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민트', 역시 류승완은 액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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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민트', 역시 류승완은 액션이다

엘르 2026-02-04 23:03:29 신고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감독 류승완'의 스타일은 처음 메가폰을 잡았을 때부터 30년 동안 일관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하더라도 이상하게 옛 시절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는 연출, 복잡한 것 없이 직관적으로 달리는 각본, 또 무협물을 연상시키는 절묘한 합의 액션이 '류승완 영화'의 필수 조건입니다.


영화 〈휴민트〉

영화 〈휴민트〉


영화 〈휴민트〉에도 이 같은 '류승완 스타일'이 농축돼 있습니다. 우선 작품은 국정원 블랙 요원들이 대한민국 학원가까지 파고든 북한산 마약의 공급 루트를 파악하기 위해 수사를 벌이다가 국가까지 얽힌 심각한 범죄의 근원과 직면하며 일어나는 일을 그립니다. 시기상으론 2025년인데 여전히 냉전 시대 영화의 음울한 분위기가 감돕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북한 음식점 종업원 채선화(신세경)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패티김의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를 부르는 대목은 이산가족 상봉 방송의 한 장면 같기도 해요. 하지만 극대화된 예스러움조차 동시대 현실의 단면임을 생각하면 영화를 보는 시선은 달라집니다. 모든 것이 실제로 존재할 법한 모습들이고, 느껴야만 하는 위화감이기 때문입니다.


동남아시아에 파견된 국정원 블랙 요원 조 과장(조인성)은 범죄 추적을 위해 '휴민트'를 활용합니다. 말하자면 정보원을 두고 직접 접근하지 못하는 정보를 얻어내는 건데요. 그는 러시아에서 외화 벌이를 하다가 갑자기 동남아시아로 납치돼 성 착취를 당하고 있는 북한 여성으로부터 범죄가 마약 제조와 유통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듣게 됩니다. 여기에 러시아 마피아가 연루돼 있다는 사실도요. 조 과장은 이 단서를 들고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합니다. 그 사이, 북한에서는 러시아와의 국경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실종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보위성 조장 박건(박정민)이 블라디보스토크로 파견돼요. 박건이 의심하는 북한 총영사 황치성(박해준)도 여기 있고요. 돈을 벌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왔다가 조 과장의 새 휴민트가 되는 채선화까지, 네 명의 인물이 서로 다른 목적으로 한곳에 모이게 되며 이야기는 속도감을 더해갑니다. 류승완 영화답게 극 중 인물의 선악 구분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악을 처단하려는 이들은 하나의 기치 아래 결집합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눈보라 휘몰아치는 날씨 만큼 차가운 탐욕이 넘실거리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들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다른 인간입니다.


영화 〈휴민트〉

영화 〈휴민트〉


〈휴민트〉의 가장 큰 미덕은 역시 액션입니다. 이미 〈모가디슈〉와 〈밀수〉에서 류승완 식 액션을 경험한 조인성은 〈휴민트〉에서도 날아다닙니다. 동남아시아 매춘굴에서 휴민트를 구하기 위해 홀로 십수 명을 상대하는 장면은 〈밀수〉에서 그가 보여줬던 호텔 결투 시퀀스를 떠올리게 해요. 박정민 역시 합기도가 기반이 된 절도 있는 액션을 선보여요. 주목할 점은 총기의 활용입니다. 첩보물이기 때문에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있는 총기가 필수적으로 등장하는데요. 〈휴민트〉에서는 사격 뿐만 아니라 총신(銃身) 그 자체를 이용한 근거리 액션이 펼쳐집니다. 실제로 총은 있지만 쏴서는 안되는 상황에서 요원들이 취했을 듯한 '날 것' 액션이죠. 영화 속에선 정교하게 다듬어져 '날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요.


영화 〈휴민트〉

영화 〈휴민트〉

이에 대해 류승완 감독은 4일 열린 〈휴민트〉 기자간담회에서 "군사전문기자가 전술 교관처럼 현장 자문을 맡았고, 배우들이 국정원을 찾아가 사격 훈련을 받았다"라고 밝혔습니다. 조인성 역시 "한 손으로 총을 쏘는 자세나 이동하며 사격할 때의 파지법과 스텝 등 (연기에 활용할 수 있는) 디테일한 부분을 많이 배웠다"라고 했고요. 박정민은 "영화 상에서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장면이지만, 총기를 쥐고 있을 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총구 방향이나 탄창을 버리는 방향 등 숙련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도록 연구를 많이 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휴민트〉는 '박정민의 첫 정통 멜로(?)'로 큰 화제가 됐지만 멜로 정서가 강하게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박정민은 멜로 연기를 하는 스스로를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았다"라고 자평했는데요. 그는 "인간 박정민으로서 할 수 없는 선택과 결정을 극 중 박건으로 할 수 있었다"라며 "한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고, 버릴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런 박건을 박정민이 연기하는 화면이 어색하지 않아서 좋았다"라고 덧붙였어요.


영화 〈휴민트〉

영화 〈휴민트〉


다시 '류승완 스타일'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휴민트〉는 감독만의 특징이자 강점들을 적절히 배치한 영화지만, 이는 약점이 될 때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예스러움과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 무협 같은 액션을 바꿔 말하면 세련되진 못하고, '사이다' 감성 말곤 감정의 진폭이 보이지 않으며, 액션이 비현실적으로 과장돼 있다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휴민트〉 역시 이 경계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나갑니다.


참, 영화에는 류승완의 또 다른 첩보물 〈베를린〉 이스터 에그가 나오는데요. 〈베를린〉과 〈휴민트〉 세계관을 본격적으로 엮는 시도는 아니고 단순한 재미 요소였다고 하니, 영화를 통해 확인해 보세요. 〈휴민트는〉 11일 개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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