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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후 경영학박사·외국변호사] 요즘 리더들을 만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화제가 있습니다. 인공지능(AI)이 너무 빠르게 조직 안으로 들어왔다는 이야기입니다. 보고서를 쓰고, 자료를 정리하고, 전략의 초안까지 만들어내는 AI를 보며 어떤 리더는 안도하고, 어떤 리더는 불안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 두 감정의 뿌리는 같습니다. AI를 나와 같은 자리를 노리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AI는 리더의 자리를 빼앗으러 온 존재가 아닙니다. 문제는 AI가 아니라, AI와 리더 사이의 ‘가르마’를 어디에 긋느냐에 있습니다. 가르마는 단순한 경계선이 아닙니다. 누가 무엇을 맡고, 누가 어떤 책임을 지며, 어디까지 개입하고 어디서 물러설지를 정하는 기준선입니다. 이 가르마가 흐릿하면 협업은 충돌로 바뀌고, 가르마가 분명하면 AI는 위협이 아니라 파트너가 됩니다.
AI는 빠르고 지치지 않으며 방대한 정보를 동시에 다룹니다. 패턴을 찾고 가능성을 제시하는 데 탁월합니다. 그러나 AI는 방향을 정하지 않고, 의미를 책임지지 않으며, 결과를 감당하지 않습니다. 이 자리가 바로 리더의 역할입니다. 리더는 속도가 아니라 맥락을 보고, 정답이 아니라 결정을 하며, 계산이 아니라 책임을 집니다. AI와 리더는 잘하는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경쟁 관계가 아니라 역할 관계입니다.
이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 ‘줄탁동시’입니다. 알 안에서 새끼가 쪼고, 동시에 밖에서 어미가 쪼아야 비로소 알이 깨집니다. 안과 밖이 같은 순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때 변화가 시작됩니다. AI 협업도 같습니다. 리더가 문제의식을 던지고 질문을 설계하면, AI는 수많은 정보와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다시 리더가 그것을 걸러내고 선택하고 결정합니다. 이 왕복이 맞물릴 때 AI는 단순한 자동화 도구를 넘어 사고의 확장 장치가 됩니다.
AI 시대의 리더에게 태도 OS란, 기술을 얼마나 아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역할과 책임의 기준을 얼마나 분명히 세워두었느냐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AI에게 맡기고, 무엇을 끝까지 내가 책임질 것인지, 어디까지는 자동화하고 어디부터는 판단으로 남겨둘 것인지를 정리해 두는 내적 운영체제입니다. 이 태도 OS가 정리되지 않으면 리더는 AI 앞에서 흔들립니다. 과신과 불신 사이를 오가며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반대로 태도 OS가 정리된 리더는 AI를 두려워하지 않고, 통제하려 애쓰지도 않으면서 주도권을 유지합니다.
많은 리더들이 이 단계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자기 자신의 가르마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모른 채 AI를 쓰면 판단을 통째로 넘기거나, 아무 일도 맡기지 못합니다. 자기 주특기가 뭔지도 모르면서 누군가를 도울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가진 어떤 능력이 AI의 강점을 보완하는지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능력 있는 AI를 쓴다고 해서 리더의 실력이 저절로 쌓이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키워야 할 역량의 방향을 놓치면, AI 옆에서 사고하지 않는 리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AI라도 조직의 목적을 정의하지는 못합니다. 반대로 리더가 AI를 쓰지 못하면 시야는 빠르게 좁아집니다.
AI를 에이전트로 쓸지, 파트너로 쓸지는 리더의 선택입니다. 반복 업무를 맡길 수도 있고, 사고의 폭을 넓히는 도구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어떤 역할이든 가르마는 분명해야 합니다. AI가 대신 결정하지 않도록 하되, AI의 제안을 가볍게 흘려보내지도 말아야 합니다.
AI 시대의 리더는 더 이상 모든 답을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신 더 나은 질문을 던지고, 더 어려운 결정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AI가 제시한 수많은 답 중 하나를 선택해 책임지는 순간은 언제나 인간의 몫입니다.
AI 때문에 일이 더 많아졌다고 느낀다면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AI가 나를 대체할까”가 아니라 “나는 AI와 어떤 가르마를 그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이 질문에 답이 서면 AI는 위협이 아니라 동력이 됩니다.
계란 안에서 쪼는 소리와 밖에서 쪼는 소리가 맞물릴 때, AI와 리더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다툴 필요는 없습니다. 가르마를 갈라 역할을 정하면 됩니다. 그 순간 AI는 당신의 자리를 위협하지 않고, 당신의 리더십을 한 단계 위로 밀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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