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S코인] ③ 합종연횡上 — 은행들의 '원화 이동 관문' 쟁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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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S코인] ③ 합종연횡上 — 은행들의 '원화 이동 관문' 쟁탈전

여성경제신문 2026-02-02 08: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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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 꼬리표를 떼고 결제와 송금, 자산 운용의 판을 흔드는 '금융 혈관'으로 자리잡았다. 한국도 제도권 편입을 위한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 어떻게 쓰이고 관리될지에 대한 구체적인 밑그림은 여전히 희미하다. 여성경제신문 연중기획 [원화S코인]은 지각 변동과도 같은 금융 인프라의 전환기를 맞아 스테이블코인의 흐름을 다각도로 조망한다. 1부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실물 경제와 산업 전반에 가져올 변화를 추적하고 제도적 빈틈을 메우기 위한 과제를 짚어본다. 2부에서는 이론과 실무를 아우르는 전문가 진단을 통해 실제 도입 단계에서 마주할 쟁점들을 깊이 있게 분석한다. 본 기획이 한국형 디지털 통화 체계 구축을 위한 실질적인 논의를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주]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9월 15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금융위원장-금융지주 회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신한금융지주 진옥동 회장, kb금융지주 양종희 회장, 우리금융지주 임종룡 회장, 농협금융지주 이찬우 회장, 하나금융지주 함영주 회장 등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9월 15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금융위원장-금융지주 회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신한금융지주 진옥동 회장, kb금융지주 양종희 회장, 우리금융지주 임종룡 회장, 농협금융지주 이찬우 회장, 하나금융지주 함영주 회장 등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 A은행 전략회의실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가 현실로 다가오자 경영진의 질문은 하나로 모였다. “원화가 빠져나가는 길목을 누가 쥘 것인가.” 결론은 예상보다 빨랐다. 혼자서는 방어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연대를 선택했다. 준비금 관리와 정산 책임을 나누고 발행 구조를 미리 고정해 통화 흐름의 주도권을 공동으로 붙들겠다는 계산이었다. 스테이블코인은 신사업이 아니라 ‘레일 방어전’이라는 인식이 이때부터 분명해졌다.

# 같은 시각 B은행의 판단은 달랐다. 연합에 서둘러 올라타기보다 내부 전담 조직을 확대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타진하며 독자 생존 가능성을 점검했다. 표면적으로는 신중한 행보다. 그러나 속내는 단순하다. 통화 인프라를 타 기관에 맡기는 순간 은행의 역할은 결제 사업자가 아니라 자금 공급자로 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합류하든 버티든 선택지는 둘뿐이었다. 원화 이동의 관문을 지키거나, 남이 깔아놓은 레일 위를 달리거나.

요즘 은행권 내부 분위기를 묘사한 위의 장면은 하나의 사실을 보여준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승부는 기술이 아니라 ‘어디서 원화가 움직이느냐’에서 갈린다는 것이다. 발행 형태와 무관하게 은행과 비은행이 겨냥하는 지점은 명확히 나뉜다. 은행은 환전과 송금이 맞물리는 구간을 지키려 하고, 비은행은 결제가 반복되는 전자상거래 영역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

같은 원화를 기반으로 하지만 작동하는 위치는 다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비은행권의 입법 요구가 상대적으로 크게 부각되지만 실제 합종연횡은 은행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들이 먼저 연대를 택한 배경에는 ‘원화 이동의 관문’을 놓칠 수 없다는 판단이 자리한다. 환전과 송금, 원화가 국경을 넘는 길목을 공동으로 방어하려는 움직임이다.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이러한 흐름은 더욱 두드러진다. 미국에서는 다수 은행이 공동 발행 주체로 참여하는 구조는 일반적이지 않다. JP모건의 ‘JPM 코인’은 은행 내부 정산 수단에 가깝고, 서클(Circle)의 USDC는 비은행이 발행하되 은행이 수탁과 결제 파트너로 결합하는 형태다. 일본 역시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이 플랫폼을 제공하는 방식일 뿐 발행 책임을 여러 은행이 나눠 갖는 연합 모델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형 은행연대 탄생 배경

반면 국내 은행 연대는 원화 이동을 집단적으로 방어하려는 성격이 강하다. 원화 국제 결제망의 제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도입 일정의 불확실성, 은행법상 지분 규제, 제한된 은행 수, 비은행 플랫폼의 확장 압력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개별 은행만으로는 전략을 구축하기 어려운 환경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공동 발행 구조는 글로벌 표준이라기보다 한국적 제약이 만들어낸 대응 방식에 가깝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하나금융을 중심으로 한 컨소시엄 구성이 빠르게 구체화되고 있다. 특히 하나은행은 국내 은행 가운데 신탁업 활용도가 높은 편이다. 이를 적용할 경우 스테이블코인에 대응하는 원화 자산을 용도가 명확한 신탁 자산으로 분리 관리할 수 있다. 발행량과 준비금의 대응 관계, 환매 시 자금 흐름, 정산 우선순위를 계약으로 고정하는 구조다.

또한 이러한 접근은 발행 자체보다 준비금과 정산 자산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나은행의 전략을 들여다보면 스테이블코인을 별도의 자산군으로 키우기보다 기존 은행 자산 관리 체계 안에 편입시키는 방향과 맞닿아 있다. 새로운 화폐를 만드는 접근이 아닌 은행이 통제 가능한 범위에서 원화 이동 경로를 확장하려는 설계에 가깝다.

