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영 더봄] 사랑의 전령이 된 초콜릿, 원래 용도는?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전지영 더봄] 사랑의 전령이 된 초콜릿, 원래 용도는?

여성경제신문 2026-02-04 10:00:00 신고

카카오는 처음부터 미의 음식이었다

2월이 되면 초콜릿은 다시 한 번 특별한 음식이 된다. 발렌타인데이라는 이름 아래 초콜릿은 사랑을 전하는 상징으로 호출된다. 그러나 초콜릿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 음식은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바치기 위한 선물이 아니었다. 초콜릿의 기원인 멕시코에서 카카오는 신과 인간 그리고 힘과 생명을 연결하는 재료였다.

아즈텍과 마야 문명에서 카카오 음료는 귀족과 전사 그리고 상류층 여성만이 허락받은 음료였다. 고추와 바닐라·향신료를 섞은 쌉싸름한 카카오 음료는 체력을 보충하고 기분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여성에게는 생명력과 관능을 유지하는 비결로 여겨졌다. 카카오는 화폐로도 사용될 만큼 귀했기에 여성이 이를 마신다는 행위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드러내는 선언이었다.

이 시기 초콜릿에는 설탕이 없었다. 달콤함 대신 쓴맛이 지배했지만 그 쓴맛은 '참아야 할 맛'이 아니라 '견딜 수 있는 힘'의 상징이었다. 미인은 날씬함이 아니라 생기와 에너지를 기준으로 평가받았고 초콜릿은 그 기준을 충족시키는 음식이었다. 초콜릿은 애초부터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한 음식이 아니라 자신을 지탱하기 위한 음식이었다.

사랑을 전하는 상징이 되어 온 초콜릿 /픽사베이
사랑을 전하는 상징이 되어 온 초콜릿 /픽사베이

궁정과 살롱, 초콜릿은 여자의 언어가 되다

초콜릿이 유럽으로 건너오면서 그 의미는 더욱 극적으로 변한다. 프랑스에서 초콜릿은 여성의 사적인 세계로 들어왔다. 루이 14세 시대 이후 초콜릿은 귀족 여성들의 아침 음료로 자리 잡았고 베르사유 궁에는 초콜릿을 전담으로 만드는 초콜라티에가 존재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하루를 초콜릿으로 시작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녀에게 초콜릿은 사치라기보다 긴장과 감시 속에서 숨을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궁정 정치와 끊임없는 시선 속에서 따뜻한 초콜릿 한 잔은 공적인 얼굴을 내려놓는 짧은 탈출구였다. 초콜릿은 여성의 욕망을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던 시대에 은밀하게 자신을 돌보는 언어였다.

초콜릿을 사랑한 마리 앙투아네트 /픽사베이
초콜릿을 사랑한 마리 앙투아네트 /픽사베이

흥미롭게도 오늘날 우리가 아는 발렌타인데이의 풍경은 이 시기 유럽의 궁정 문화와 맞닿아 있다. 중세 이후 발렌타인데이는 연인 간의 편지와 선물로 감정을 표현하는 날로 자리 잡았고 19세기 산업화 이후 초콜릿은 사랑의 감정을 담기 가장 적절한 매개체가 된다. 달콤하지만 과하지 않고 사적이지만 공개적으로 허용되는 선물이었다. 초콜릿은 여성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언어였다.

이후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도 초콜릿은 살롱 문화와 함께 퍼진다. 특히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탄생한 초콜릿 잔두야는 카카오에 헤이즐넛을 섞어 부드럽고 풍요로운 맛을 완성했다. 배우 소피아 로렌이 사랑한 이 초콜릿은 절제보다 충만함을 미덕으로 삼는 이탈리아식 미의식을 상징한다. 그녀가 말한 나는 스파게티와 초콜릿으로 만들어졌다는 고백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을 줄이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미국의 마릴린 먼로는 초콜릿을 가장 솔직하게 사랑한 미인이었다. 그녀는 아침 식사로 핫초콜릿과 달걀을 먹었다고 말했다. 완벽한 몸매를 가졌던 여성이 고열량 음식을 즐겼다는 사실은 지금도 많은 여성에게 위로가 된다. 초콜릿을 먹는다고 해서 아름다움을 잃는 건 아니라는 너무나 단순하지만 잔인하게 지워졌던 진실 때문이다.

현대의 미인들, 초콜릿을 숨기지 않다

20세기에 들어서며 초콜릿은 대중화되지만 미인과 초콜릿의 관계는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마릴린 먼로가 아침 식사로 핫초콜릿을 먹었다고 밝혔을 때 그 고백은 하나의 메시지가 됐다. 아름다움은 금욕의 결과가 아니라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오늘날 발렌타인데이의 초콜릿은 더 이상 누군가에게 주기만 하는 선물이 아니다. 벨기에와 스위스에서는 2월이 되면 연인뿐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초콜릿 소비가 눈에 띄게 늘어난다. 작은 조각을 천천히 그리고 자주 즐기는 문화 속에서 초콜릿은 보상이 아니라 일상이다. 사랑을 핑계로 하지만 결국 선택하는 대상은 자신이다.

미인들이 사랑한 초콜릿 /픽사베이
미인들이 사랑한 초콜릿 /픽사베이

미인은 초콜릿을 참는 여자가 아니었다. 미인은 초콜릿을 먹고도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 여자였다.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고르는 행위는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기쁨에 가깝다. 초콜릿을 입에 넣는 순간 그들은 세상이 요구한 절제보다 자신이 원하는 달콤함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언제나 묘하게도 그들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여성경제신문 전지영 푸드칼럼니스트( foodnetworks@hanmail.net)

전지영 세계식문화 칼럼니스트 

식품영양학 전공 후 청와대 비서실 영양사를 거쳐 외식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대학 겸임교수 및 농식품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음식을 단순히 먹는 대상이 아닌 한 사회의 시간과 기억을 이어주는 언어로 바라보며 유엔식량기구(FAO)와 주요 언론에 칼럼을 연재해 왔다. 식탁 위 한 그릇의 음식에서 세계의 문화와 삶을 읽어내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람으로 남고자 한다.

Copyright ⓒ 여성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