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패션피플들이 옷을 잠그지 않는 사연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요즘 패션피플들이 옷을 잠그지 않는 사연

바자 2026-02-05 08:00:00 신고


COMING UNDONE


이번 봄 컬렉션은 몸에서 흘러내릴 듯한 옷으로 가득했다. 느슨한 레이어링, 찢긴 패브릭, 지퍼를 잠그지 않은 데님. 그 어느 때보다 무게감 있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 패션은 잠시라도 내려놓고 싶어하는 우리의 마음을 비출 수 있을까?


Prada
Prada














이번 컬렉션에서 구조의 부재는 의도된 것이었다. 이 옷들은 그 모든 것을 내려놓는 데 관한 이야기였다. 최근 들어 점점 찾기 힘들어진 새로운 자극, 부담에서 벗어나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상태에 가까워지려는 갈망 말이다.


프라다 2026 S/S 런웨이에 무엇인가가 흩날리듯 등장했을 때, 관객의 반응은 거의 동시에 튀어나왔다. ‘도대체 저게 뭐지?’ 가슴 덮개였을까. 언더와이어인가, 밴드 없는 브라인가. 그 정체 모를 요소들은 설명하기 까다로운 느슨한 옷들과 함께 전면에 등장했다. 얇고 축 늘어진(혹은 서스펜더가 달린 것처럼 보이는), 서로 다른 소재를 조합한 랩 스커트, 버블 스커트 위에 레이어드한 튜닉 드레스, 과도하게 깊은 V넥 스웨터, 너무 주름져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처럼 보이는 오페라 글러브까지. 일각에서는 이처럼 비구조적인 옷들이 여성에게 필요한 지지와 형태를 외면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미우치아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는 언제나 패션이 주변 문화와 호흡하고 이를 반영하며 이에 응답하는 힘을 지녔다는 점에 주목해온 인물이다. 이번 컬렉션에서 구조의 부재는 의도된 것이었다. 이 옷들은 바로 그 모든 것을 내려놓는 데 관한 이야기였다. 최근 들어 점점 찾기 힘들어진 새로운 자극, 부담에서 벗어나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상태에 가까워지려는 갈망 말이다.

“이번 컬렉션은 불확실성에 반응하는 데에서 출발했어요. 움직이고, 변하고, 적응할 수 있는 옷들이죠.” 미우치아 프라다는 쇼 노트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서로 다른 요소를 조합하는 과정, 즉 이 ‘구성’이라는 개념 속에는 선택의 여지와 자유가 있으며, 이를 입는 여성에게 권한과 주체성이 주어집니다.” 프라다의 새 컬렉션에서 거의 모든 룩은 금방이라도 풀어질 것처럼 보였다. 런웨이가 전개될수록 이 모습은 예외적 연출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기준에 가까워졌다.

우리는 지금 전례 없는 불확실성과 극대화된 혼돈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이 이어지고 있으며, 그 여파로 4천200만 명의 미국인이 의존하는 저소득층 영양 지원 프로그램(SNAP) 혜택이 중단될 위기에 놓여 있다. 시카고에서는 이민세관단속국(ICE)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데려간 이후 교육위원회가 원격 수업 전환을 요청하고 나섰다. 그러나 아무리 충격적인 뉴스라도, 스크롤 한 번의 차이로 다음 이야기가 밈과 쇼핑 하울, ‘겟 레디 위드 미(GRWM)’ 영상 사이에 끼어 소비되고 있다.

