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강서점에 '미국산 백색 신선란'이 판매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국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에 따른 계란 수급 불안에 대비해 미국산 신선란을 시범 수입했다. 홈플러스는 수입 물량을 선제적으로 확보, 미국산 백색 신선란(30구) 4만 5000판을 국내 마트 단독으로 판매한다. /뉴스1
식탁 위 필수 식재료인 달걀. 요즘 달걀을 사러 마트에 가면 멈칫할 수도 있다. 한 판에 8000 원을 훌쩍 넘긴 가격표를 보면 한숨이 절로 터져 나온다. 2026년 새해를 맞았지만 주부들의 장바구니 고민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특히 이번 달걀값 급등은 단순히 조류인플루엔자(AI) 탓인 줄로만 알았던 소비자들에게 '담합 의혹'이라는 씁쓸한 소식까지 전해지며 시장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수급 안정을 위해 투입된 미국산 흰 달걀까지 등장하면서 난각번호와 품질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소비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것은 대한산란계협회의 가격 담합 혐의다. 5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 심사관은 최근 협회가 2023년부터 작년까지 조직적으로 달걀 가격 인상을 주도했다는 심사보고서를 전원회의에 제출하고 협회에도 발송했다. 그동안 소비자들이 고물가에 허덕이는 동안 생산자 단체가 인위적으로 가격을 결정해 경쟁을 막아왔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1일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강서점에 '미국산 백색 신선란'이 판매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국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에 따른 계란 수급 불안에 대비해 미국산 신선란을 시범 수입했다. 홈플러스는 수입 물량을 선제적으로 확보, 미국산 백색 신선란(30구) 4만 5000판을 국내 마트 단독으로 판매한다. /뉴스1
실제 통계를 봐도 상황은 심각하다. 국가데이터처 소비자물가지수를 보면 달걀 가격은 지난해 4월부터 지난달까지 10개월 연속 전년 동기보다 올랐다. 지난해 9월엔 상승률이 9.2%로 최근 48개월 중 가장 높았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계란 한 판 가격이 8588원으로 전년 평균보다 15.16%나 비쌌다. 공정위 심사관 측은 AI가 본격 확산하기 전부터 이미 가격이 급등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9월 국무회의에서 "식료품 물가 상승이 2023년 초부터 시작됐는데 왜 그때부터 오르기 시작했는지 근본적 의문을 가져야 한다"며 주병기 공정위원장을 향해 "담합이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고 엄정 대응을 지시한 게 이번 조사의 결정적 신호탄이 됐다. 공정거래법 51조는 사업자단체가 가격을 결정하거나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위반하면 시정조치 명령과 10억원 이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공정위는 협회의 의견서를 받은 후 전원회의를 열어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정부는 뛰는 달걀값을 잡기 위해 미국산 달걀 224만 개를 긴급 공수해 시중에 풀었다. 이 때문에 마트 신선식품 코너에 오랜만에 백색란이 대거 등장했다. 낯선 외형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는 소비자가 많다.
가장 큰 혼란은 달걀 껍데기에 찍힌 '난각번호' 개수에서 온다. 국산 달걀은 산란일자 4자리, 농장번호 5자리, 사육환경 1자리를 합쳐 총 10자리를 찍는 게 의무지만, 미국산은 농장번호가 빠진 5자리만 표기한다. 번호가 짧으니 가짜라거나 검증이 덜 된 것 아니냐는 오해가 생기도 하지만, 단지 국가 간 표시 기준이 다를 뿐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수입 과정에서 통관 단계부터 현장검사와 검체 수거를 병행했으며 동물용 의약품, 농약, 살모넬라균 등 정밀검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식약처 축산물안전정책과 관계자는 "지난달 수입·유통된 미국산 달걀은 수출 작업장별 검사 결과 모두 기준에 적합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흔히 난각번호를 신선도 지표로 오해하지만 이는 달걀의 유통 이력을 추적하기 위한 관리 번호에 가깝다. 신선도를 가늠하는 가장 직접적인 기준은 난각번호 앞 4자리인 산란일자다. 가금 업계는 시중에 유통되는 달걀 대부분은 냉장·선도 관리가 철저해 특정 제품만 유독 신선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달걀을 깨뜨렸을 때 노른자와 흰자가 과도하게 퍼지지 않으면 비교적 신선한 상태로 볼 수 있다.
사육환경 번호는 1번부터 4번까지로 구분된다. 숫자가 낮을수록 사육 환경이 개선된 방식이다. 1번은 닭을 자유롭게 풀어 키우는 방사 사육, 2번은 축사 내 방사, 3번은 개선형 케이지, 4번은 기존 케이지 방식이다. 1번과 2번은 동물복지 인증 계란으로 분류된다. 전문가들은 사육 방식에 따른 스트레스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영양 성분 자체의 차이는 크지 않다고 설명한다.
달걀을 둘러싼 해묵은 오해들도 이번 기회에 제대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흰 달걀은 갈색 달걀보다 영양이 떨어진다’거나 ‘노른자가 진해야 더 신선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지만 과학적 근거가 없는 속설이다. 달걀 껍데기 색은 닭의 품종에 따라 갈리는 유전적 차이일 뿐이다. 노른자색 역시 닭이 먹는 사료 성분에 따라 결정된다. 옥수수나 밀 위주의 사료를 먹으면 옅은 노란색, 파프리카나 풀 성분이 많은 사료를 먹으면 진한 색의 노른자가 형성된다.
식약처에 따르면 노른자색은 닭이 섭취한 사료 속 크산토필 등 카로티노이드 함량에 따라 달라질 뿐 영양 성분이나 신선도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삶은 달걀에서 노른자가 푸르스름하게 변하는 현상 역시 노른자 속 철분과 흰자 속 황 성분이 결합해 황화철이 형성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화학 반응이다. 영양 손실이나 건강상 문제는 없다.
대한산란계협회는 조만간 공정위의 심사보고서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담합 판결 여부에 따라 시장 공급 가격이 요동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Copyright ⓒ 위키트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