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국회의장의 연설은 선언이 아니라 계산서였다. 2일 제432차 국회(임시회) 개회식에서 제시된 소득 격차 해소와 중대재해 책임 강화 메시지는 대기업 CFO들에게 재무제표 구조를 다시 짜라는 주문으로 읽힌다. 공정거래부터 AI·플랫폼·지역 정책까지, 국회의 방향은 비용 문제가 아니라 손익의 기준 자체를 바꾸겠다는 신호다.
가장 먼저 흔들릴 항목은 매출원가율이다. 납품단가 연동, 에너지 비용 반영, 협동조합 단위의 집단 교섭이 제도화될 경우, 대기업은 기존처럼 원가를 하방 압박하기 어렵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매출원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손익계산서상 영업이익률을 직접 압박한다. 특히 제조·유통·플랫폼 기업의 경우, 가격 전가가 제한적인 구조에서는 원가율 1%포인트 변화가 곧바로 실적 변동성으로 연결된다.
두 번째는 충당부채와 우발부채의 증가 가능성이다. 산업안전과 중대재해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국회의 메시지는 사고 발생 이후의 벌금 문제가 아니다. 원청 책임 범위가 넓어질수록, CFO는 소송 가능성·배상 리스크·행정 제재를 반영해 충당부채 설정 기준을 보수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 이는 재무상태표의 부채 증가로 이어지고, 자기자본비율과 차입 여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건설·조선·중공업처럼 하청 비중이 높은 업종일수록 이 변화는 빠르게 나타날 수 있다.
플랫폼·데이터 기업의 경우 판매관리비 구조 변화가 불가피하다. 개인정보 보호, 소비자 보호, 노동 안전을 하나의 규범으로 묶은 국회의 시각은, 컴플라이언스 비용을 일회성이 아닌 상시 고정비로 만든다. 법무·보안·노무 인력 확충, 시스템 고도화 비용이 판관비에 지속적으로 반영되며, EBITDA 개선 여력을 제한할 가능성이 크다.
AI 전환은 설비투자(CAPEX)와 고정비(OPEX)를 동시에 자극한다. AI 기본법 시행으로 기술 투자는 가속화될 수 있지만, 동시에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까지 포괄하는 사회보험 확대 논의가 본격화되면 인건비 구조도 변한다. CFO 입장에서는 AI 투자를 단순 성장 투자로 볼 수 없다. CAPEX 증가와 함께 OPEX 상승이 병행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투자 회수 기간, 감가상각 부담, 인건비 상승을 함께 고려한 NPV 재산정이 불가피해진다.
지역 정책 역시 자본 배분 전략에 영향을 준다. 지역 본사 설립, 지역 재투자 기금, 차등·공동 법인세 구상이 제도화될 경우, 신규 투자와 증설 계획에서 입지 선택은 단순 비용 문제가 아니라 세무·정책 리스크 관리 차원이 된다. 이는 유형자산 투자 계획(CAPEX)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법인세 부담과 현금흐름 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결국 CFO들이 가장 민감하게 보는 지점은 현금흐름표다. 원가율 상승, 판관비 고정화, 안전 투자 확대, AI·지역 투자 증가가 동시에 진행될 경우,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압박을 받는다. 여기에 충당부채 설정과 투자 확대가 겹치면, 잉여현금흐름(FCF)은 빠르게 줄어들 수 있다. 배당 정책, 자사주 매입, 차입 전략까지 재검토 대상이 된다.
이번 국회 연설의 핵심은 분명하다. 규제를 늘리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기업의 재무 판단 기준을 바꾸라는 요구다. 2026년 대기업 CFO의 역할은 비용 절감보다 먼저, 정책 리스크가 언제 손익계산서·재무상태표·현금흐름표에 반영될지를 읽어내는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준비가 늦는 기업일수록 숫자가 먼저 반응할 수 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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