구체적으로 하나금융이 BNK금융과 iM금융, SC제일은행, OK저축은행 등을 묶어 금융권 컨소시엄을 추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발행 구조를 사전에 고정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금융당국이 제도 도입 초기 은행 중심 컨소시엄에 발행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협업 체계를 먼저 구축한 연합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12월 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을지로 본점에서 국내 해외여행 대표 플랫폼 '트레블로그' 서비스 가입자 1000만명 돌파 축하 기념행사에서 출근하는 임직원들에게 한정판 기내식을 전달하고 있다. / 하나금융그룹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12월 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을지로 본점에서 국내 해외여행 대표 플랫폼 '트레블로그' 서비스 가입자 1000만명 돌파 축하 기념행사에서 출근하는 임직원들에게 한정판 기내식을 전달하고 있다. / 하나금융그룹

연대냐 독자냐···KB·신한·우리銀 제각각

다만 지분 규제는 은행간 연대를 압박하는 변수ㅇ다. 현행 은행법상 은행은 타사 지분을 원칙적으로 15%까지만 보유할 수 있다. 발행사에서 과반 지분을 확보하려면 최소 네 곳 이상의 은행이 필요하다. 하나금융 컨소시엄이 여섯 개 금융사를 선점하면서 후발 주자가 독자 연합을 꾸리기 위한 부담은 구조적으로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그렇다고 모든 금융지주가 연합 중심 전략을 택한 것은 아니다. 일부는 내부 역량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대비하고 있다. 조직 개편과 전담 체계 구축, 글로벌 협력 검토 등 실행 기반을 먼저 정비하는 흐름이다. 같은 스테이블코인을 겨냥하지만 접근 경로는 갈리고 있다.

KB금융그룹은 디지털자산을 그룹 차원의 중장기 전략과 직접 연결하며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전략·시너지 조직과 AI·디지털 전환 기능을 통합한 ‘미래전략부문’을 신설했고 가상자산 대응 협의체 내 스테이블코인 분과도 상설 조직으로 편입했다. 글로벌 금융기관 및 기술업체와의 협업 가능성을 열어두는 동시에 국제 금융망 연계를 검토하며 스테이블코인 기반 해외송금 실험 참여도 준비 중이다.

신한은행은 디지털자산 조직을 ‘AX·디지털솔루션부 디지털자산Cell’로 확대 개편하며 프로젝트 단위 대응에서 상시 조직 체제로 전환했다. 한국은행 CBDC 테스트 참여와 일본 스테이블코인 플랫폼과의 한·일 해외송금 실증, 가상자산 거래소와의 보이스피싱 대응 협력 등을 병행하며 제도화 이전 단계에서 활용 가능성을 점검하고 있다.

우리금융그룹은 디지털자산팀을 중심으로 STO와 CBDC, 스테이블코인을 하나의 검토 축에 묶고 결제·송금·기업 자금관리 시나리오를 정리하고 있다. 기업 자금 이동과 정산 효율을 포함한 활용 범위를 검토하면서 내부 운영 체계와의 연동 가능성을 동시에 살피는 접근이다.

환전 없는 해외 결제부터 물류 대금 즉시 정산까지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일상의 경제적 동선을 실시간으로 바꾸는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다만 성공의 열쇠는 원화의 가치를 끝까지 지켜내는 제도적 신뢰에 있다. /구글 Gemini 생성 일러스트
환전 없는 해외 결제부터 물류 대금 즉시 정산까지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일상의 경제적 동선을 실시간으로 바꾸는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다만 성공의 열쇠는 원화의 가치를 끝까지 지켜내는 제도적 신뢰에 있다. /구글 Gemini 생성 일러스트

중앙컴퓨팅에 코인 올려 돌리는 구조

이처럼 각 은행이 구상하는 스테이블코인은 완전히 새로운 결제 생태계를 만드는 실험이라기보다 기존 중앙 전산 시스템 위에 토큰 기능을 덧붙이는 접근으로 봐야 한다. 은행은 이미 계정계와 지급결제망을 통해 원화 이동을 관리하고 있는 만큼 블록체인은 이를 대체하기보다 외부 전송 경로를 확장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구조적으로 ‘새로운 화폐’라기보다 중앙 컴퓨팅 기반 금융망에 스테이블코인이라는 형태를 장착한 모델과 유사하다. 차현진 호서대 디지털금융학과 교수는 “발행·유통·상환 기능이 분리되지 않으면 은행의 무통장 예금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용자가 체감하는 변화는 송금 속도와 접근성일 수 있지만 자산 관리와 최종 정산 권한은 여전히 은행 전산에 남는다는 얘기다.

즉 스테이블코인이 분산 기술로 주목받아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은행형 모델은 탈중앙화라기보다 통제된 확장을 택한 설계다. 토큰이 외부 네트워크를 따라 이동하더라도 원화 잔고 확인과 환전은 중앙 시스템에서 처리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기존 컨소시엄에 추가 은행이 합류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개별 지분율은 낮아지더라도 원화 이동의 관문을 공동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결국 남아 있는 변수는 제도다. 금융당국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을 은행 자회사 업종으로 인정할 경우 지분 제한 구조는 달라질 수 있다. 소수 은행만으로 발행사가 설립될 가능성도 열린다. 동시에 하나의 은행이 복수의 스테이블코인 연합에 참여할 수 있는지에 따라 합종연횡의 양상 역시 급변할 것으로 보인다.

☞CBDC(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법정화폐다. 은행 예금이나 스테이블코인과 달리 중앙은행이 직접 책임지는 무위험 자산으로 본격 도입 시 기존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과 역할이 재편될 수 있어 현재 은행권 전략의 주요 불확실성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탈중앙화 = 거래 기록과 권한이 중앙 기관(예: 은행)에 집중되지 않고, 분산된 네트워크 참여자들 사이에 공유·검증되는 블록체인의 핵심 원리다. 그러나 국내 은행 중심 스테이블코인 모델은 이 원리보다 '통제된 확장'에 가까워 기술의 본질과 실현 형태 사이의 괴리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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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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