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관북리 유적서 나온 목간 329점은…인사 기록·시간 등 다양
끈으로 엮은 편철 목간, 삼나무로 제작…"백제사 연구에 새 활력소"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폭이 좁고 긴 나뭇조각 위에 글을 적은 목간(木簡)은 고대 생활상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백제의 중심지가 사비, 즉 지금의 충남 부여였던 시기(538∼660)에도 다양한 목간이 만들어졌다.
부여 쌍북리에서는 구구단을 정교하게 써놓은 목간이 발견돼 이목을 끌었고, 논어에서 유명한 구절로 꼽히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를 적은 조각이 출토되기도 했다.
사비도성(246점), 능산리 일대(171점)에 이어 사비 백제의 왕궁터로 꼽히는 관북리 유적에서도 목간이 무더기로 나오면서 당대 문자 문화에 관심이 쏠린다.
5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에 따르면 2024∼2025년 부여 관북리 유적 일대에서 발굴 조사를 거쳐 찾아낸 목간은 총 329점이다.
국가 행정 문서인 인사 기록을 비롯해 국가 재정과 관련된 장부, 관등·관직명, '경신년'(庚申年·540년으로 추정) 문구 등 다양한 목간이 출토됐다.
국내 단일 유적에서 발견된 수량으로는 가장 많다.
그중에는 목간에 적힌 글씨를 삭제하거나 수정하기 위해 표면을 깎아내며 생긴 부스러기를 뜻하는 '삭설'(削屑)이 약 75%에 이른다.
연구소는 "오늘날 우리가 연필로 쓴 글자를 지우개로 지우듯이 칼로 표면을 깎아낸 것"이라며 "이미 쓴 목간을 깎아 행정 문서로 재활용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발견된 목간 중에는 길이가 35㎝ 넘는 대형 삭설도 존재한다.
글자가 적힌 부분을 얇고, 길게 깎아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한데, 여러 차례 목간을 '재활용'하면서 자연스레 기술을 익힌 것으로 추정된다.
목간 연구 전문가인 윤선태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신라에서는 주로 꼬리표로 쓰이는 목간이 많은데 백제의 경우 능산리 사지 등에서 삭설이 나온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학계에서는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편철(編綴) 목간의 의미가 크다고 본다.
편철 목간은 같은 종류의 행정 문서 목간을 일정 기간 관리하거나 보존하기 위해 끈으로 엮어 만든 형태다. 목간의 위아래에 구멍을 뚫어 끈을 꿰어 연결한다.
윤 교수는 "편철 목간은 백제의 문서 행정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며 "사비 백제 초기, 나아가 한성 백제기부터 문서 행정이 상당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사 결과 편철 목간에 쓰인 나뭇조각은 삼나무로 파악됐다.
연구소에 따르면 삼나무는 고대 한반도에서는 자생하지 않은 수종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해 쓴 것으로 전한다.
심상육 책임연구원은 "무령왕(재위 501∼523)의 시신을 안치한 목관에 일본산 금송을 쓴 것처럼 자재를 수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연구가 더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발견된 목간은 행정 문서, 당대 백제의 '공문서'로 볼 수 있다.
연구소가 목간 전문가들과 함께 5차례에 걸쳐 자문 회의한 결과, 개인적인 감정이나 낙서를 적은 목간은 없고 인사 기록이나 재정, 행정 체계 관련 문서로 확인됐다.
오현덕 연구관은 대부분이 출토된 배수로 옆에 3동의 건물터가 있는 점을 언급하며 "오늘날 정부청사에서 다양한 공문서를 작성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24절기 중 겨울의 시작을 뜻하는 '입동'(立冬), 오전 9∼11시를 나타내는 '사시'(巳時) 등도 기록돼 있어 백제가 절기와 시간을 파악했다는 점도 문서를 통해 드러난다.
시간을 직접 표기한 목간이 국내에서 발견된 건 처음이라고 연구소 측은 전했다.
백제사 전문가인 정재윤 국립공주대 사학과 교수는 "이번 목간은 백제가 새로운 시대를 열며 그에 걸맞은 체계를 갖춰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문자 자료"라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기존에 확인되지 않았던 관등 및 관직 명칭도 나온 만큼 향후 연구할 부분이 많다"며 "백제사 연구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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