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로봇 때문에 로봇을 현장에 못 들어오게 하겠다고 어느 노동조합이 선언한 것 같다. 진짜가 아니고 아마 투쟁 전술의 일부일 것 … 그런데 과거에 증기 기관, 기계가 도입됐을 때 기계 파괴 운동이라고 사람들이 일자리를 뺏는다고 기계를 부수자는 운동이 있었다. 흘러오는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 없다. 결국 그 사회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
느닷없이 로봇(robot)이 인간 정치의 소재로 등장했다. 지난 1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정치적 쟁점으로 던지기도 했다. 여기서 '어느 노동조합'은 현대차노조(지부), '로봇'은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아틀라스(Atlas)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원초적 질문 : 왜 이족보행 로봇(Legged Robot)일까?
<인사이드경제>의 삐딱함이 또 발동하기 시작한다. 모두가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이 어쩌니 로봇 도입 불가피성이 어쩌니 노사 합의 중요성 등을 떠들고 있을 때,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질문을 마구 던지고 싶어진다.
"두 발로 걷고 달리고 춤추는 로봇들이 신기하기는 한데, 자동차공장에서 일하는 로봇들이 꼭 불안한 이족보행(二足步行)을 해야 하나요?"
아틀라스와 함께 휴머노이드 로봇의 대명사가 되어 있는 테슬라의 옵티머스(Optimus), 애질리티 로보틱스(Agility Robotics)의 디지트(Digit) 관련 동영상만이 아니라,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오래 전부터 선보여온 사족보행 로봇 스팟(Spot)과 빅독(BigDog)을 보아도 그렇다.
사람이나 개의 형상만이 아니라 그들이 걷고 뛰고 춤추는 모습까지 구현했다는 점에서 기업의 개발역량을 홍보하기 위해서는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기술을 성공시키기 위해 겪어야 했던 수많은 시행착오 관련 동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저 불안한 이족보행·사족보행 만들어내려고 이렇게까지 애써야 할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이럴 거면 바퀴 다는 게 훨씬 효율적
자료를 뒤지다보니 애질리티 로보틱스는 "Why our humanoid robot has legs(우리 휴머노이드 로봇이 다리를 가진 이유)"라는 동영상까지 만들어 친절한 해설을 해주고 있었다. 이런 질문을 나 혼자만 품었던 게 아니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으로 들여다 보았다.
"이족보행 로봇은 사람을 위해 설계된 세계를 돌아다니는 데 필요한 유연성을 제공합니다. 우리 로봇은 평평한 바닥에만 제한되지 않습니다. 계단을 오르내리고, 야외 지형을 이동하며, 턱(연석)이나 케이블 커버 같은 장애물을 넘는 등 복잡한 공간을 통과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동차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적어도 작업 도중에는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야외 지형을 이동할 일이 거의 없다. 각종 장애물은 인간에게도 위험한 것이어서 생산라인에서는 최우선적으로 제거해야 할 대상이다.
"로봇이 동적으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고, 작은 설치 면적을 유지하면서도 더 높은 물체에 손이 닿거나 좁은 공간에서 작업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이런 강력한 동적 안정성은 다리가 단지 이동 수단일 뿐 아니라, 조작(manipulation) 작업을 위한 정밀한 위치결정 시스템으로도 작동하게 해 줍니다."
나같이 삐딱한 사람들을 위해 추가 설명까지 붙여놓았지만 그래도 궁금증이 해결되진 않는다. 동적 균형, 좁은 공간 작업, 작업을 위한 정밀한 위치결정이 중요하다면 굳이 다리가 아니라 바퀴를 다는 게 훨씬 효율적인 게 아닐까? 작업을 위한 높낮이 조정, 팔 길이를 늘렸다 줄였다 하는 기능만 추가하면 나머지 목적을 모두 달성할 수 있는데 말이다.
이동수단은 사족보행에서 바퀴로 진화
사실 생산공장에 최초로 투입된 로봇은 인간의 형체와는 거리가 먼 '로봇 팔(robot arm)'이었다. 용접이나 무거운 부품을 옮기는 작업은 '이동성(mobility)'보다 힘센 근육이나 조립안정성이 훨씬 중요했기 때문에 인간의 기능 중 '팔' 기능만 따로 떼어 개발된 것이다.
사실 이게 훨씬 자연스러운 발상 아닐까? 생산공장에 투입된 로봇이 인간의 형체나 걸음걸이를 닮아야 할 이유가 없다. 인간이 로봇에게 기대하는 건 인간의 다양한 기능 중 몇 가지만을 필요로 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균형 유지에 방해만 되는 머리를 굳이 달고 있어야 할 이유도 없다. 로봇 머리에 뇌나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말이다.
바퀴에서 두 발로 로봇이 진화한다는 논리도 설 땅이 없다. 인간은 오래 전부터 이동수단으로 말이라는 사족보행 동물을 이용했다. 그 다음으로 선택된 수단은 말이 끄는 마차, 즉 바퀴와 사족보행의 결합(하이브리드)이었고, 이제는 자동차·자전거라는 바퀴로 완전히 이행하지 않았는가. 이동수단 진화의 역사는 명백히 이족·사족보행에서 바퀴로의 이동이었다.
기업가치와 주식가격 올릴 목적
휴머노이드 로봇이 넘어야 할 벽인 이것만이 아니다. 단순반복 업무라 하더라도 100kg 가까운 무게를 지탱하며 일하려면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하는데, 현재 배터리 기술로는 몇 시간 이상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하자니 몸이 더 무거워지고, 전선을 연결해 전력을 공급하자니 가오가 서질 않는다. 에너지 소비 면에서도 바퀴가 더 효율적이다.