지난 몇 시즌은 ‘많을수록 좋다’는 과잉의 미학을 받아들이는 흐름이었다. 레이어는 겹겹이 쌓였고 가방은 넘치도록 채웠으며 실루엣은 대담하게 과장됐다. 그러나 이번엔 전혀 다른 결이다. 이는 긴장을 풀고 붙잡고 있던 것을 내려놓는 움직임이다. 삶의 혼란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태도,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유니폼에 가깝다. 지금 누가 단정하게 단추를 끝까지 잠그고 허리를 꽉 조이고 싶을까. 점점 더 부조리해지는 세계 속에서, 자유로운 감각의 옷을 입고 다소 해석의 여지를 품은 스타일을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더 매력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데뷔한 루이즈 트로터는 백스테이지에서 “캔버스 위에 레이어링해 몸에서 흘러내리듯 떨어지도록 했다”고 설명한 드레스 여러 벌을 선보였다. 실루엣 자체는 비교적 무게감이 있었지만, 그 룩들은 컬렉션 전반에 분명 해방된 공기를 더했다. 해방은 다리오 비탈레의 베르사체 데뷔 컬렉션에서도 핵심 키워드였다. 다만 그의 자유는 좀 더 성적으로 충전되고 퀴어한 방향이었다. 반쯤 열어둔 지퍼, 풀어놓은 벨트 같은 디테일을 통해. 이 컬렉션은 창립자 지아니 베르사체가 보여준 1980년대의 거리낌 없는 미학을 향한 헌사였다. 밤새 춤추고 나온 듯한 차림이 궁극의 글래머였던 시절 말이다. 로에베에서의 첫 시즌, 잭 맥컬로와 라자로 에르난데스는 마치 돌풍이 상체를 스쳐 지나간 듯 부풀어 오른 셔츠를 선보였다. 어거스트 배런은 매거진 〈올인〉에서 출발한 인디 레이블로, 그 특유의 시선 아래 트래드 와이프(trad wife, 자녀 여러 명을 기르며 전통적 여성 역할에만 복무하는 아내) 이미지를 장난스럽게 비틀어 폭탄적 존재로 재해석했다. 단추를 풀고 한데 뭉친 카디건에 1950년대풍 파티 스커트를 매치하고, 머리는 기이하게 말아 올린 컬로 연출한 모습이었다.

허리선이 말 그대로 급격히 내려간 흐름도 보인다. 이는 마티유 블라지가 선보인 샤넬 데뷔 컬렉션의 유려한 드롭 웨이스트 실루엣에서 분명히 드러났고, 조머와 토리셰주 같은 신진 레이블에선 보다 기묘한 방식으로 변주됐다. 특히 토리셰주에서는 모델의 몸을 가로질러 꿰매 내려간 듯한 로 슬렁 스커트가 등장했다. 이에 대해 디자이너 토리셰주는 “각각의 의상은 인식 가능하면서도 이질적인 모순”이라 설명했다. 점점 더 초현실적으로 변해가는 일상의 불편함을 마주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녀는 피날레 배경음악을 아웃캐스트의 ‘The Whole World’로 장식했다. 흐름에 몸을 맡기라는 메시지를 담은 곡으로, 마치 선언처럼 느껴졌다.








이 트렌드는 옷이 반드시 단단하고 조여 있어야만 갑옷처럼 느껴진다는 고정관념을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때로는 어깨 스트랩이나 허리선이 흘러가고 싶은 자리로 떨어지도록 두는 편이 자기 보호와 강인함, 그리고 스타일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분명 가벼움을 갈망하고 있어요.” 안트베르펜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 줄리 케겔스가 말했다. “도피가 아니라, 숨 한번 고르는 느낌에 가깝죠.” 파리 패션위크 기간에 공개한 케겔스의 새 컬렉션은 ‘빠른 변화(quick change)’라는 주제 아래, 무릎과 엉덩이 사이를 도려내고 가터로 고정한 스커트, 벗겨진 페인트 조각처럼 보이는 아플리케 장식의 드레스, 허리에는 파니에 형태의 튜브를 두르고 상체는 신축성 있는 보디스를 모델이 워킹 중 스스로 벗어내는, 매우 기묘한 피날레 드레스를 선보였다. 이에 대해 케겔스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 동작은 옷을 벗는 행위가 아니었어요. 드러내고, 도달하는 것이죠. 하루 종일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구조를 벗겨내는 것처럼요.” 그녀가 덧붙였다. “이 컬렉션을 통해 옷이 우리를 거스르지 않고 함께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고 싶었어요.”

움직임과 유동성은 다니엘 로즈베리가 선보인 스키아파렐리 봄 컬렉션에서도 핵심적으로 등장했다. 바이어스 컷 가운은 런웨이를 따라 미끄러지듯 흘렀고, 일부 원단은 옷의 표면에서 부드럽게 뜯겨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는 1938년 엘사 스키아파렐리가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만든 ‘눈물(tear)’ 드레스에 대한 직접적 오마주였다.

