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상 1959년 출범, 시대 앞서간 음악에 인색
대중음악 흐름 바뀌어도 보수성의 벽은 여전
로제·골든, 본상 수상 실패…"K-팝에 곧 문 열 것"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세계 최고 권위의 음악 시상식으로 불리는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는 할리우드의 스타 거리 조성 사업에서 탄생했다. 1955년 할리우드 상공회의소가 유명 배우들의 이름을 바닥에 새기는 '명예의 거리(Walk of Fame)'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영화계의 오스카상처럼 음악계에도 독자적 권위의 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 상의 출발이다.
1957년 미국 음반산업협회는 상 이름을 두고 축음기를 발명한 토머스 에디슨을 기리는 '에디 어워즈'를 검토하다가 원반형 축음기(gramophone)에서 따온 '그래미(Grammy)'로 결정했다. 황금빛 축음기 모양의 그래미 트로피가 탄생한 배경이다. 1959년 제1회 시상식이 열렸고, 이탈리아 가수 도메니코 모두뇨의 「볼라레(Volare)」가 대상 격인 '올해의 레코드'를 받으며 노래 제목처럼 화려하게 날아올랐다.
그래미는 시대를 앞섰던 거장들에게 늘 인색했다. 1960년대 '기타의 신' 지미 헨드릭스는 생전 단 한 번도 주요 경쟁 부문인 본상 수상을 하지 못했고, 비틀즈의 명곡 「예스터데이」도 본상을 받지 못했다. 1970년대를 풍미한 영국 밴드 퀸과 레드 제플린 역시 외면당했다. '오페라 록'이라는 「보헤미안 랩소디」같은 실험적 음악이 보수적인 투표단의 귀에는 낯선 울림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래미는 이들이 해체되거나 세상을 떠난 뒤에야 평생공로상을 주며 늦은 사과를 했다.
그래미 역사에서 가장 눈부신 장면은 1984년 제26회 시상식이다. 마이클 잭슨은 앨범 《스릴러(Thriller)》로 8관왕에 오르며 단일 시상식 최다 수상 기록을 세웠다. 상업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이 사건은 흑인 아티스트가 그래미의 중심에 선 상징적 순간이었다. 그래미를 둘러싼 보수의 벽이 마침내 무너지는 듯한 장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장벽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잭슨 이후에도 그래미는 시대의 흐름을 늘 한 박자 늦게 따라갔다. 1990년대 R&B와 힙합이 대중음악의 주류로 떠오르고 라틴 팝이 세계 시장을 휩쓸었지만, 그래미의 선택은 늘 한 박자 늦었다.
근래에는 K-팝이 그래미의 견고한 문을 두드리고 있다. 올해에는 로제의 「아파트(APT.)」,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의 '골든'이 본상 등 주요 부문 후보군에 오르며 존재감을 더욱 키웠다.
아쉽게도 '골든'이 첫 본상 수상에 실패해 그래미의 보수성을 다시한번 드러냈지만, 퀸과 레드 제플린을 외면했던 과거사를 떠올리면 대단한 성취가 아닐 수 없다. K-팝이 팬덤을 넘어 세계 무대의 중심에 들어선 만큼, 그래미 본상에 K-스타의 이름이 새겨질 날이 곧 올 거라 믿는다.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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