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에서는 유독 눈에 잘 띄는 나무가 있다. 잎이 모두 붉은 것은 아니지만, 가지마다 달린 열매 송이가 숲의 색을 바꿔 놓는다. 멀리서 보면 붉은 구슬을 한 움큼 쏟아 올려놓은 듯한 모습이다. 이 풍경을 만드는 나무가 ‘마가목’이다. 산을 자주 다니는 사람에게는 낯설지 않지만, 식탁에서 마주할 일은 많지 않은 이름이다.
마가목은 관상용으로만 여겨지기 쉽지만, 예전에는 집집마다 약술 항아리에 담기던 산속 재료이기도 했다.
붉은 열매가 먼저 알려준 정체
마가목은 장미과에 속한 낙엽활엽교목이다. 키는 10미터 안팎까지 자라며, 수형은 곧고 단정한 편이다. 봄에는 깃털처럼 갈라진 잎이 돋고, 여름에는 잎 사이로 하얀 꽃이 핀다. 가을이 되면 지름 6~8밀리미터 정도의 작은 열매가 다발로 달리며 선명한 붉은색으로 익는다. 잎보다 열매가 먼저 눈에 들어와 멀리서도 쉽게 구분된다.
자생지는 해발 700미터 이상의 산지다. 설악산, 오대산, 지리산 같은 고산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강원도와 경북 북부 산악지대에 특히 많다. 추운 기후를 견디는 성질이 강해 중부 이북에서 더 잘 자란다. 깊은 골짜기나 능선 부근, 햇볕이 드는 사면에 무리지어 서 있는 모습도 확인된다.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말이 쉬어 가던 나무라는 설, 껍질이 말가죽처럼 거칠다는 설이 대표적이다. 한약명으로는 진가목이라 불렸는데, 귀한 나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술로 먼저 쓰인 산의 재료
마가목이 겨울에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쓰임새 때문이다. 이 나무는 계절을 앞서 준비해 소비됐다. 가을에 열매를 따 술을 담그고, 겨울에 마시는 방식이다. 마가목주는 대부분 추운 계절에 꺼내졌다. 농한기나 눈 오는 날, 몸이 뻐근할 때 한 잔씩 곁들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열매는 날로 먹기 어렵다. 신맛과 떫은맛이 강하기 때문이다. 대신 술에 담가두면 붉은 빛이 서서히 우러난다. 숙성 기간은 보통 석 달 이상으로, 오래 둘수록 색이 깊어지고 맛이 가라앉는다고 여겨졌다. 단맛은 거의 없고 끝맛에 떫은 기운이 남아 약술로 인식됐다.
겨울에 쓰인 또 하나의 재료는 껍질이다. 줄기 껍질을 벗겨 말린 뒤 물에 달여 마셨다. 맛이 매우 써 그대로 마시기 어려워 대추나 꿀을 곁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관절이 뻣뻣하거나 몸이 무겁게 느껴질 때 찾던 방식이다.
봄과 가을에 준비한 산의 재료
마가목은 겨울에 채취하는 나무가 아니다. 먹을 수 있는 부분은 모두 앞선 계절에 준비된다. 봄에는 새순을 뜯는다. 4월에서 5월 초, 잎이 완전히 펴지기 전이 적기다. 순이 조금만 자라도 섬유질이 늘어나 식감이 떨어진다.
손질 과정도 까다롭다. 데친 뒤 찬물에 담가 쓴맛을 빼야 한다. 하루 정도 물을 갈아가며 우려낸 뒤에야 먹을 수 있다. 이렇게 손질한 순은 된장이나 고추장으로 무치거나, 간장과 참기름으로 간단히 먹었다. 향은 강하지 않지만 씹는 맛이 분명해 단독 나물로 쓰였다.
가을에는 열매를 딴다. 보통 9월 말에서 10월 사이다. 첫서리를 맞은 뒤 채취하는 것이 좋다고 여겨졌는데, 서리를 맞으면 떫은맛이 다소 누그러진다는 인식이 있었다. 열매는 바로 쓰지 않고 말려 두었다가 술이나 달임용으로 사용했다.
기록으로 남은 겨울 음식
마가목은 문헌에도 등장한다. 동의보감에는 성질이 평하고 맛이 시며 독이 없다고 적혀 있다. 관절 통증이나 근육이 뻣뻣할 때 쓰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민간에서는 타박상이나 어혈이 있을 때 껍질을 달여 마셨고, 열매는 기침과 가래를 줄이는 데 이용됐다.
다만 떫은 성분이 강해 섭취량에는 늘 주의가 따랐다. 예전에도 소량씩 나눠 먹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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