또 맥퀸에서 션 맥기르는 하우스 시그너처인 범스터(bumster) 팬츠를 재해석했다. 엉덩이 위 아주 낮은 위치에 걸쳐, 의도적으로 잡아당겨 내려간 듯 보이는 이 바지는 1993년 첫 등장 당시 저속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사실 그 목적은 외설이 아니라 상체를 길어 보이게 하고 관능적인 라인을 만드는 데 있었다.

물론 패션에서 늘 그렇듯, 우리는 이미 이 지점을 지나온 적이 있다. 마틴 마르지엘라와 앤 드뮐미스터 같은 해체주의 디자이너들, 꼼데가르송의 레이 가와쿠보와 요지 야마모토로 대표되는 일본 아방가르드의 선구자들은 레이건 시대의 과잉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했다. 이들이 선보인 절제되고 분해된 디자인은 화려함과 요란함에 맞선 일종의 저항으로 받아들여졌고, 반짝임과 과시에 대한 매혹적 대안으로 자리했다. 존 갈리아노가 디올을 위해 선보였던, 드러냄과 벗김의 개념을 탐구한 디자인 역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근 킴 카다시안은 2000년 봄 시즌의 아이스 블루 컬러 프린세스 드레스를 입고 프리미어에 등장했다. 상체를 가로지르는 대각선 지퍼와 금방이라도 어깨에서 흘러내릴 듯한 소매는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을 레드 카펫 모먼트를 만들어낼 것처럼 보였다. 후세인 샬라얀은 2016년 봄 컬렉션에서 ‘풀어짐’을 보다 직설적으로 구현했다. 그는 물에 녹는 화이트 코트 두 벌을 선보였고, 모델들이 런웨이에 설치된 임시 샤워기 아래에 서자 코트가 서서히 녹아내렸다. 그 아래로 크리스털과 플로럴 아플리케로 장식한 흑백 가운이 드러났다.

FIT 박물관에서 1월 4일까지 열리는 전시 «드레스, 꿈 그리고 욕망: 패션을 통해 본 정신분석(Dress, Dreams, and Desire: Fashion and Psychoanalysis)»은 드러냄과 감춤을 둘러싼 여러 주제를 다룬다. 그중 한 섹션은 특히 이러한 해체된 듯한 디자인과 맞닿아 있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디디에 안지에우의 ‘스킨 에고(skin ego)’ 이론에 따르면, 옷은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해석하고 표현하도록 돕는 하나의 장치로 기능할 수 있으며 그 정체성을 둘러싼 경계를 만들어내거나 지우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패션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변화하고 적응하는 존재다. 전시 도록에서 미술관 관장이자 수석 큐레이터인 발레리 스틸은 이를 ‘정신적인 두 번째 피부’라고 부른다. “어떤 의복이나 스타일에도 단 하나의 고정된 의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스틸은 말한다. “다만 일반적으로 볼 때 흘러내리는 듯한 룩은 무의식적으로 옷을 벗고자 하는 욕망을 암시합니다. 물론 이 욕망은 억압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그 결과는 하나의 절충으로 나타나죠. 옷을 벗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옷을 입고 있는 상태. 그것도 아주 패셔너블하게 말이죠.”

솔기가 풀려나가는 듯한 옷차림으로 집을 나선다면 시선을 끌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옷들의 힘은 도발에 있지 않다. 취약함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다. 이번 봄 런웨이에 등장한 액세서리조차 우리에게 마음을 열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샤넬, 펜디, 디올의 백들은 입구를 활짝 벌린 채 방치된 것처럼 보이도록 디자인됐다.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 그렇지 않다. 디올의 새로운 ‘시갈(Cigale)’ 백은 플랩을 가방 안쪽으로 접어 넣는 구조이며, 샤넬의 최신 ‘25.5’ 백은 측면 와이어로 형태를 조절할 수 있고 상단 플랩 역시 완전히 닫을 수 있도록 제작됐다.

이 룩들은 옷이 반드시 단단하고 조여 있어야만 갑옷처럼 느껴진다는 고정관념을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때로는 어깨 스트랩이나 허리선이 흘러가고 싶은 자리로 떨어지도록 두는 편이 자기 보호와 강인함, 그리고 스타일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Copyright ⓒ 바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