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대 부산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장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2026년 들어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일상화된 가운데, 한국의 대외경제 전략 역시 새로운 방향을 요구받고 있다. 미·중 경쟁 심화, 보호무역 기조 확산 속에서 이제 시장과 파트너 다변화는 선택이 아닌 과제가 됐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프랑스어권 아프리카는 2026년 새해에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낯설지만, 동시에 주목할 만한 협력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프랑스어권 아프리카는 '하나의 시장'을 일컫는 용어가 아닌 프랑스어라는 공통 기반을 가진 '다양한 지역들의 묶음'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다양하고 복잡한 이 지역을 두 가지 축으로 나눠 볼 수가 있다.
첫째 이 지역에는 프랑스어가 행정과 사법, 제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국가들이 있다. 각각의 지역에 8개 국가가 있고, 총 16개 국가가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둘째 프랑스어가 유일한 공식 언어는 아니지만 국가 운영과 국제 협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남부 국가들이 있다. 르완다, 마다가스카르 등 7개 국가가 있다. 이 지역에서 프랑스어를 공식어로 사용하는 국가는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콩고민주공화국, 가봉 등 21개 국가가 있다. 프랑스어를 비즈니스·고등교육·행정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핵심 언어 국가인 알제리와 모로코 등의 마그레브 지역 국가까지를 포함하면 25개국으로 증가하고, 국제프랑코포니기구(OIF) 회원국 기준으로 보면 30개 국가 정도가 있다. 아프리카연합(AU) 회원국을 고려하면 총 55개 국가 가운데 거의 절반 가까이가 프랑스어를 공용어, 외교·경제·교육의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어권 아프리카는 오랫동안 '프랑스의 영향권'이라는 이미지에 가려 왔지만, 최근에 이 지역은 한국을 포함한 새로운 국제 파트너를 모색하고 있다.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가 있다.
첫째 프랑스어권 아프리카는 서·중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빠른 인구 증가와 도시화를 경험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MZ세대의 비중이 높고 중산층 형성이 점진적으로 이뤄지면서 소비시장 확대 가능성이 있다.
둘째 프랑스어권 아프리카는 중국·튀르키예·중동 국가 등 다양한 파트너가 새로 진입하는 등 대외관계 재편이 진행 중이어서 프랑스의 영향력이 예전과 같지 않다. 이는 새로운 협력 상대를 모색하는 지역 수요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렇다고 프랑스가 아프리카에서 완전히 발을 빼는 건 아니다. 프랑스는 2026년 5월 11∼12일 아프리카 국가들과 정상회담을 개최할 예정인데, 개최지가 프랑스어권 국가가 아닌 영어권 국가인 케냐라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프랑스가 전통적으로 자국의 '텃밭'으로 인식되어 온 프랑스어권 아프리카를 넘어, 영어권을 포함한 전체 아프리카와의 포괄적 협력 강화를 모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역시 기존의 종속적·배타적 협력 체제에서 벗어나 보다 다층적인 글로벌 협력 관계망을 형성해 가고 있으며, 프랑스어권과 영어권이라는 기존의 경계 또한 점차 희미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은 2016년 OIF의 참관국으로 참여하며 프랑스어권 국가들과 제도적 접점을 마련했다. 이는 문화·외교 중심이던 관계를 경제 협력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현재까지 한국과 프랑스어권 아프리카의 관계는 상징성과 가능성에 비해 실질적 성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외교적 교류가 기업 활동과 전략적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은 것이다.
현재 프랑스어권 아프리카에서 중국은 후발 진출국이 아닌 주요 외부 행위자에 속한다. 중국은 이 지역에서 도로·항만·철도·발전소·공항 건설에 참여하고, 정부 간(G2G) 계약을 맺고 있다. 주로 중국 국영기업이 주도하는 형국이다. 프랑스어권 아프리카에서 인프라 수요가 크지만, 재정 여력이 부족한 점을 활용한 것이다. 콩고민주공화국(광물), 가봉과 차드(석유), 콩고공화국과 카메룬(목재) 등에서 이런 부분이 눈에 띈다. 사헬지역 군사 정권(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에서는 무기를 팔기 위해 노력 중이다.
중국은 이런 진출에 있어 중국 특유의 폐쇄적 운영과 프랑스어 통역, 현지 인력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해 10월 북경외국어대를 방문할 당시 프랑스어 전공 학생이 500명 정도 된다는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중국은 '프랑사프리크'(Francafrique)로 대변되는 반프랑스 감정을 이용하여 조용하면서도 지속해 프랑스어권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부채 부담이나 현지 고용과 기술 이전 문제, 중국 의존도에 대한 경계 등에 대한 목소리도 있다. 특히 MZ세대의 경우 중국의 폐쇄성,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정권이라도 상관없는 권력과 유착 등을 의심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기업 진출 측면에서 보면, 프랑스어권 아프리카는 인프라, 소비재, 정보통신기술, 보건·교육 분야 등에서 협력 여지가 있다.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모로코, 튀니지 등 일부 국가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하며 외국 기업 유치에 적극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프랑스와 중국이 이들 지역에서 여전히 우위에 있지만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갖춘 한국 기업은 이들 분야에서 중국과 프랑스와는 다른 대안적 파트너로 자리할 가능성도 있다. 중견·중소기업 중심의 단계적 진출 역시 검토해 볼 만한 접근이다.
문제는 프랑스어권 아프리카를 어떻게 바라보며 진출할 것인가에 있다. 그런 면에서 기대만으로 접근하기에는 넘어야 할 현실적 난관이 적지 않다. 프랑스어를 기반으로 한 행정·법제도 환경은 언어 장벽을 넘어 정보 접근성과 계약 구조 이해를 어렵게 만든다. 국가별 규제 차이, 행정 절차의 불확실성, 정치·사회적 리스크도 상존한다. 무엇보다 관계 형성과 신뢰 축적이 중요한 지역 특성상 단기 수익 중심의 진출 방식은 한계를 드러낼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프랑스어권 아프리카는 단순한 신흥시장이라기보다 한국 기업과 정책 모두에게 '전략적 인내'를 요구하는 지역에 가깝다. 현지 전문가와 언어 인력 양성, 장기 프로젝트를 염두에 둔 접근, 정부와 기업 간 역할 분담이 병행되지 않으면 새로운 시장 발굴, 지속 가능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구조적 리스크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점도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를 보는 눈을 또 다른 차원에서 넓혀가고, 지역별로 전문화해갈 필요가 있다.
2026년은 한국과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관계가 상징적 교류를 넘어 실질적 협력으로 전환될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외교·통상·개발 정책의 유기적 연계와 함께 현지 전문가·언어 인력 양성, 장기 프로젝트를 염두에 둔 접근이 병행돼야 한다. 아프리카를 하나의 시장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지역별로 전문화된 전략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프랑스어권 아프리카는 우리에게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다. 그러나 준비하지 않으면 선택지에서 사라질 수 있고, 준비 여부에 따라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다. 2026년을 향한 한국의 대외 전략에서 프랑스어권 아프리카가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닌 중심에서 새로운 선택지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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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기대 교수
현 부산외대 아프리카연구소장 및 중앙도서관장, 프랑스 파리7대학 박사(언어역사인식론), 저서 '베르베르문명', '7인 7색 아프리카' 외 다수. 한국프랑스학회장과 한국연구재단 인문한국(HK)3.0 과제 주관연구소 연구 책임자 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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