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 전환 묻는 투표서 169명 중 141명 "입헌 군주제 유지"
왕실 지지 여론은 하락…성폭행 등 혐의 왕세자 의붓아들 재판도 개시
(브뤼셀=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노르웨이 왕실이 잇따라 추문에 휩싸이며 위기를 맞았지만 의회 투표에서 대다수의 의원이 왕실 존속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3일 노르웨이 의회에서 왕실을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안건을 표결에 부친 결과 의원 전체 169명 가운데 약 83%인 141명은 현재와 같은 입헌 군주제가 지속돼야 한다는 쪽에 표를 던졌다. 현 하랄 5세(88) 국왕과 그의 후손들이 통치하는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쪽에 투표한 의원은 26명에 그쳤다.
서로 다른 정당에 소속된 7명의 의원은 노르웨이의 국가 원수를 현행과 같은 세습 군주가 아닌 국민이 선출하는 대통령으로 바꾸는 방향으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이번 안건을 발의했다. 체제 전환론자들은 노르웨이 현행 정치 권력은 이미 선출된 의회와 정부에 있으며, 왕실의 세습적 특권이 민주주의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대다수 의원들은 군주제가 당파 정치를 초월함으로써 안정을 가져오고, 노르웨이가 1905년 스웨덴에서 독립한 이래 왕실이 노르웨이를 잘 섬겨왔다며 체제 전환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날 투표는 노르웨이 왕위 계승 1순위인 호콘 왕세자의 아내 메테마리트 왕세자빈(52)이 미국의 억만장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부적절한 친분을 유지한 사실이 드러나 파장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뤄졌다.
미 법무부가 추가로 공개한 엡스타인 파일에 최소 1천번 이상 이름이 오른 메테마리트 왕세자빈은 파일 공개 직후 "판단력이 부족했으며 엡스타인과 접촉한 것을 깊이 후회한다"고 사과했으나 논란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으며 왕실에 대한 여론 악화를 막지 못했다.
노르웨이 일간 베르덴스강이 2일 노르웨이 성인 1천14명을 상대로 실시해 3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왕실 존속을 지지한다는 답변은 작년 72%에서 61%로 떨어졌다. 공화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응답은 작년보다 10%포인트 높은 27%였다.
메테마리트 왕세자빈이 차기 노르웨이 왕비가 돼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44%가 '아니다'라고 응답했다. 찬성은 33%였고, 나머지는 의견을 표명하지 않았다.
메테마리트 왕세자빈이 호콘 왕세자와 결혼하기 전 낳은 아들 마리우스 보그르 회이뷔(29)의 성폭행 혐의 등에 대한 재판이 이날 개시되며 노르웨이 왕실에는 또 한번 따가운 시선이 쏠렸다.
성폭행 4건을 포함해 전 연인을 상대로 한 폭력, 마약 소지, 교통 법규 위반 등 38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회의뷔는 재판 개시 직전인 지난 1일 폭행과 흉기 협박 등의 새로운 혐의로 구속됐다.
이날 초록색 스웨터와 바지 차림으로 법정에 출두한 그는 검찰 측이 38개의 혐의를 낭독하는 동안 무표정을 유지했고, 자신이 받고 있는 성폭행, 가장 폭력 등의 중범죄 혐의는 부인했다고 AFP는 전했다.
호콘 왕세자는 재판을 앞두고 낸 성명에서 왕세자 부부가 회이뷔의 재판을 방청할 계획이 없다며 "그는 우리 가족의 중요한 일원이며, 우리는 그를 사랑한다. 그는 노르웨이 시민으로서 다른 시민과 마찬가지로 같은 책임과 권리를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회이뷔는 왕족이 아니고 왕위 계승 서열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ykhyun14@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