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 가스라이팅
모 신문에서 본 내용이다.
"00 윌슨 센터 한국역사 공공정책센터장은 트위터에 북한은 한국이 관계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6·15 선언이라는 이정표 20주년을 앞두고 한국을 가스라이팅하고 있다"고 올렸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은 상대방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히 조작해 스스로 인식이나 판단을 의심하게 해 통제와 지배력을 강화하는 심리 조작의 한 형태다.(후략)"
이 내용을 읽고 나서 사자성어가 바로 나왔다. 요령부득(要領不得)이다. 고칠 게 많은 표현이 나왔다.
'조작해/의심하게 해', 연거푸 '~해'를 쓰고 있다. 하나는 바꿔야 한다. '심리/조작'도 계속 나와 어지럽다. 이것도 수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히 조작해 스스로의 인식이나 판단을 의심케 함으로써 통제와 지배력을 강화하는 심리학 용어다.
◇ '테'와 '결'
'테'는 흔히 '나이테'를 말할 때 쓰는 표현인데 사전적 의미는 어그러지거나 깨지지 않도록 그릇 따위의 몸을 둘러멘 줄이다. 흔히 상담에서 강조하는 '경계'(boundary)라는 용어가 일상에서는 딱딱하게 느껴져서 나는 종종 이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그렇다면 형식을 구성하는 '테' 안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내용의 '결'이다. 나무나 돌, 살갗 따위의 조직의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한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무늬를 말한다.
인간의 자아는 바로 이 '테'와 '결'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나 자신은 어떤 테와 결을 가졌는지 다 같이 생각해 볼 일이다.
◇ '필자' 유감
종종 칼럼에서 글쓴이가 자신을 지칭할 때 쓰는 표현이 '필자'다. 나도 가끔 쓰긴 했지만 사실 그닥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쓰는 사람의 편의 위주요, 독자 친화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나 '저' 사이에서 애매하거나, 혹은 둘을 피하고 싶을 때 '필자'가 쓰이곤 한다. 그러나, 이건 작가로 공인받고 있거나 귄위/명성이 어느 정도 있어야 그나마 어울린다.
그 외에는 '무지'나 '객기'로 비칠 수 있다.
무엇보다 구태의연하며 고민 없이 글을 쓴다는 인상을 주기 십상이다.
◇ '선전'의 참뜻
이 또한 모 신문에서 본 내용이다.
"월드스타로 떠오른 이강인은 16일 열리는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전에서도 선전을 다짐했다"
솔직히 뜨악했다. 당시 신문 기사를 보면 이강인이 이렇게 말했을 리 없다. 목표는 우승이라고 그는 분명히 밝혔다. 정정용 감독도 끝까지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여기에 왜 '선전'(善戰)이라는 표현을 썼는지 묻고 싶다. 구체적으로는 선전의 뜻과 쓰임을 잘 모르거나 곡해한 것이다. 선(善)은 '좋다/잘하다', 선전은 '힘을 다해/실력을 잘 발휘해 잘 싸우다'의 의미다. 곧 승리는 아니다.
선전(善戰)의 실제적 관용은 열심히는 했으나 이기지는 못했을 때 어울린다. 예컨대 국가대표 축구팀이 브라질이나 잉글랜드 등 강자에게 2:1로 졌거나, 혹은 1:1로 비긴 경우 등이 걸맞다.
언어의 뉘앙스를 잘 헤아려 기사를 쓰는 건 저널리스트의 기본적 책무다.
◇ '뜨라'와 '떠라'의 차이
"강자들은 바뀌지 않아…약자들이 '바뀌라' 외치는 수밖에 없어"
모 신문의 기사 제목이다.
뭔가 어색하다. 물론 '바뀌라'가 틀린 건 아니다. '바꾸다'의 피동명령형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 명령형이 적절한가?
우선 '들으라/들어라'의 경우, '들어라'는 구어적, '들으라'는 문어적이다. 그러나 너무 간단하다. 조금 더 보충이 필요하다.
'눈(을) 뜨라'와 '눈(을) 떠라'는 어떤가?
