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면서, ‘주인 없는 회사’로 불리는 금융지주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책임 있게 지배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거졌다. 정부는 회장 권한의 과도한 집중과 장기 집권 구조 개편을 예고했다. 이를 두고 금융사의 공적 역할에 부합하는 제도 정비라는 평가와, 관치금융의 재현이라는 비판이 맞선다. <직썰> 은 한국 금융지주 지배구조의 형성과 변화를 짚고, 현재 논쟁의 역사적 맥락과 향후 과제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직썰> |
[직썰 / 손성은 기자] 현재의 금융지주 체계가 자리 잡기 전, 한국 금융산업의 정점은 은행이었다. 은행이 어떤 산업과 기업에 자금을 배분하느냐에 따라 성장과 도태가 갈렸다. 다만 은행이 민간의 자율적 의사결정 주체라기보다, 정부 정책을 집행하는 도구에 가까웠다.
1980년대까지 은행은 형식상 민간 금융기관이었지만, 실질적 통제권은 정부에 있었다. 시중 유동성의 규모와 방향은 정책 판단에 따라 결정됐고, 은행장 인선 역시 청와대와 주무부처의 의중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정부가 은행장을 정한다’는 말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지던 시기다.
◇‘임시조치법’이 만든 한국형 관치금융
관치금융의 제도적 출발점은 1961년 제정된 ‘금융기관에 대한 임시조치법’이다. 이 법은 금융기관의 독점과 대주주 전횡을 막는다는 명분 아래, 정부가 은행 경영 전반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임시조치법은 금융기관 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했고, 은행 임원의 선임·해임 과정에 감독 당국이 개입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은행감독원장은 주주총회에서 결의된 임원 인사에 대해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1960년대 초 조흥은행, 상업은행 등 시중은행은 명목상 민간 소유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5·16 군사정변 이후 출범한 정부는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을 추진하며, 대규모 정책자금을 안정적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었다. 금융은 성장 전략의 핵심 수단이었고, 임시조치법은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했다. 결과적으로 민간 금융은 강한 국가 관리 체제 아래 편입됐다.
◇금융 자율화의 시작…그러나 남은 인사 통제
임시조치법은 1982년 전두환 정부의 금융 자율화 정책과 함께 사실상 폐지 수순에 들어간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과정에서 누적된 부실 대출과 관치금융의 부작용 해소가 숙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후 시중은행 민영화가 추진됐다. 정부는 은행 주식을 ‘국민주’ 방식으로 분산 매각해 특정 개인이나 기업이 지배력을 갖지 못하도록 했다. 은행은 소유 구조상 민간 금융회사로 전환됐다.
그러나 지배구조의 실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주주가 부재한 상태에서 은행을 둘러싼 핵심 권한은 여전히 정부와 관료사회에 집중됐다. 은행장 인사는 시장이나 주주 판단보다 정책적 고려가 작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 시기 관치금융의 상징적 인물로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 고(故) 이원조 전 은행감독원장이다. 그는 법적으로 은행장을 임명할 권한은 없었지만, 인사와 구조조정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금융계의 황제’로 불렸다.
민간 은행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1982년 출범한 신한은행은 재일교포 자본으로 설립된 순수 민간 은행이었지만, 초대 행장 선임 과정에는 정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 설립자인 고 이희건 명예회장은 회고록에서 초대 행장 김세창 씨 선임 과정에 얽힌 정부와의 조율 과정을 직접 언급한 바 있다.
◇권한은 집중, 책임은 공백…구조적 취약성의 누적
1980년대 한국 금융은 형식상 민영화됐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부와 관료사회가 인사와 자금 흐름을 좌우하는 구조였다. 명확한 지배구조 원칙도, 책임의 귀속도 정립되지 않았다.
금융지주 제도가 없던 시절, 은행은 금융산업의 최상위에 위치했다. 은행장 인사는 곧 산업 정책과 자원 배분을 의미했다. 권한은 은행과 정부에 집중됐지만, 그 결정의 결과에 대한 책임 주체는 불분명했다.
정책 논리에 종속된 대출 관행은 은행의 리스크 관리 기능을 약화시켰고, 특정 산업과 기업으로의 자금 쏠림은 금융 시스템 전반의 취약성을 키웠다. 1990년대 외환위기 당시 다수 은행의 동시다발적 부실화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가 누적된 결과였다.
이어 정부가 금융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한 배경에는 분명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은행을 단일 정점으로 두는 구조에서 벗어나, 지주회사 체제 아래에서 권한과 책임의 분산과 리스크 관리라는 전략적 판단이기도 했다.
현재 불거진 금융지주 지배구조 논쟁은 이 선택의 연장선에 있다. 회장 권한 집중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주인 없는 회사’의 책임을 누가 어떻게 질 것인지를 둘러싼 질문은 관치금융 이후 한국 금융이 끝내 풀지 못한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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