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코비치·메드베데프 '유머파'…사발렌카·안드레예바는 '분노파'
(서울=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 테니스 메이저 대회 결승전이 끝나면 불과 몇 분 전까지 치열하게 싸웠던 두 선수가 나란히 서서 승리와 패배 소감을 팬들 앞에서 밝히는 것이 관례다.
다른 종목에서도 '패장 인터뷰'를 하기는 하지만 미디어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경기가 끝난 직후 팬들 앞에서 '패배 소감'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종목은 거의 없다.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ESPN은 최근 '테니스에서 준우승 스피치의 예술성과 고통'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결승전에서 패한 선수들의 어려움에 주목했다.
5년 전 호주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 올랐던 제니퍼 브레이디(미국)는 결승전 전날 밤에 경기보다는 경기 후 인터뷰 준비에 더 정신이 팔렸었다는 것이다.
결승에서 오사카 나오미(일본)에게 져 준우승한 브레이디는 "평생을 바쳐 노력하고 훈련해온 목표였는데 패한 지 5분도 안 돼서 무대에 올라 대회 관계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상대 선수에게는 축하해야 한다"고 곤혹스러웠던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그 행사가 끝나면 한 시간 넘게 슬픔에 잠겨 있겠지만, 일단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상황에서 (슬픈) 감정을 숨기고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1일 호주 멜버른에서 끝난 호주오픈 테니스 남자 단식 결승에서 패한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는 '유머파'에 속한다.
그는 호주오픈 결승전 10전 전승 끝에 첫 패배를 당한 아쉬움을 감추고 "이겼을 때 연설문과 졌을 때 소감을 별도로 준비해왔다"고 웃으며 우승한 카를로스 알카라스(스페인)에게 "당신은 아직 젊어서 많은 기회가 앞으로 있을 것이다, 나처럼"이라고 농담했다.
또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본 라파엘 나달(스페인)에게 인사하며 "오늘 스페인 전설 2명을 상대해야 해 불공평했다"고 말해 코트 분위기를 재미있게 만들었다.
다닐 메드베데프(러시아)도 재미있는 편이다. 메이저 대회 결승에 6번 올라 준우승 5번을 기록한 그는 2019년 US오픈에서 처음 메이저 대회 결승에 올라 나달에게 2-3(5-7 3-6 7-5 6-4 4-6)으로 분패했다.
진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메드베데프는 '개그 본능'을 발휘했다.
나달의 우승이 확정된 이후 주최 측에서 나달의 18번에 이르는 메이저 우승 영상을 차례로 코트 내 대형 화면을 통해 보여준 것을 두고 "만일 내가 우승했으면 뭘 보여주려고 했느냐"고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물어 관중석에서 폭소가 터지게 했다.
물론 패배의 아픔을 숨기지 못하는 선수들도 있다.
아리나 사발렌카(벨라루스)는 지난해 프랑스오픈 결승에서 코코 고프(미국)에게 패한 뒤 기자회견에서 "내가 너무 실수를 많이 해서 고프가 이겼다"고 말해 팬들의 비난을 받았다.
미라 안드레예바(러시아)의 경우 2023년 호주오픈 주니어 여자 단식 결승에서 패한 뒤 시상식 내내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계속 흘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패배 후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 팬들의 더 큰 박수를 받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윔블던 여자 단식 결승에서 어맨다 아니시모바(미국)는 이가 시비옹테크(폴란드)에게 0-2(0-6 0-6) 완패를 당했다. 한 게임도 따내지 못하는 수모였다.
아니시모바는 눈물을 참지 못했지만 가까스로 진정한 뒤 상대 선수와 대회 관계자들에게 축하와 감사 인사를 전한 뒤 엄마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눈물샘이 터졌다.
그가 "엄마가 오늘 아침 비행기로 오셨는데 정말 죄송하다"며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다 해주셨다. 그동안 엄마가 오면 진다고 했는데, 오늘 진 것은 엄마 때문이 결코 아니다"라고 말하자 팬들은 웃음과 함께 큰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올해 호주오픈에서 준우승한 사발렌카는 이번 대회 결승에 앞서 "준우승자를 시상식 내내 참석하도록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결승에서 패한 선수에게는) 최악의 순간이고,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을 만큼 그 상황에서 벗어날 시간이 필요하다"고 '준우승자 인터뷰' 폐지론에 힘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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