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신종근의 'K-리큐르' 이야기…이순신 장군과 세 가지 과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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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신종근의 'K-리큐르' 이야기…이순신 장군과 세 가지 과하주

연합뉴스 2026-02-03 15:06:3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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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달 밝은 밤 수루에 홀로 앉아 과하주를 마시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 [AI 제작]

달 밝은 밤 수루에 홀로 앉아 과하주를 마시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 [AI 제작]

1594년 갑오년, 한반도의 남해안은 임진왜란의 참화 속에서 유독 혹독한 무더위와 전염병이 기승을 부렸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수천 명의 병사를 거느린 수장으로서 전술적 고민뿐 아니라, 보급의 어려움과 병사들의 건강까지 책임져야 하는 중압감 속에 있었다. 그 치열한 기록인 난중일기를 살펴보면, 장군이 여름날 '과하주'(過夏酒)를 마시거나 선물 받았다는 대목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과하주는 이름 그대로 '여름을 지나는 술'이다. 발효주인 약주에 증류주인 소주를 섞어 만드는 혼양주 기법은 조선 양조기술의 정수로 꼽힌다. 기온이 높은 여름에는 발효주가 쉽게 산패되어 식초처럼 변하기 일쑤였으나, 우리 조상들은 알코올 도수가 높은 소주를 더해 미생물의 번식을 억제함으로써 보존기간을 비약적으로 늘렸다.

이순신에게 과하주는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었다. 장군은 이 술을 통해 부하들의 전공을 치하했고, 때로는 무더위와 습기로 가득한 함상 생활에서 배탈을 막는 약용으로 활용했다. 1594년 7월 1일자 일기에는 손님들과 함께 과하주를 마시며 더위를 식혔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이는 장군이 가졌던 몇 안 되는 휴식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현재 과하주는 여러 종류가 시중에 나와 있지만 이순신 장군이 마셨던 과하주를 생각하며 만든 세 가지 술 이야기를 해보겠다.

◇ 한영석발효연구소의 '여해'

이순신 장군의 자(字)인 '여해'(汝諧)를 이름으로 내건 이 술은 한국 최초의 누룩 명인 한영석의 손에서 탄생했다. 전북 정읍에 위치한 '한영석발효연구소'는 술의 원료인 누룩을 직접 연구하고 생산하는 곳으로, '여해'라는 이름에는 '너를 화합하게 하리라'는 뜻이 담겨있다. 명인은 장군의 강직한 리더십과 그 내면에 흐르던 부드러운 인간미를 술 한 병에 녹여내기 위해 고심했다.

한영석의 여해는 일반적인 누룩이 아닌, 보리와 완두를 섞어 만든 '향온곡'을 사용한다. 이 누룩은 과거 임금에게 올리던 술을 빚을 때 쓰이던 것으로, 과하주에 독보적인 향기를 부여한다. 직접 빚은 증류식 소주와 약주가 만난 이 술은 첫입에 참외나 잘 익은 배를 한입 베어 문 듯한 화사한 과실 향을 뿜어낸다. 이어지는 묵직한 단맛과 소주의 타격감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이름처럼 완벽한 '화합'을 이룬다. 이는 전쟁터에서 엄격한 군기와 따뜻한 포용력을 동시에 보여주었던 이순신의 성품을 맛으로 구현한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한영석발효연구소의 '여해 한영석발효연구소의 '여해

[제조사 홈페이지 캡처]

◇ 거북이와두루미 양조장의 '갑오통영(甲午統營) 1594'

경남 통영은 이순신 장군이 초대 통제사로 부임하며 세운 삼도수군통제영의 도시다. 통영에 자리 잡은 '거북이와두루미' 양조장은 장군이 과하주를 가장 빈번하게 마셨던 1594년 갑오년의 기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갑오통영 1594'를 빚어냈다. 이곳은 통영의 역사적 자산을 술로 빚어내는 지역 특화 양조장으로 이름부터 거북선과 장수(두루미)를 상징한다.

