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마디 더봄] 16일 만에 돌아온 비극의 캐리어···‘아프리카서 배운 협상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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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마디 더봄] 16일 만에 돌아온 비극의 캐리어···‘아프리카서 배운 협상의 기술’

여성경제신문 2026-02-03 10:00:00 신고

손잡이가 박살 나서 돌아온 캐리어
2017년 7월 6일 / 요하네스버그 / 춥고 축축한 밤 공항

첫날이었다. 한국을 떠난 바로 첫날부터 짐이 오지 않았다. 인천-홍콩-조벅-케이프타운 여정에서 내 캐리어 하나가 홍콩에 남겨졌다. 2주 내내 연락해도 답이 없었고, 고객센터 대표 메일로 항의 메일을 보내니까 그제야 보냈다는 답이 왔다. 무려 16일 만이었다. 

결국 캠핑 때 먹으려고 싸 온 음식은 하나도 못 먹고 두꺼운 옷도 입지 못한 채 춥고 배고픈 사막 캠핑을 끝내고, 나미비아 빈트후크에 와서야 본격적인 불만 메일 작성에 착수했다. 

캐리어를 받은 당시의 일기장 /윤마디 madimadi-e@naver.com
캐리어를 받은 당시의 일기장 /윤마디 madimadi-e@naver.com

사원 시절 나는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스튜어트 다이아몬드)> 라는 책에 부록으로 있던 카드 한 장을 지갑에 넣고 다녔다. 막내 사원이라 하고 싶은 말을 잘 하지 못하던 시절, 그 카드에 적힌 4단계 협상 방법을 자주 들여다보며 연습했지만 정작 써먹을 기회는 없었다. 왜냐? 나는 사원이니까^^.

또 한국에서는 문제가 비교적 빠르게 해결되어, 일을 길게 끌 상황 자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방법이 아프리카에서 생각날 줄이야. 컴플레인 메일 창을 켜고 기억을 더듬어 최대한 논리에 맞게 사연을 적어 내려갔다.

첫째, 공식 홈페이지에서 회사의 경영 가치 키워드를 찾는다. 경영 가치는 고객과의 약속이므로, 이를 지키지 않은 점을 지적하면 상대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귀사 홈페이지 고객 헌장에 나와 있는 사랑, 봉사, 헌신, 만족이라는 약속은 현장에서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매일 ‘오늘 보낸다’고 거짓으로 답하며 고객을 기만하고, 책임을 다른 부서로 넘기며 문제 해결을 미뤘다. 도착 지연 신고증으로 하루 70달러 5일 치 보상받을 수 있으니 그걸로 됐지 않냐는 식으로 답한다. 그들이 영어가 서툰 외국인을 무시한다고 느꼈으며, 해결의 핵심인 짐을 보내는 것인데 누구도 그 책임을 안 맡으려는 태도에 크게 실망했다.”

둘째, 구체적으로 입은 피해를 설명했다.

“짐이 도착하지 않아 개인뿐 아니라 팀 전체의 여행 일정에 차질이 생겼고, 캠핑용품을 새로 구매하느라 추가 지출이 발생했다. 도구가 부족해 여행의 질도 전반적으로 낮아졌다. 나는 한국에서 퇴사한 뒤 아프리카 여행을 온 예술가로, 작업을 시작하지도 못한 상태다.” (마치 대단한 예술가인 것처럼 부풀려 말하기)

셋째, 고객의 실망으로 인해 회사가 입게 될 손해와, 일이 원만히 해결될 경우의 이익을 언급했다.

“최근 한국 방송을 통해 아프리카 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인 여행자 커뮤니티에 해당 항공사의 수하물 관리와 서비스에 대한 후기를 남길 경우, 귀사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홍콩 수하물 담당자에 대한 조사를 요청한다.”

넷째, 구체적인 요구를 명시했다.

“7월 6일부터 8일까지 요하네스버그에 체류할 예정이니, 그 공항으로 캐리어를 보내 달라.”

부서진 채 돌아온 캐리어 /일러스트=윤마디 madimadi-e@naver.com
부서진 채 돌아온 캐리어 /일러스트=윤마디 madimadi-e@naver.com

창고 안으로 들어가 직접 찾아보라는 말에 항의하던 중, 직원에게 조용히 하라는 제지를 받았다. 화를 못 참고 소리를 높이자, 그제야 직원이 전산 시스템을 확인했고 내 캐리어는 다른 수하물 사무실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무실에 있었다.

공항을 가로질러 또 다른 사무실의 닫힌 문을 두드려 들어가서야 내 짐을 돌려받았다. 마침내 찾은 캐리어는 손잡이가 깨져 있었다. 조심조심 옮겼지만 결국 차에 실을 때 부서진 단면에 손을 깊게 베여 숙소에 올 때까지 피를 철철 흘렸다. 이 상처는 3주 동안이나 지속됐다.

이제 끝났느냐?

아니.

이제 수하물 지연 보상 청구를 해야 한다.

여행 일정지도 /출처=구글지도
여행 일정지도 /출처=구글지도

여성경제신문 윤마디 일러스트레이터 madimadi-e@naver.com

윤마디 일러스트레이터·작가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다. 여행 드로잉을 기반으로 서사를 만들어가는 에세이 작가로, 한 장소에서 사람이 기능하는 구조를 파악하고 개인의 경험을 통해 사회의 구조와 삶의 조건을 들여다본다. 현재 일본 여행기 <유니폼> 과 아프리카 여행기 <아프리카 그림일기> 를 연재하며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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