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달 간 시설 내 장애여성들에게 가해진 오랜 폭력이 속속 드러나면서 장애계가 바쁘게 대응하고 있다. 하나는 강화군에 위치한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에서 발생한 성폭력이다. 작년 4월부터 색동원 시설장이 시설 내 장애여성 13인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가해 왔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며, 같은 해 9월에는 경찰청의 압수수색과 강화군의 심층조사가 진행됐지만 현재까지 어느 쪽도 수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른 한편에는 집단수용시설에서 발생한 재생산권 침해 사안들이 있다. 작년 12월 장애계 단체들로 구성된 강제불임수술진상규명대책위원회는 최근까지도 시설 내 장애여성들에게 강제 불임·피임 시술이 이뤄졌음을 지적했다. 특히 목포시에 위치한 노숙인재활시설 동명원에서는 다수의 장애여성에게 강제 불임·피임 시술, 강제적인 자녀 분리가 이뤄졌음이 최근 드러나기도 했다.
이 사건들, 그리고 이와 유사하게 반복되어 온 수많은 사례를 각각의 독립적인 사건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시설 내 장애여성들에 대한 폭력과 재생산통제가 수년 간 지역을 불문하고 발생했다는 것은 이 문제가 특정 개인이나 개별 시설의 일탈로 환원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러한 성폭력과 재생산권 침해가 장기간 지속되었는지, 왜 유사한 일들이 끊이지 않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질문은 결국 시설 내 폭력이 어떤 제도적·사회적 조건 속에서 가능해졌는지 질문케 한다.
시설 내 장애여성에 대한 폭력은 시설 카르텔, 이를 정당화하는 의료 모델,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책임지지 않는 국가의 방기, 그리고 젠더 불평등이 서로 맞물리며 발생한다. 수십 년 간 여러 종교·복지 재단들은 시설 운영을 통해 취하는 이익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또 장애를 병리적 상태로 간주하고 치료와 관리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 의학적 기준으로 장애를 재단하는 시각이 만연해 왔다. 이러한 인식은 장애인을 시설에 수용하는 것이 더 '안전'하고 '효율적'이라는 생각을 정당화해 왔다. 게다가 탈시설조례를 폐지하거나 장애인 지역사회 돌봄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지자체와 정부가 있다. 여기에 더해 시설 안팎의 가부장적 문화는 장애여성을 성적 자기결정권이 없는 존재로 위치시키곤 한다.
이러한 구조적 뒤얽힘 속에서 시설 내 장애여성들은 성폭력과 재생산권 침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왔다. 시설은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필수 의료 및 상담 서비스에 제대로 접근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삶의 결정권은 시설장과 종사자에게 집중되었으며, 피해를 말하면 생활의 기반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가 침묵을 강요하기도 했다. 이 어려움의 대부분이 '고립된 공간'이 아니었다면 상당 부분 예방되거나 즉각적으로 해소되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는 결정적으로 시설화의 문제이다.
우리는 시설 내 장애 여성의 삶을 고려할 경우 탈시설과 보건의료 간의 관계가 더더욱 밀접해진다고 생각한다. 시설 문제에 대한 젠더 관점은 보건의료가 시설 체제에 어떻게 기여해 왔는지 보여주며, 한편으로는 탈시설 사회로의 변화 과정에서 보건의료 종사자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먼저 돌아볼 것은 보건의료가 시설 체제에 기여해 온 방식이다. 강제 불임 시술이 가장 분명한 사례다. 1973년부터 1999년까지 시행된 모자보건법 제9조는 의료진이 유전이나 전염을 이유로 재생산통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불임수술을 명령할 수 있게 했고, 이때 장애여성의 동의 여부는 고려되지 않았다. 이러한 시술은 시설 내에서 관리의 일환으로 광범위하게 시행되었으며 그 결과 장애여성은 스스로의 성과 삶을 결정할 수 없는 환자, 보호와 관리의 대상이라는 관점이 계속해서 강화되었다.
또 하나는 정신과 약물 투약을 통한 통제다. 시설 내 장애여성들은 충분한 설명이나 동의 없이 의료진에 의해 항정신성 약물이나 진정제를 투여받았고, 이는 시설 운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약물은 저항을 무디게 만들고 장애여성을 '관리 가능한' 상태로 만들었다. 그 결과 폭력과 학대는 외부로 드러나기 어려웠고, 피해 경험은 증상의 일부로 취급되며 의료적 문제로 환원되곤 했다(☞관련논문 바로가기).
의료는 이 폭력의 외부에 있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전제를 함께 공유하고 공모해 온 중요한 행위자였다. 이 공모의 역사를 돌아보며,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해나갈지 질문해야 한다. 탈시설 사회로의 전환과 관련하여 보건의료 종사자들은 시설 중심의 돌봄과 의료가 어떤 폭력과 건강 손상을 구조적으로 낳아왔는지 공개적으로 문제 삼아야 한다. 그리고 탈시설 장애인들의 삶을 지탱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장애인 의료·돌봄 정책을 재설계하고 그 실현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구체적으로 탈시설 장애인의 1차 의료기관 접근성을 제고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현재 장애인 건강·치과 주치의 제도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전체 장애인의 1% 미만, 장애친화검진기관 이용자는 0.3%에 불과하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의료기관을 장애친화검진기관으로 지정하는 등 의료이용과 관련된 물리적 접근성이 낮고 의사 참여 부족, 산부인과 전문진료 부족 등 구조적 문제가 여전히 산재해 있다. 제도의 양적 확대를 넘어, 장애인의 생애경험을 고려하여 실질적으로 의료와 돌봄에 접근할 수 있는 제도를 시급히 마련할 때다.
탈시설은 단순히 시설을 없애고 거주형태를 바꾸는 과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간 변화를 넘어, 그동안 '정상'으로 여겨져 온 의료와 돌봄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시설 내 장애여성들의 경험은 탈시설 사회가 어떤 의료와 돌봄을 필요로 하는지 이미 말해주고 있다. 시설 체제 속에서 젠더폭력에 침묵하고 동조했던 의료의 논리를, 회복과 안전을 보장하는 당사자 중심의 돌봄·의료 논리로 바꾸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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