

물론 이 모델이 항상 긍정적인 효과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업황이 꺾일 경우 성과급이 급감할 수 있고, 이는 조직 내부의 기대치 관리라는 새로운 과제를 낳는다. 상한이 없는 구조는 위로도 열려 있지만 아래로도 열려 있다. 또한 보상 규모가 커질수록 개인별 성과 산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요구 역시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정은 명확한 방향성을 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AI 메모리 경쟁에서 기술 이전에 사람을 핵심 전력으로 정의했고, 그에 맞는 보상 공식을 장기적으로 고정했다. 2964%라는 숫자는 결과일 뿐, 진짜 메시지는 "이 공식이 반복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데 있다.

이번 성과급은 과거 실적에 대한 보상이면서 동시에, 다음 사이클을 위한 선제적 투자다.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비싼 자원이 '시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SK하이닉스가 이번에 사려 한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과 연속성이라고 볼 수 있다.

[폴리뉴스 정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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