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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동아 이승미 기자] 역사의 배후에서 어린 왕을 사지로 몰았던 권력의 공기가 장항준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 유지태의 카리스마를 만나 스크린에 재구축됐다. 4일 개봉한 ‘왕과 사는 남자’는 1457년 청령포를 배경으로 유배된 단종의 삶을 기록 너머의 따뜻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사극이다. 영화는 승자의 기록이 지운 인간적 유대와 날 선 긴장감을 웰메이드 프로덕션으로 복원했다.
사극으로 저력을 확장해 비극 속 희망을 찾아낸 장 감독, 한명회 역을 맡아 침묵만으로 공기를 얼린 유지태는 이번 작품에서 연출과 연기의 정교한 합을 선보인다. 인물들의 희로애락을 빚어낸 두 사람은 이 영화가 비극적 삶을 살다 간 어린 왕 단종을 관객의 가슴에 오롯이 새겨줄 작품이 되길 바랐다.
O“내가 그리고 싶었던 단종은…”
장항준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유약하고 불쌍하기만 한 왕’이라는 단종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엎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단종이 세종의 총애를 받았던 총명한 적통이었음에 주목했다. 단순한 ‘희생된 소년’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과 동화되며 ‘성군의 자질을 능동적으로 학습해 나가는 강인한 인물’로 그리고자 했고, 그런 단종을 박지훈이 구현해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힘줘 말했다.
“박지훈의 눈빛에는 말간 얼굴과는 대조되는 심연의 분노 같은 짙은 감정이 있어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그 에너지, 그게 바로 제가 원한 단종이었죠. 사실 처음 만났을 때는 (박지훈이) 너무 쪄 있어서 속으로 ‘큰일이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다음 미팅 때 놀라울 정도로 살을 쫙 빼고 나타난 걸 보고 ‘아, 이 친구 정말 큰 배우가 되겠구나’라고 확신했어요. 20대 같지 않은 묵직함과 한결같음을 지닌 귀한 배우죠.”
기존 작품들에서 왜소하거나 노회하게 그려졌던 한명회를 유지태라는 거구의 배우에게 맡긴 선택 역시 철저한 사료 조사 결과였다. “당대 기록에는 한명회가 키가 크고 풍채가 좋아 모두가 우러러봤다는 내용이 있다”는 장 감독은 박지훈과 대비되는 거대한 존재감을 통해 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수양대군과 한명회가 함께 한 역모는 성공한 역모죠. 하지만 성공한 역모라고 해서 박수받고 인정받아야 할까요? 그 본질적 물음을 한명회라는 압도적인 인물을 통해 시각화하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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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엄흥도 역의 유해진과는 장편 연출작 ‘라이터를 켜라’(2002) 이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20년 지기 친구다. 아내 김은희 작가와 함께 유해진이 무명 시절부터 대스타로 성장하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다고 했다.
“옛날엔 저희 집에서 아내와 같이 셋이 참 많이 놀았어요. 그땐 제가 제일 잘나갔는데,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죠.(웃음) 이번에 함께 작업해 보니 유해진 씨가 그냥 대스타가 된 게 아니더라고요. 중요한 신을 앞두고는 감히 말을 걸 수 없을 만큼 이미 인물 그 자체가 돼 있었어요. 분장을 받으면서도 이미 감정에 몰입해 울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친구를 넘어 ‘배우 유해진’의 위대함을 다시 느꼈어요.”
장 감독은 유해진의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며 한 가지 미담을 덧붙이기도 했다. 촬영 당시 안동 산불로 한 스태프의 부모님 집이 전소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는데 그때 유해진이 먼저 장 감독에게 “너와 내가 각각 500만원씩 전달해 드리자”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고 했다.
“유해진 씨와 제가 마음을 모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른 스태프들도 동참했고, 그렇게 모은 돈은 모두 그 스태프의 부모님께 전달됐어요. 아버님이 ‘고맙다’며 유해진 씨와 통화하다 펑펑 우셨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영화의 현장은 이랬어요. 이런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굴러가는 현장이었죠.”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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