자동차 공장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이족보행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휴머노이드를 상상하면 공포스러워진다. 최고의 공간 효율성을 추구하는 곳이기에 계단은 최소화 또는 폭이 매우 좁게 설계된다. 이곳을 100kg 가까운 강철 로봇이 오르내린다면 인간 노동자는 계단에 진입할 엄두도 못 낼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부딪히기라도 한다면? 영화 '터미네이터'를 상상하게 된다.
생산공장 배치까지는 첩첩산중인데도 이족보행으로 눈길을 끄는 아틀라스를 공개하고 생산공장 투입계획을 발표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다른 건 몰라도 현대차 주가에 확실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테슬라의 기업가치 상승 역시 이족보행 로봇 옵티머스의 서사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재명 대통령도 아틀라스와 현대차 주가 상승을 함께 언급하지 않았던가.
"최근 '아틀라스'라는 AI 로봇을 노동 현장에 투입한다고 하니까 그 회사 주가는 올라가고 각광을 받는데 현장에선 '우리 일자리 없어진다. 로봇 설치를 막자'는 운동을 하더라." (1월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창업시대 전략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 모두발언)
주목할 지점은 생산관계의 변화
물론 우리 사회에는 기술 맹신론자 못지않게 기술 불신론자들도 만만치 않게 존재한다. 사실 <인사이드경제> 역시 어느 정도는 불신론에 좀 더 가까운 입장에 서있기도 하다.
"라디오가 발명되었을 때 신문과 책이 자취를 감출 거라 했지만 TV와 컴퓨터,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지금에도 책의 출판은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 일자리가 대폭 사라질 것처럼 호들갑 떨었지만 자동차산업 전체로 보면 일자리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다. 4차 산업혁명, 로봇, AI … 글쎄, 이것도 공포 마케팅 아닌가?"
하지만 플랫폼과 인공지능, AI의 활용은 책과 신문을 생산·제작 및 소비하는 방식을 엄청나게 변화시켰다. 책은 서점에서 찾아보고 구매하는 게 아니라, 거대한 플랫폼을 활용해 추천받고 검색하고 할인받아 주문한다. 신문이 새로운 소식을 중개하는 게 아니라 검색 포털이 다양한 언론사의 소식을 선별하여 맞춤형으로 중개한다.
마찬가지로 생산공장에 로봇이 도입되는 문제에서 따져야 할 것은, 일자리를 줄이는 효과라기보다 생산관계를 변화시키는 효과이다. 로봇은 AI와 마찬가지로 많은 한계를 갖고 있으며 숱한 실수와 오류투성이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완전 자동화(Automation) 대신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며 협업하는 헤테로메이션(Heteromation)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
자동화(Automation) 대신 헤테로메이션(Heteromation)
문제는 로봇을 비롯한 신기술 도입에서 형성되는 '관계'의 문제이다. 즉, 이 혼합체계가 인간 노동자와 생산로봇의 협업이 될 것인지 아니면 인간을 '오류 수습용 보험장치'로 전락시킬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차 생산라인에 '원 키트 시스템'을 비롯 새로운 시스템이 적용될 때마다 발생하는 공통의 쟁점은 이거였다. "인간이 움직이는데 기계가 걸리적거리지 않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기계가 움직이는데 인간이 걸리적거리지 않도록 할 것인가." 대형 음식점에 도입된 서빙 로봇 시스템 역시 로봇이 인간을 피해다니는 스타일에서 점점 로봇의 주도권이 강화되는 중이다.
다만 이를 '인간과 로봇의 권력 다툼'으로 보는 것은 과하다. 밑바닥 생산현장에서는 인간과 로봇의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긴 하지만 이 꼭대기에는 명백히 '인간 자본가'와 '인간 관리자'가 서있기 때문이다. 즉, 자본의 지배가 관철된다는 점은 동일한데 가장 말단의 영역에서 인간 노동력과 생산로봇의 관계 설정과 주도권 다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읽는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
여러 학술·정책 글에서 러다이트 운동은 새로 도입된 기계를 무차별적으로 깨부순 파괴주의자가 아니라, 임금·숙련·고용구조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쓰이는 기계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은 것뿐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러다이트는 기술 자체를 반대한 게 아니라 기술이 어떤 조건으로 도입되느냐, 즉 임금삭감과 숙련 무력화, 노동통제에 맞서 싸운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도입하려는 로봇 신기술의 효용성도 의심스럽고, 오히려 주가 부양을 위해 뻥튀기된 측면이 강하다면 여기에서 호들갑을 떨 일이 아니라 "말단 현장에서 인간과 로봇은 어떤 관계를 형성하도록 만들어갈 것인가" "자본이 이윤 추구만을 위해 안정성을 해치려 할 때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대대적인 사회적 토론을 조직해야 한다.
"결국 길은 창업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다. 감수성도 그렇고 교육수준도 그렇고 성실함이나 집요함, 손기술 등 기능, 또 사회적인 인프라, 모든 여건이 아주 좋다."
1월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창업시대 전략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제시한 해법이다. 아직 갈 길이 참 멀다. 앞으로 써가야 할 얘기도 참 많아질 것 같다. 러다이트 운동의 역사가 말해주는 건 '기술을 막을 수 없으니 적응하라'가 아니라, 기술 도입의 이익과 위험을 누가 떠안는지 '교섭과 규제로 설계하라'는 교훈이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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