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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상에서 김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영혼의 단짝이지만, 매번 일정한 맛을 유지하는 일은 숙련된 장인에게도 난제로 꼽혀 왔다. 원재료 상태와 보관 온도, 미생물 분포가 제각각이어서 ‘맛의 정점’을 찾는 과정이 경험과 감각이라는 불확실한 영역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인공지능(AI)이 김치가 가장 맛있게 익어가는 순간을 과학적 데이터로 정밀하게 판별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인 세계김치연구소는 AI 분석 기술을 활용해 김치의 발효 단계를 9가지 핵심 성분으로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2일 밝혔다. 김치 발효는 유산균 활동에 따라 산·당·아미노산 조성이 복합적으로 변화하며 특유의 맛과 향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그동안 제조 현장에서는 외관상 큰 차이가 없어도 특정 시점 이후 신맛이 급격히 강해지는 등 품질 불균형 문제가 빈번했는데, 이번 기술 개발로 이를 극복할 전기가 마련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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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김치연구소 원태웅 박사팀과 전남대학교 홍영식 교수 등 공동연구팀은 외부 미생물 간섭을 완전히 배제한 ‘무균(無菌) 김치’ 모델을 구축해 연구 정밀도를 높였다. 연구팀은 유산균 10종을 단일 또는 혼합 접종한 무균 김치를 6℃, 10℃, 15℃ 등 다양한 온도 조건에서 발효시키며 미생물 군집과 대사 물질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추적했다. 그 결과 15℃에서는 미생물 구조가 급변한 반면, 6℃와 10℃에서는 유산균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증식하며 고유한 풍미 성분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방대한 발효 데이터를 AI 머신러닝으로 분석해, 사람의 감각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미묘한 발효 단계 차이를 명확히 가르는 9가지 핵심 성분을 선별했다. 여기에는 신맛을 결정하는 젖산과 숙신산, 단맛을 내는 자당·과당·포도당, 감칠맛을 좌우하는 글라이신·글루탐산·트레오닌, 그리고 영양 성분인 콜린이 포함됐다. 특히 ‘젖산, 자당, 과당’은 김치 숙성도를 판단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지표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AI 예측 모델은 연구팀 내부 데이터뿐 아니라 이미 외부에 공개된 기존 김치 발효 데이터에서도 AUC 0.8 이상의 높은 분류 정확도를 재현해 실제 제조 현장에서의 범용성도 입증했다. 또한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류코노스톡 메센테로이데스’와 ‘락토코커스 락티스’가 전체 발효 성분 변화를 주도하는 핵심 유산균이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했다. 김치 발효를 주관적 판단이 아닌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지표로 관리할 수 있는 기술적 전환점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연구를 주도한 원태웅 박사는 “이번 성과는 김치 발효를 경험과 감각의 영역에서 측정과 AI 분석을 통한 예측의 영역으로 확장한 중요한 전환점”이라며, “앞으로도 발효식품의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공정을 정밀하게 관리할 수 있는 기술로 발전시켜, K-푸드의 신뢰성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번 기술은 대규모 김치 제조 공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품질 변동성을 최소화하고, 소비자에게는 취향에 맞는 최적 숙성도의 김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데이터 기반의 정밀 발효 제어 기술은 향후 다른 발효식품 산업 전반으로 확산돼 식품 제조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는 발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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