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다. 골목 안 아저씨댁 대문은 이맘때면 화려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대문에 머리를 맞댄 입춘첩은 단정하고 기품이 있었다. 돌개바람은 마당을 훑고 가고 정화수 같은 삼신할머니 물사발은 꽁꽁 얼어붙었다. 나는 지게에 바소쿠리를 장착해 산에 올랐다. 솔바람 소리는 차갑게 윙윙대고 고주박을 패어 지게에 옮긴다. 마을은 뽀얀 연기를 집마다 뿜어대며 점심을 준비했다. 고구마가 들어간 갱시기죽에 김치 한 포기 밥상은 겨우내 먹는 점심 메뉴다. 문풍지가 떨고 저녁 해 기울면 아버지는 늘 동네 사랑방에 가셨고 우리는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연속극 ‘삽다리 총각’을 귀 세워 들으며 긴 겨울밤을 보냈다.
어젯밤엔 먼 길을 갔다. 고향집에서 하늘 가신 어머님을 만났다. 하얀 눈 덮인 꿈길이었다. 이른 아침 밖을 나오니 정말 흰 눈이 왔다. 처마를 타고 낙수 흐르는 인계동 재개발구역을 지난다. 한때 ‘인도래’라는 공간에서 주변 작가 5명이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 공공미술에 참여했던 곳이다. 2001 아웃렛도 환영만 남기고 허물어진 채 이젠 이 동네도 슬럼가가 됐다. 중국 간판에 중국인이 동네를 차지한 지 오래다. 재개발이란 명분에 보따리를 싼 작가들은 일종의 예술인 디아스포라, 실향민이 됐다. 입춘,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점이다. 시간은 눈덩이 구르듯 점점 부풀려 간다. 길운과 기운의 새 기지개를 켜자. 동면에서 깨어난 양서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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