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페트병에 담긴 소주를 물이나 음료로 오인해 마시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에서는 알코올 음료의 용기를 단순한 포장재가 아닌 안전과 위생 관리의 대상으로 엄격하게 규제하는 반면 한국은 주류 용기 관리가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미국 최대 커뮤니티 레딧에는 "저게 그냥 물이라고 생각하세요?"라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참이슬 페트병을 들고 있는 사진을 올렸을 뿐이다. 이를 본 레딧 이용자 Turbulent_Loss2726는 "라벨에는 영어로 술이라고 적힌 부분이 전혀 없다"며 "만약 내가 한국어를 전혀 읽을 줄 몰랐다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물로 착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용자 Dry_Day8844는 "소주 병뚜껑 옆면에 알코올 도수가 잘 안 보이고 알아보기 힘들게 적혀 있다"며 "브랜드 이름 바로 아래에 눈에 잘 띄게 표시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페트병 소주를 본 외국인들의 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일본 매체 리모에 따르면 일본인 일러스트레이터가 인천공항 편의점에서 겪은 경험담이 엑스(X·옛 트위터)에서 10만 건이 넘는 '좋아요'를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그는 목이 말라 음료를 찾던 중 물방울 디자인의 페트병을 발견했고 한국어를 전혀 읽지 못한 탓에 일본 생수 '이로하스'처럼 보였다고 밝혔다. 가격도 약 200엔으로 부담이 없었던 그는 제품을 구매했다가 한 모금 마신 뒤 강한 알코올 냄새에 깜짝 놀랐다. 번역 앱을 통해 도수 16도의 소주 '참이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한국 물은 원래 이런 맛인가 의심했다"고 회상했다.
이 같은 혼란은 술을 페트병에 담아 유통하는 한국의 독특한 주류 문화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다. 국내에서는 소주를 비롯한 일부 주류가 유리병과 캔뿐 아니라 페트병 용기로도 판매되지만 해외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의 경우 '식품 접촉 소재(Food Contact Materials)' 규정을 통해 식품과 접촉하는 용기의 안전성을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알코올 음료가 플라스틱 용기와 장기간 접촉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화학물질 용출 위험을 관리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증류주나 고도수 주류는 사실상 유리병 사용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할 경우에도 엄격한 시험과 인증을 통과해야 하는 만큼 실제 유통 사례는 드물다.
미국 역시 연방 차원에서 특정 용기를 일괄적으로 강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주마다 규제가 다르고 업계 관행상 증류주는 유리병에 담는 것이 일반적이다. 플라스틱 병 사용이 법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장기 보관 시 품질 저하 우려와 소비자 거부감, 브랜드 이미지 문제 등으로 대형 주류 업체들은 거의 채택하지 않는다.
알코올이 용기를 침식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한 일본은 사케, 소주(쇼추), 위스키 등 대부분의 주류를 유리병에 담아 유통한다. 종이팩에 들어 있는 술이 일부 존재하지만 저도수 주류 위주이며 증류주를 페트병에 담는 문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호주 역시 주류 용기에 대한 안전 규제가 매우 엄격하다. 주류는 대부분 유리병, 캔, 또는 특수 인증된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판매된다. 호주 주류 규제기관은 알코올 도수가 높은 증류주의 경우 플라스틱 용기 사용 자체를 제한한다. 심지어 병 디자인과 라벨에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마르코 씨(Marco·29·남)는 "멕시코에서는 페트병에 들어 있는 술을 찾아보기 힘들다"며 "데킬라와 같은 술도 대부분 유리병에 담겨 판매된다"고 말했다. 이어 "투명한 페트병에 술이 들어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하는 만큼 어린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는 특히 위험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미국인 피비(Pheobe·여·25)는 "소주가 한국에서 워낙 흔한 술이라서 그런 줄 알았지만 꽤 일반적인 모습이라는 점이 놀라웠다"며 "미국에서 페트병에 술이 들어있는 모습을 보기 어려운 만큼 한국처럼 페트병에 술이 담겨 있는 문화는 상당히 낯설게 느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서 나름 오래 살아서 소주라는 사실을 알지만 한국에 처음 온 미국인들은 충분히 헷갈릴 수 있다"이라고 덧붙였다.
이렇듯 해외와 달리 한국에서는 주류 용기에 관대하다 보니 일부에서는 고도수 주류의 플라스틱 용기 사용을 제한하거나 술임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표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역시 이러한 문화적 차이가 안전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외국인 관광객을 비롯해 어린이나 음주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가 술을 음료로 오인할 위험 또한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소비자 안전은 정보의 직관성에서 시작된다"며 "한국인들에게는 페트병 소주가 익숙한 일상의 풍경일지 모르지만 주류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문화권에서 온 외국인들에게는 안전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최근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만큼 그에 걸맞은 안전 기준과 포장 가이드라인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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