갑오통영1594는 통영의 맑은 물과 엄선된 쌀을 바탕으로 전통 과하주 공법을 충실히 따른다. 이 술은 대중적인 접근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전통주 특유의 깊은 풍미를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 쌀에서 유래한 천연의 감칠맛이 입안 전체를 감싸 안으며, 적절한 산미가 뒷맛을 깔끔하게 잡아준다. 술을 빚는 과정은 당화가 절정에 오르는 3일째 되는 날 직접 내린 소주를 부어주어 농밀한 당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하였다. 과거에는 단맛이 고급 재료였기에 당시 양반가들은 여러 번 덧술을 해서 마셨다. 영양이 부족하고 기력이 쇠할 때 과하주는 당분 보충과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특히 이 술은 통영 바다의 풍요로움을 닮아있어, 굴이나 해산물 요리와 곁들였을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갑오통영1594 한 잔은 수백 년 전 통제영 앞바다에서 승리를 구상하던 이순신의 당당한 기개를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

거북이와두루미 양조장의 '갑오통영(甲午統營) 1594' 거북이와두루미 양조장의 '갑오통영(甲午統營) 1594'

[제조사 홈페이지 캡처]

◇ 하기브루와 방풍도가의 '좌수영 과하주'

이순신 장군의 전라좌수영이 있던 전남 여수의 역사를 담은 '좌수영 과하주'는 독특한 협업을 통해 탄생했다. 세련된 양조 감각을 지닌 서울 문래동 소재 '하기브루'(HagiBrew)와 여수 금오도의 특산물인 방풍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방풍도가'가 협업해 빚어낸 이 술은, 난중일기 속에 기록된 장군의 애주(愛酒)를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고전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수 금오도의 거친 갯바람을 견디며 자란 '방풍'(防風) 뿌리는 예로부터 중풍을 예방하고 몸의 습기를 제거한다고 알려져 있다. 장기간 배 위에서 생활하며 신경통과 습진에 시달렸던 수군들의 고단함을 달래주던 약재이기도 했다. 방풍도가의 정교한 양조 기술은 이 방풍의 쌉쌀하고 알싸한 향을 높은 도수의 알코올 속에 녹여냈다. 좌수영 과하주는 증류주의 강렬함에 발포주의 풍부함을 하기브루의 기술로 세련되게 결합한 명주 복원 프로젝트로 탄생했다.

설탕이나 감미료 없이 오직 쌀과 방풍, 누룩만으로 빚어낸 이 술은 고급스러운 과실 향과 깔끔한 마무리가 특징이다. 한 모금 들이켜면 병사들의 건강을 챙기던 장군의 마음처럼 뜨겁고 든든한 기운이 전해진다. 여수의 명물인 갓김치나 기름진 육류와 함께 할 때,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특히 이 술은 술병의 라벨 디자인에도 신경을 썼다. 우선 병 모양은 이순신 장군의 갑옷으로 알려진 '조선 용봉문 투구'의 모양을 본떴고 '좌수영 과하주'의 이름은 난중일기 속 이순신 장군의 친필과 장군의 글씨를 한글화한 '이순신체'를 사용하였다. 또 라벨 오른쪽 위의 거북선은 조선 정조 때 발행된 '이충무공전서'의 '좌수영 거북선'을 그려 넣었다.

(위 왼쪽부터) 좌수영과하주와 조선용봉문 투구, (아래 왼쪽부터) 난중일기 속 장군의 친필과 라벨의 거북선 그림 [제조사 홈페이지 캡처]

(위 왼쪽부터) 좌수영과하주와 조선용봉문 투구, (아래 왼쪽부터) 난중일기 속 장군의 친필과 라벨의 거북선 그림 [제조사 홈페이지 캡처]

이순신 장군에게 과하주는 무더위를 견디는 방편이자, 부하들과 마음을 나누는 매개체였으며, 전쟁의 피로를 씻어내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현대의 '여해', '갑오통영 1594', '좌수영 과하주'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날의 향기를 재현하고 있다. 역사는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과하주 한잔 속에는 430여년 전 이 땅의 바다를 지켜냈던 한 영웅의 고뇌와 승리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이겨내고 더욱 깊은 맛을 완성하는 과하주의 미학은,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았던 이순신 장군의 불굴의 의지와 닮아있다.

신종근 전통주 칼럼니스트

▲ 전시기획자 ▲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 '미술과 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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