'뜨라'는 뭔지 모를 무게가 느껴진다. 위엄/권위 언저리다. 그래서 경전의 문구에 많이 쓰인다. 불특정 다수에게 힘주어 연설/강론/설교할 때, 혹은 문어와 구어를 넘나드는 제목/타이틀로 적실하다.
'떠라'는 직접적이다. 상대와의 일상적 대화가 그 쓰임이다.
'먹으라/먹어라', '잡으라/잡아라', '말라/마라' 등도 그 연장선이다.
여기서는 '바뀌라'보다 '바꾸라', 혹은 '바꿔라'라는 직접적 의미 전달이 더 적절하다. 무엇보다 '바뀌라'에 대한 이물감을 간과한 게 흠이다. '바뀌라'는 일상 언어생활에서 쓰이는 일이 거의 없다.
◇ 브뤼쉘? 브뤼셀?
연이어 모 신문에서 본 표현이다.
"브뤼쉘 319건 이어 265건"
맞는 표현은 '브뤼셀'이다. 영어로는 Brussel, 독어로는 Brussel, 불어는 Bruxelles이다. 셋 모두 뒷부분은 '셰/쉐'가 아닌 '세'가 맞는다.
'세/셰'를 '쉐'로 잘못 적는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게 '밀크셰이크'를 '밀크쉐이크'로 적는 경우. shake는 [셰이크]이지 [쉐이크]가 아니다.
비슷하게 헷갈리는 유형으로 '파티셰/파티쉐'가 있는 이 표현은 둘 다 아니다. '과자점/과자 만드는 사람' 뜻을 지닌 프랑스어 patissier는 '파티시에'가 맞는 표기요, 발음이다.
◇ '~니만'과 '~느니만'의 차이
"권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도 나오지만, 여전히 쓴소리가 어려운 현실을 드러내는 방증이란 지적도 있다. 누가 되든 할 말은 꾹 참지 말고 바로 했으면 한다. 과거를 바꾸지 못하는 뒤늦은 폭로는 안하니만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여러 신문이 내 눈에 포착된다. 이 문장 마지막에 '~니만'을 봐야 한다. '안하니만'은 '-느니(만)'를 붙여야 맞는다. '-니만'은 틀린다.
'느니만'은 비교되는 행동을 나타내는 연결 어미다. 어미 '-느니'에 보조사 '만'이 결합한 말이다.
'안 하느니만', '없느니만', '죽느니만', '사느니만', '그만두느니만' 등 이런 식으로 활용된다.
◇ 일본식 표현
우리 안의 잘못된 일본식 표현은 지난 칼럼에서도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뽀록나다→들통나다/드러난다(뽀록: ぼろ-襤褸)
왔다리 갔다리→왔다 갔다/왔다가 갔다가(다리たり: '또는' '-거나')
유도리→융통/융통성(유또리ゆとり)
◇ '일러도'와 '빨라도'의 차이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가 일러도 이달 말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또한 모 신문의 표현이다. '일러도'가 어색하다. 잘못 사용한 것이다.
'일러도'는 발화(發話) 시작부터 합리적으로 판단할 때 가장 빠른 착수가 가능한 시작/출발점이라야 걸맞다.
"일러도 이틀 후부터나 작동할 거야/일러도 다음 주는 되어야 착수할 수 있어" 등이 그 예다.
'일러도'와 그 아랫줄 '까지는'이라는 '종료' 성격의 어미가 묶이면서 이상한 문장이 됐다. 여기서는 '일러도'를 그냥 빼거나, '최소한' 정도가 적당하다.
그리고 '일러도'가 '빨라도'보다 근사하겠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꼭 그렇진 않다. 짝이라 할 수 있는 '더뎌도'의 쓰임이 거의 실종 상태인 것만 보더라도 생뚱맞다.
'빨라도/늦어도'의 대비가 현실적이며 더 낫다.
강성곤 현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전 KBS 아나운서 ▲ 정부언론공동외래어심의위원회 위원 역임 ▲ 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전 건국대·숙명여대·중앙대·한양대 겸임교수 ▲ 현 가천대 특임교수
* 더 자세한 내용은 강성곤 위원의 저서 '정확한 말, 세련된 말, 배려의 말', '한국어 발음 실용 소사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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