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에서 건져 올린 짙은 초록빛 해조류 곰피는 한동안 아는 사람만 찾던 식재료였다. 미역이나 다시마보다 투박한 생김새 때문에 외면받았지만, 한 번 맛을 들이면 잊기 어렵다. 특히 곰피를 살짝 데쳐 쌈으로 먹는 곰피쌈은 겨울 밥상을 단번에 바다로 바꿔놓는 메뉴다. 담백하면서도 쌉싸름한 맛, 입안에 남는 미묘한 단맛이 고기나 젓갈과 놀라울 만큼 잘 어울린다.
곰피는 주로 동해와 남해 일부 지역에서 겨울에 채취된다. 수온이 낮을수록 잎이 두껍고 질겨 보이지만, 제대로 손질하면 오히려 쫀득한 식감이 살아난다. 미역처럼 부드럽게 풀어지는 해조류가 아니라 씹을수록 탄력이 느껴지는 것이 곰피의 특징이다. 이 식감 덕분에 쌈 채소로 활용했을 때 존재감이 분명하다.
곰피쌈의 기본은 손질과 데치기다. 생곰피는 표면에 미끈한 점액질과 바다 향이 강하게 남아 있다. 흐르는 물에 여러 번 문질러 씻어 불순물을 제거하고, 넓은 잎은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둔다. 이때 너무 작게 자르면 쌈으로 싸기 어렵고, 너무 크면 질긴 느낌이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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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치는 과정이 맛을 좌우한다.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곰피를 넣으면 색이 짙은 초록으로 빠르게 변한다. 이때 오래 두면 질겨지고, 짧으면 비린 향이 남는다. 잎이 부드럽게 말리기 시작하는 순간 바로 건져내 찬물에 헹구는 것이 핵심이다. 찬물 샤워를 거치면 조직이 조여지면서 특유의 쫄깃한 식감이 살아난다. 물기를 꼭 짜야 쌈을 싸도 흐물거리지 않는다.
곰피쌈이 매력적인 이유는 어떤 재료와도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가장 전통적인 조합은 돼지고기 수육이다. 기름진 수육 한 점을 곰피로 싸면 느끼함이 확 잡히고, 바다 향이 입안을 정리해준다. 곰피의 쌉싸름함이 고기의 단맛을 끌어올려 별다른 양념 없이도 완성도가 높다.
젓갈과의 궁합도 뛰어나다. 명란젓, 멍게젓, 꼴뚜기젓처럼 향이 강한 젓갈을 소량 얹으면 곰피의 담백함이 젓갈의 짠맛을 눌러준다. 쌈장 대신 간장에 참기름, 다진 마늘을 섞은 간단한 양념을 곁들여도 좋다. 곰피 자체의 맛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양념은 최대한 절제하는 것이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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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고기 대신 두부나 생선회를 싸 먹는 방식도 주목받고 있다. 찐 두부에 들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려 곰피로 싸면 채식 식단으로도 손색이 없다. 방어, 광어 같은 흰살 생선을 곰피에 싸면 미역쌈과는 전혀 다른 깊은 맛이 난다. 해조류 특유의 바다 향이 회의 감칠맛을 끌어올리면서도 입안에 남는 느끼함을 깔끔하게 정리한다.
영양적인 측면에서도 곰피쌈은 겨울철에 특히 의미가 있다. 곰피에는 식이섬유가 풍부해 장운동을 돕고, 미네랄 함량이 높아 겨울철 부족해지기 쉬운 요오드와 칼슘을 보충해준다. 해조류 특유의 알긴산 성분은 체내 나트륨 배출을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짠 음식을 함께 먹을 때 부담을 줄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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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피를 보관할 때는 데친 뒤 물기를 짜서 냉장 보관하는 것이 좋다. 키친타월로 감싸 밀폐 용기에 넣으면 3~4일 정도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다. 생곰피는 쉽게 물러지므로 장기간 보관에는 적합하지 않다. 한 번에 먹을 만큼만 손질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곰피쌈은 화려한 조리 기술이 필요 없는 음식이지만, 바다와 계절의 맛을 그대로 담고 있다. 입안에서 천천히 씹을수록 겨울 바다의 향이 퍼지고, 함께 올린 재료의 맛을 조용히 받쳐준다. 밥상 위에서 주인공이 되기보다 전체를 조화롭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익숙한 상추쌈이 지겨워질 때, 겨울 한철만 즐길 수 있는 곰피쌈을 올려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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