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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민 경제전문기자]“10여년째 비슷한 얼굴들이 모여, 똑같은 얘기를 반복하고 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원장(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회장)은 2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주최로 열린 사회적 대화 토론회에서 한국 사회적 대화의 현주소를 직격했다. 그는 사회적 대화가 반복적으로 공전해온 이유를 ‘합의 실패’가 아닌 ‘대표성과 의제 설정의 한계’에서 찾았다.
권 원장은 이날 ‘새로운 사회적 대화의 출발과 과제’ 토론회에서 “경사노위가 위상이나 법적인 위치에 비해 한 일이 별로 없다”며 “최근 사회적 합의 사례나 급변하는 경제·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수단으로서 사회적 대화의 역할을 점검하고, 새로운 출발을 위한 반성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신고리 원전 공론화 사례 경사노위 접목해야”
경사노위 본회의는 위원장을 포함해 정부·노동계·경영계·공익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노동자 대표로는 한국노총, 사용자 대표로는 경총·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중앙회 등 전통적인 노·사 대표 조직의 수장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구조다. 공익위원은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폴리텍대학 이사장을 비롯해 재정경제부 장관, 고용노동부 장관이 당연직으로 참여한다
이 같은 구성은 제도적 안정성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플랫폼 노동자·청년·비정규직 등 노동시장 구조 변화 속에서 새롭게 부상한 이해당사자들의 참여가 제한적이라는 한계를 동시에 안고 있다.
경사노위가 법률상 노·사·정 대표성을 갖춘 기구로 설계됐음에도, 실제 구성은 전통적인 노사 대표 조직과 정부 중심으로 고착화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표성 문제는 누가 사회적 대화의 ‘당사자’인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기업별·산업별 노조 체계 밖에 있는 플랫폼 노동자나 특수고용·프리랜서, 청년층은 사회적 대화의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면서도, 논의 과정에서는 주변에 머물러 왔다.
이로 인해 사회적 대화가 사회 전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보다는, 기존 이해당사자 간 입장 조율에 머무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권 원장은 사회적 대화 재설계를 참고 사례로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를 들었다. 그는 당시 공론화 과정이 사회적으로 첨예한 갈등 사안을 다루면서도, 시민 참여와 숙의를 통해 정당성과 수용성을 동시에 확보한 대표적 성공 사례라고 평가했다.
권 원장은 “노·사·정 내부 합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일수록, 시민이 참여하는 숙의 과정을 통해 사회적 신뢰를 만들어야 한다”며 국민참여형 공론화 모델을 경사노위 사회적 대화에 접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존의 사회적 대화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론화와 숙의를 결합해 정당성의 기반을 넓히자는 제안이다.
그는 구체적으로 경사노위 산하에 시민공론회나 숙의배심 형태로 국민참여 숙의패널을 두고 의제별 위원회·특별위원회의 논의 의제와 동일 의제에 대한 토론과 여론 형성을 통해 ‘시민 권고안’을 제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권 원장은 김지형 경사노위 위원장이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당시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축적한 경험은 경사노위가 새로운 사회적 대화를 설계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토론 패널로 참여한 이준희 광운대 교수는 사회적 대화 참여 주체가 국민을 대변할 수 있는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 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2020년 노사정이 극적으로 합의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대표제를 노동계 반대를 이유로 국회가 수용하지 않으면서 무산된 사례를 들었다.
그는 “사회적 대화 참여 주체들의 권한과 합의의 권위를 국민과 대의기관이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참여 주체의 정당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현 정부 일자리 질 개선에 주력, 일자리 확대도 함께 고민해야”
권 원장은 사회적 대화의 의제 전환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적 대화가 다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누가 참여하느냐뿐 아니라 무엇을 놓고 논의하느냐가 분명해야 한다”며, 지금까지의 사회적 대화가 임금과 근로시간 등 전통적인 노사 현안에 머물러 온 탓에 노사간 이해 조정이라는 한계를 넘지 못한 탓에 국민적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현 정부 노동정책이 개정 노조법과 근로시간 개선, 산업안전 강화 등 일자리의 질 개선에 집중돼 있다”며, “사회적 대화는 이에 더해 좋은 일자리의 양을 어떻게 늘릴 것인지를 함께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저성장 국면에서 양질의 일자리는 특정 산업과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만큼, 이른바 ‘판교형 일자리’로 대표되는 혁신 산업 생태계 조성 전략이 사회적 대화의 핵심 의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비정규직 보호와 관련해서는 현행 기간제법과 파견법이 변화한 노동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계약 갱신 기대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방향으로 법체계를 재설계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다.
아울러 AI와 로보틱스 확산 등 디지털 전환에 대응해, 동시 출퇴근을 전제로 한 공장형 노동에서 벗어나 일하는 방식 전반에 대한 제도 개혁 논의가 사회적 대화의 중심 의제로 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토론 패널로 참여한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사노위 사회적 대화 의제로 △AI 등 디지털화 영향에 대한 대처, △우수 엔지니어 육성과 인센티브 제공 방안, △노동안전에 대한 업종별 접근 등을 제안했다.
그는 “포괄적인 문제 인식과 대처 방안을 도출함과 동시에 업종별 워킹그룹을 구성해 성공사례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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