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스타트업 투자의 문법을 바꾸겠습니다”
스타트업 생태계는 ‘총성 없는 전쟁터’다. 생존을 위해 기술 개발과 인재 확보 등 다양한 측면에서의 고군분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투자 유치’도 중요한 요소다. 혁신적인 기술로 무장한 창업가들이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이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자본(투자)을 만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아서다.
실패가 가르쳐준 교훈, “타이밍이 생명이다”
스타트업이 겪는 가장 큰 난관은 단연 자금 조달이다. 자금이 부족해지면 운영과 마케팅 비용, 인건비 등 필수적인 지출을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이는 결국 경쟁력 상실과 사업 중단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스타트업과 투자자의 연결이 쉬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백 장의 IR(기업 설명) 자료를 배포해도 회신율이 떨어져 고민하는 창업가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 높고 견고한 장벽을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이라는 무기로 허물겠다고 나선 이가 있다. 실패라는 쓰라린 교과서를 통해 ‘투자의 타이밍’이 기업의 생존을 결정한다는 진리를 깨달은 사람, 바로 (주)벤처플랫폼(ventureplatform.biz)의 박준호 대표다. 그는 스타트업과 투자자를 가장 정교하게 연결하는 ‘디지털 중매쟁이’이자, 창업가들의 외로운 항해를 돕는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한다. “아이디어와 기술은 훌륭한데, 단지 투자자를 만날 ‘네트워크’가 없어서 사라지는 기업이 너무나 많습니다.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박 대표의 창업 스토리는 화려한 성공담이 아닌 실패담에서 시작된다. 과거 스타트업 창업과 투자 유치 과정을 직접 겪은 그는 초기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치자 자금 조달의 ‘골든타임’을 놓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투자 유치 시기를 놓친 상태에서 코로나라는 파도를 맞으니, 자본력이 없는 스타트업은 버틸 재간이 없더군요. 그때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스타트업에게 투자는 단순히 돈을 받는 행위가 아니라, 생존의 시간을 버는 일이라는 것을요.”
아픔을 딛고 그가 주목한 것은 ‘비효율’이었다. 소규모 스타트업 대표가 실무를 병행하며 전문적인 투자 지식을 쌓고, 적합한 투자자를 찾아다니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왜 투자 유치는 여전히 ‘인맥’과 ‘운’에 의존하는 아날로그 방식인가?” 이 근본적인 물음이 벤처플랫폼을 설립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단순 매칭을 넘어선 AI 투자 비서, ‘VC루트’
박준호 대표가 내놓은 해답은 AI 기반 투자 매칭 및 관리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플랫폼 ‘VC루트’다. 기존의 플랫폼들이 단순히 투자자 리스트를 보여주는 ‘전화번호부’ 역할에 그쳤다면, VC루트는 기업과 투자자의 ‘DNA’를 분석해 짝을 찾아주는 ‘결혼정보회사’에 가깝다. 핵심은 정교한 ‘데이터 분석’이다. 벤처플랫폼은 투자자들이 운용하는 펀드의 성격과 과거 포트폴리오, 투자 성향 등을 데이터화한다. 이를 바탕으로 스타트업의 산업 분야, 기술력, 성장 단계와 대조해 매칭 확률이 가장 높은 투자자를 추천한다. 여기에 ‘워크플로우(Workflow)’ 기능을 더해 차별화를 꾀했다. 스타트업이 IR 자료를 보낸 후 어떤 투자자에게 거절당했는지, 피드백은 무엇이었는지 등의 히스토리를 CRM(고객 관계 관리) 형태로 제공한다. 막연한 거절의 공포를 데이터 기반의 전략 수립으로 전환하는, 진정한 의미의 ‘투자 비서’인 셈이다.
벤처플랫폼은 오는 2026년 3월 정식 서비스 론칭을 앞두고 있다. 클로즈 베타 테스트를 통해 확보한 투자자와 기업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중이다. 하지만 박 대표의 시선은 이미 국내를 넘어 세계를 향해 있다. 그의 장기 비전은 ‘글로벌 크로스보더(Cross-Border) 매칭’이다. 박 대표는 “동남아, 유럽, 미국의 개인 투자자들이 한국의 유망 스타트업에 클릭 한 번으로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보 부족으로 닫혀 있던 해외 개인 투자 시장을 열어, 국내 스타트업의 자금줄을 다변화하겠다는 것이다.
“기술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
벤처플랫폼은 기술력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이다. 하지만 박준호 대표는 경영 철학을 묻는 질문에 “기술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며 ‘인문학적 가치’를 강조했다. “실패를 통해 배운 또 하나의 교훈은 ‘니즈(Needs)’보다 ‘원츠(Wants)’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제품도 중요하지만, 결국 고객이 지갑을 여는 것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때입니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차별화 포인트는 결국 ‘공감’과 ‘감성’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철학은 조직 운영에서도 드러난다. 벤처플랫폼은 박 대표와 오랜 시간 동고동락한 초기 멤버들을 주축으로 끈끈한 팀워크를 자랑한다. 일이 없어 허송세월하며 해체 위기를 겪었을 때도, 그들은 서로를 탓하는 대신 제주도로 떠나 한 달간 합숙하며 치열하게 아이템을 피봇(Pivot)했다. “우리는 벤처 정신으로 인생을 건 동반자들”이라는 박 대표의 말에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그의 진심이 묻어났다.
인터뷰 말미, 그는 ‘스몰 자이언츠(Small Giants)’라는 단어를 꺼냈다. 규모는 작아도 매출이 크고 내실 있는 강소기업을 뜻한다. “지금의 유니콘 기업들도 시작은 시드 투자가 간절했던 작은 기업이었습니다. 저희 플랫폼을 통해 더 많은 스타트업이 투자의 문턱을 넘어, 대한민국 경제를 지탱하는 ‘스몰 자이언츠’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실패를 자산으로, 데이터를 무기로 스타트업의 험난한 항해를 돕는 나침반이 되겠다는 박준호 대표. 그의 도전은 이제 막 궤도에 올랐지만, 벤처플랫폼이 만들어갈 ‘연결의 가치’는 이미 수많은 창업가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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