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효성 없는 물납제? 이류 키아프?…불어난 몸집만큼 쌓이는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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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효성 없는 물납제? 이류 키아프?…불어난 몸집만큼 쌓이는 과제

이데일리 2026-02-04 11:23:5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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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키아프 서울’ 전경. 2002년 첫발을 뗀 ‘키아프’는 매년 봄에 열리는 ‘화랑미술제’와 더불어 한국화랑협회 50년을 대표하는 사업이다. 2022년부터 글로벌 아트페어 ‘프리즈’와 공동개최하고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1976년 5월. 서울 중심가 넓지 않은 공간에 미술계 인사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 가운데 도드라지게 눈에 띈 이들은 한국화단 앞줄에 선 동산방·명동·양지·조선·현대화랑 등 5개 화랑 대표들이었다. 이날 회합의 목적은 분명했다. 미술시장의 힘, 아니 당장 화랑의 힘이라도 모을 단체를 만들어보자는 거였다. “건전한 미술시장 만들기”를 목표로 정하고 머리를 맞댔다.

먹고살기에도 빠듯한 시절이었다. 미술이 산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커녕 그림 사고파는 일로 밥벌이를 할 수 있다곤 상상도 못했던 때다. 무슨 활동을 어찌 해나갈 건가 막막했지만 5개 화랑은 기꺼이 의기투합했다. ‘한국화랑협회’가 창립하는 순간이었다.

그해 12월에는 서울 조선호텔에서 창립총회를 열며 제대로 모양도 갖췄다. 이날 모인 서울 12개 화랑이 추대한 초대 회장은 김문호(명동화랑) 대표였다. 하지만 호기로운 출발과는 달리 창립 이후 한동안 협회 활동이란 게 딱히 없었다. 그 첫날 이후 3년이 지난 1979년에야 ‘제1회 한국화랑협회전’으로 공식적인 행보를 알렸다.

협회 회원사는 점차 늘었다. 하지만 사라지기도 했다. 그중에는 한국화랑협회 초대 회장까지 배출한 명동화랑(1970∼1982)도 있었다. 경영난을 겪으며 안간힘을 쓰던 김 대표가 52세에 암으로 타계하면서 폐관 수순을 밟아야 했던 거다. ‘이우환 전’ ‘박서보 전’ ‘김구림 전’ ‘권진규 전’을 열며 추상미술과 그 작가들을 세상에 알렸고, 1973년에는 전시장을 막걸리 선술집으로 바꿔버린 ‘이강소’의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열었던 바로 그 화랑이었다. 비단 이런 사정이 명동화랑뿐일까. 작게는 화랑가, 크게는 미술시장에도 세상의 모든 흥망성쇠가 온전히 펼쳐졌다.

1976년 5월 서울 중심가 한 공간에 모인 동산방·명동·양지·조선·현대화랑 등 5개 화랑 대표들. 이 모임이 한국화랑협회를 창립했다(사진=한국화랑협회).


그렇게 50년, 반세기가 흐른 2026년. 한국화랑협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5개던 회원사는 2026년 185개로 늘어났고 ‘서울의 몇몇 화랑’은 ‘전국 화랑·갤러리’로 확대됐다.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단체가 된 거다.

50주년 한국화랑협회가 자랑할 만한 대표적인 사업이라면 ‘화랑미술제’와 ‘키아프’(Kiaf·한국국제아트페어)가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아트페어로 오는 4월 44회째를 예정한 화랑미술제는 “미술작품도 한 데 모아놓고 거래할 수 있구나”를 처음 알렸다. 2002년 첫발을 뗀 키아프는 ‘국제’라는 타이틀을 입힌 한국 최초의 아트페어다. 회원사로만 꾸리는 화랑미술제와는 달리 국내외 화랑·갤러리를 향해 문을 열어뒀다. 애초 해외미술시장을 겨냥했던 거다. 그 가장 큰 성과가 ‘키아프리즈’다. 세계 정상급 아트페어로 꼽히는 프리즈를 서울에 유치해 공동개최하는 프로젝트를 성사시킨 일 말이다. 5년 계약으로 2022년 첫 회를 치른 ‘키아프리즈’는 지난해 말 기간을 5년 더 연장(2031년까지)하면서 장기적인 시너지를 노릴 수 있게 됐다.

◇“미술품 감정 제도화”…여전히 2021년에 머물러 있는 ‘물납제’

하지만 한국 제1의 미술단체로서 갈 길은 멀고 숙제는 많다. 문제는 실행력이다. 한국화랑협회가 50주년을 맞아 꺼낸 ‘5대 주요 업적’만 봐도 말이다. ‘국내 최초의 아트페어’를 제외한다면 이렇다 할 결과물이 꽂히질 않는다. 한국미술시장 생태계 기반 구축을 위한 ‘문화강국 근간’, 해외 페어 등을 지원하는 ‘한국미술 국제화 진출 주도’, 시장의 신뢰나 유통질서를 정립한다는 ‘제도 개선을 통한 미술시장 활성화’, 전문가 역량을 강화한다는 ‘컬렉터, 미술 유통인력을 위한 전문교육’ 등 어느 것에서도 혁혁한 성과가 잡히질 않는다는 얘기다. 그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당연히 해야 하는 사업내용을 포장한 듯하다고 할까.

