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조선의 전기왕'으로서 축적한 부와 권세를 이용하면서 고령 출토 금관과 곡옥, 창녕 출토 유물, 부산 연산동 출토 유물, 석조 유물 등 수많은 유물들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그가 손에 넣은 유물들 중에는 도굴품들도 상당수 있었고, 그 배경에는 권력과의 유착 관계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손에 넣은 수많은 유물들을 어디에 보관하고 어떻게 관리했을까?
대구와 경성, 도쿄에서 유물을 보관하다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손에 넣은 유물들을 주로 대구 저택에 보관하고 경성과 도쿄에서도 일부를 보관했다. 대구 저택은 '대구부 상공안내소 지도'(1933년 발행)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지도(대구 거주 차경환씨 제공)를 살펴보면 그의 저택은 아래 지도의 빨간색 네모와 같이 '小倉邸宅'으로 표시되었고, 현재 대구광역시 중구 성내 1동에 위치한 경상감영길 168, 170, 176 일대로 추정된다.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일본 패전 이후 귀국할 때 대구에 700~800여 점의 유물을 기증했는데, 이는 대구 저택에서 보관하고 있었던 것들이다. 그리고 그 외의 유물 일부는 대구 저택 지하에 숨겨놨었는데, 1964년 5월에 그 일대를 공사하던 중에 발견되기도 했다. 이와 같이 그는 많은 수의 유물을 대구 저택에 보관하고 있었다.
경성 저택은 그가 조선총독부에 유물을 기증했을 때 기재했던 '경성 중구 니시시켄초 138번지'(京城 中區 西四軒町 193番地)인데, 1930년대에 만들어진 지도에서 이를 찾아봤다. 대략 현재의 장충동 2가 지역 중에서 장충단로 7길 아래쪽부터 3호선 동대입구역 1번·2번 출구 위 아래쪽 사이가 니시시켄초로 추정된다.
아래의 왼쪽 지도에서 보면 빨간 네모로 표시한 곳을 니시시켄초로 추정할 수 있고 빨간 네모 밖 아래쪽의 동그라미 부분은 장충단이다. 그리고 빨간 네모 안의 동그라미 부분에 191, 192, 195 번지가 표시되어 있는데, 오구라 다케노스케 저택이 193번지였으므로 빨간 네모 안의 동그라미 부분 중 번지수가 표시되지 않은 몇몇 건물 중에 그의 저택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니시시켄초는 일제강점기 당시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던 번화가였고 음식점과 유곽, 일본인들의 고급 주택지와 사찰,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를 기렸던 박문사(博文寺)도 있었다.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이곳에 고급 저택을 짓고 대구에서 경성에 왔을 때 머무르면서 유물들도 사들여 일부는 보관하고 일부는 대구 저택으로 옮겨놨을 것이다. 경성 자택에 얼마나 많은 유물들을 보관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청자쌍사자형침'(靑磁雙獅子形枕)과 같이 1급 품에 해당하는 고려청자도 있었다고 한다.
한편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1931년에 도쿄 분쿄구(文京区) 미쿠미초(三組町)에 저택 겸 대흥전기주식회사의 도쿄출장소를 지었다. 그는 자택에 콘크리트로 된 저장고를 만들어 1932년부터 유물들을 옮겼다고 하는데, 고려청자의 경우 큰 것들은 대부분 사자마자 일본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1943년 즈음에는 유물의 보관 공간을 걱정할 정도였다고 하니 수백에서 수천 점에 달하는 유물들이 이 저장고로 옮겨졌을 것이다.
도쿄 대공습 당시 이곳도 불타버렸는데 유물을 보관했던 창고는 피해를 입지 않았고,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일본 패전 후 귀국하여 이곳에서 보관하던 유물과 한국에서 가져온 유물들을 정리하여 치바현(千葉県) 나라시노시(習志野市) 미모미(実籾) 지역에 창고를 만들어 보관했다.
고고유물은 오동나무 상자에, 석조 유물은 마당에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손에 넣은 많은 유물들을 어떻게 보관했을까? 그는 유물들을 천으로 싸서 오동나무 상자 안에 보관했다. 대구의 저택인지 경성의 저택인지는 알 수 없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 그가 소장하고 있던 유물들을 찍은 유리건판이 남아 있다. 그중 아래와 같이 '小倉武之助'라는 이름이 쓰인 것이 몇 개 있다.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나무 상자 안에 천을 깔아놓고 그 위에 유물들을 올려놓았다. 그 후 덮개를 바로 덮거나 천을 한 번 더 유물 위에 올리고 덮개를 덮었을 것이다. 후술하는 바와 같이 해방 이후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대구 저택에 숨겨놓았다가 나중에 발견된 유물은 오동나무 상자에 담겨있었다. 고고 유물들은 이와 같이 오동나무 상자에 담아 저택에 보관하고 있었다.
한편 석탑이나 석불과 같이 무겁고 큰 석조 유물들은 저택 마당에 놓았다. 아래 사진은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소장했을 당시의 석조부도 사진이다. 이 석조부도는 '대구 산격동 연화 운룡장식 승탑'(大邱 山格洞 蓮花 雲龍裝飾 僧塔)이며, 현재 경북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다. 고려시대 제작되었고, 1963년 1월에 보물 제135호로 지정되었다.
위의 사진을 살펴보면 먼저 오구라 다케노스케의 대구 저택은 그 면적이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왼쪽 사진을 보면 석조부도부터 뒤쪽의 건물까지의 공간이 꽤 된다. 그리고 오른쪽 상단의 사진을 보면 뒤쪽에 석탑으로 보이는 석조 유물이 있는데, 대구 저택에 이와 같은 석조 유물들이 42점이 있었다고 한다.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이와 같이 대저택에 거주하면서 수많은 유물들을 오동나무 상자에 담아 보관하거나 석조 유물과 같이 크고 무거운 것들을 마당에 보관하고 있었다.
■ 참고문헌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편, <<오구라 컬렉션-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2014.
김태우, <일제강점기 서울 지역사회화 의례 주도 집단의 변화-장충동 지역과 관성묘 영신사를 중심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 Vol.46 No.3, 2013.
이영섭, <문화재계 비화 (3)-내가 걸어온 고미술계 30년>, <<월간 문화재>> 제3권 제3호, 1973.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유리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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