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중열 기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한 이른바 상호관세의 관세 정산 시점이 임박하면서 한국 수출기업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관세 부과의 적법성을 둘러싼 미국 연방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지연되고 있지만, 정작 관세 행정 절차인 정산은 별개로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어 실무 대응을 미루기 어려운 상황이다.
관세 정산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환급 가능성의 ‘분기점’이다. 정산 이전에는 수입 신고 내용을 수정하는 사후정정신고(PSC)를 통해 비교적 간단하게 과납 관세를 바로잡을 수 있지만, 정산이 완료된 이후에는 관세국경보호청(CBP)의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을 제기하거나 국제무역법원(CIT)에 소송을 제기하는 등 복잡한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정산 시계는 이미 움직였다…작년 4월 수출분부터 순차 확정
미국 관세국경보호청은 수입자가 신고·납부한 관세액을 사후에 검토해 최종 확정하는 정산 절차를 통관일로부터 통상 약 314일 전후에 진행한다. 2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이 관행을 기준으로 할 때, 지난해 4월 5일 이후 미국으로 수출된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 정산이 이달 중순부터 순차적으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4월 5일부터 IEEPA를 근거로 한국산 수입품에 10%의 국가별 관세를 부과했고, 이후 한미 관세 협상 결과에 따라 지난해 8월 7일부터는 예고됐던 25% 대신 15% 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약 314일이 경과하는 시점이 바로 이번 달이라는 점에서, 상당수 통관 건이 동시에 정산 구간에 진입하게 된다.
미국의 관세 행정 체계에서는 수입자가 자율적으로 신고·납부한 관세를 CBP가 사후 검증해 최종 관세액을 확정한다. 이 확정 절차가 바로 ‘정산’이며, 정산 결과에 따라 관세를 추가 납부하거나 환급받는 일이 발생한다. 한국 기업들 역시 이 정산 과정을 통해 상당한 규모의 관세를 돌려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산 전·후 환급 갈림길…PSC냐, 이의신청·소송이냐
관세 환급을 둘러싼 실무상 차이는 정산 이전과 이후에 극명하게 갈린다. 정산이 이뤄지기 전에는 사후정정신고를 통해 수입 신고 내용의 오류를 수정하고 과다 납부한 관세에 대한 환급을 비교적 신속하게 받을 수 있다. 신고 내용의 단순 오류나 과세 근거에 대한 다툼이 있는 경우에도 행정적 절차로 정리가 가능하다.
반면 정산이 완료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 경우 수입자는 정산일로부터 180일 이내에 CBP에 이의신청을 제기해야 하며, 이마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국제무역법원에 제소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절차가 길어질 뿐 아니라 법률 비용 부담도 커지고, 환급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도 커진다. 업계에서는 “정산 전 대응이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환급의 키는 IOR…DDP 거래도 계약 없으면 공허
관세 환급 실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누가 실제로 관세를 부담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수입신고자(Importer of Record, IOR)로 등록돼 있느냐’다. 미국 관세 제도상 환급을 청구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은 관세 부담 주체가 아니라 해당 통관 건에서 IOR로 신고된 자에게 귀속된다.
한국 수출기업이나 현지 법인·자회사가 IOR로 통관한 경우에는 직접 환급 절차를 진행할 수 있지만, 미국 수입자가 IOR인 경우 한국 기업은 환급 절차에 직접 나설 수 없다. 이 경우 환급금은 미국 수입자에게 귀속될 가능성이 크고, 한국 기업은 계약 관계에 따라 환급금을 배분받아야 하는 구조가 된다.
특히 관세지급인도조건(DDP) 거래라고 하더라도 관세 비용을 부담했다는 사실만으로 환급 청구권이 자동 발생하지 않는다. 계약서에 환급금의 귀속 주체와 분배 방식, 환급 절차 협조 의무 등이 명시돼 있지 않다면, 실제 환급금이 미국 수입자에게 귀속되는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산을 앞둔 기업들은 통관 구조와 계약 내용을 함께 점검해야 한다.
◇대법 판결은 변수, 시효는 확정…선제 대응 없인 환급 멀어진다
IEEPA 관세를 둘러싼 법적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미국 국제무역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지적하며 관세 부과를 무효로 판단했고, 항소심 법원도 이 판단을 대체로 유지했다. 현재 사건은 연방대법원에 계류 중이지만, 구두변론 이후에도 선고 일정이 공지되지 않아 결론이 상당 기간 지연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문제는 대법원의 판단과 관계없이 관세 정산 절차는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설령 대법원이 IEEPA 관세의 위법성을 인정하더라도, 그 효력이 소송 당사자에게만 한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기업들은 자동 환급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정산이 완료된 통관 건에 대해서는 반드시 기한 내 이의신청을 제기해야 한다. 이의신청 기한은 정산일로부터 180일로, 이를 넘기면 환급 가능성이 사실상 급격히 줄어든다. 일부 대기업들은 이미 관세 환급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국제무역법원 소송에 착수했지만,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정보와 인력 부족으로 대응이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아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관세 정산이 임박한 만큼 수입신고자 여부 확인, 계약 조건 점검, 사후정정 신고와 이의신청 기한 관리 등 기본적인 준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중소·중견기업일수록 정부와 수출지원기관의 통상·법률 지원 창구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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