지난해 4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5 화랑미술제’ 전경. 올해 4월 44회째를 예정한 화랑미술제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아트페어다. 1979년 ‘제1회 한국화랑협회전’으로 출발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바꿔 말하면 이런 지표보다 한국화랑협회에게 바라는 좀 더 확실한 기대치가 있다는 얘기다. 그중 하나가 ‘물납제’다. 한국에서 물납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건 2020년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보물 불상 2점을 경매에 내놓으면서다. 이후 2021년 삼성가에서 3조원 규모의 ‘이건희컬렉션’을 기증하며 급물살을 탔다. 그해 말 세법이 개정되고 2023년 발효됐다.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대납한다는, 어찌 보면 간단한 논지지만 실행은 간단치 않았다. 상속세 납부세액이 2000만원 이상이면서 상속재산 중 금융재산보다 많을 때 문화재나 미술품으로 납부할 수 있으니까. 결국 2024년 10월에서야 첫 물납사례가 나왔다. 4점이었다(이만익의 ‘일출도’ 1991, 전광영의 ‘집합08’ 2008, 쩡판즈의 ‘초상화’ 2007 두 점).

2021년 물납제 공론화가 한창일 때 한국화랑협회는 한국고미술협회 등과 함께 ‘문화재·미술품 물납제 도입 세미나’까지 개최했더랬다. “미술품을 제대로 감정할 공식력 있는 기구를 만드는 등 제도화가 최우선”이란 진단도 내놨다. 하지만 지금껏 그 이상의 진척은 없다는 게 문제다.

2021년 3월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열린 ‘문화재·미술품 물납제 도입에 관한 세미나’ 현장. 한국화랑협회는 한국고미술협회 등과 함께 당시 사회·문화적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미술품 물납제’에 발빠르게 대처했으나 이후 더 이상 진척된 내용을 꺼내놓지 못하고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지난달 28일 ‘한국화랑협회 50주년 기념 미디어데이’에 나선 이성훈 한국화랑협회 회장은 물납제를 두곤 “현재로서는 실효성이 없다”고 선부터 그었다. “현금자산이 없을 경우에만 물납할 수 있다는 점, 미술품이 제도권 금융에서는 담보가 될 수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꼽았다. 그렇다면 어떤 해결책을 마련하고 있을까. 없다. 안타깝지만 거기까진 아니었다. “미술품을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미술품에 대한 감정을 제도화해야” 등을 선결과제로 다시 정리했을 뿐이다.

◇한국미술 국제화는 ‘키아프리즈’뿐?

50주년이어도 한국화랑협회가 가진 최상위 관심은 ‘키아프리즈’인 듯하다. 품을 덜 들이면서 글로벌 미술시장에 한국미술을 내보일 플랫폼을 확보했다는 점에선 ‘키아프리즈’가 큰 수확이다. 이 회장은 “프리즈의 저명성 덕분에 키아프에 집중도가 생겼다”며 “덕분에 많이 성장했다”고 자평했다. 구체적으로 “티켓 매출이 5배 이상 늘었고, 언론보도가 10배 이상 상승”했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지난 ‘키아프리즈’ 4회 행사 동안 우려의 목소리는 사그러들지 않았다. 프리즈와의 간극이 가장 컸다. 프리즈에 밀려 키아프가 이류시장으로 고착할 수 있다는 염려를 의식한 듯 이 회장은 “키아프가 그간 프리즈 수준에 걸맞게 성장해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현재는 프리즈에 참여하는 작품, 컬렉터 등에서 차이가 크지만 5년 뒤에는 프리즈와 어깨를 겨룰 상생 파트너가 될 것”이라며 낙관론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어떻게 어깨를 겨룰 건지’에 대해선 들을 수 없었다.

이성훈 한국화랑협회 회장이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화랑협회 50주년 기념 미디어데이’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이 회장은 제22대 한국화랑협회 회장직을 수행 중이다. 지난 50년 동안 15개 화랑 대표 16명이 한국화랑협회 회장직을 맡았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한국화랑협회는 엄격한 회원사 선정을 자랑으로 삼는다. 구체적으로는 총회 의결권을 가진 ‘정회원’ 관리다. 그만큼 신규 화랑(영업등록 5년 뒤 신청)이 준회원(상반기 30개, 하반기 30개 선정)으로 다시 정회원(준회원 3년 뒤 4∼5개 선정)으로 되는 과정이 대단히 까다롭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1000여 개 화랑 중에서 회원사는 185개뿐”이란다.

물론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작가를 발굴·지원’하는 본연의 역할을 놓친 화랑, 기획전보단 대관으로 유지하는 화랑을 걸러내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과연 그런 ‘날림’을 하지 않는 화랑은 모두 회원사가 됐는가 말이다. 185개 화랑만으로 ‘한국’화랑협회라 할 수 있는지, 그들만으로 지난 반세기 한국미술시장을 견인해 왔다고 어찌 그리 자신하는지. 이젠 100년을 바라봐야 할 시점에 명쾌한 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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