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토리 뿌리를 찾아서] "내가 둘이다"…‘손톱 먹은 들쥐’의 섬뜩한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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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스토리 뿌리를 찾아서] "내가 둘이다"…‘손톱 먹은 들쥐’의 섬뜩한 상상력

뉴스컬처 2026-01-31 11:46:1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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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손톱을 함부로 버린 대가로 ‘나’와 똑같은 존재가 나타난다면, 우리는 과연 가족과 이웃의 눈앞에서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을까. 전래설화 ‘손톱 먹은 들쥐’는 기묘한 둔갑담의 형식을 빌려 인간 정체성과 공동체의 믿음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저 기괴한 요괴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고, 몸의 일부에 깃든 존재의 흔적과 그것을 둘러싼 옛사람들의 세계관이 응축된 이야기다.

옛날 한 도령이 절에서 공부를 하던 중 손톱과 발톱을 깎게 된다. 스님은 신체에서 나온 것은 아무렇게나 버리지 말고 잘 처리하라고 일러두지만, 도령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산에 던져버린다. 이 사소한 부주의가 이후 벌어질 모든 사건의 씨앗이 된다. 설화는 여기서부터 인간의 몸과 영혼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전통적 관념을 전제로 움직인다.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도령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반가운 가족이 아니라, 이미 집에 와 있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이다. 외모도, 말투도, 기억도 똑같은 존재. 가족조차 누가 진짜인지 가려내지 못한다. 공동체의 시선이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던 시대, “나는 나다”라는 선언은 아무 힘을 갖지 못한다. 결국 진짜 도령은 가짜에게 밀려 집에서 쫓겨난다.

여기서 설화는 피상적인 공포를 넘어 사회적 불안을 드러낸다. 혈연과 기억, 생활 습관 같은 친밀성의 증거들이 더 이상 절대적 기준이 되지 못하는 상황. 공동체는 진위를 가려내는 대신 더 그럴듯해 보이는 쪽을 택한다. 어떤 판본에서는 가짜 도령이 오히려 더 부지런하고 효심 깊게 행동해 가족의 신뢰를 얻는다. ‘진짜’라는 사실보다 ‘쓸모 있음’이 더 중요한 가치로 작동하는 아이러니다.

쫓겨난 도령은 다시 산으로 올라가 스님에게 도움을 청한다. 스님은 고양이를 데려가 보라고 조언한다. 집으로 돌아온 도령이 고양이를 풀자, 완벽했던 가짜는 순식간에 균열을 드러낸다. 고양이를 본 가짜 도령이 겁에 질려 도망치다 들쥐의 본모습으로 돌아가 죽거나 쫓겨난다. 인간 사회에 완벽히 적응한 존재도 본능 앞에서는 정체를 숨기지 못한다는 설정이다.

사진=AI로 생성된 이미지
사진=AI로 생성된 이미지

설화의 핵심 모티프는 ‘손톱’이다. 현대인의 시각에서 손톱은 잘라 버리면 그만인 노폐물에 가깝지만, 전통 사회에서는 신체의 일부이자 개인을 구성하는 중요한 흔적이었다. 머리카락과 손발톱을 함부로 다루지 말라는 금기는 유교적 신체관과 샤머니즘적 영혼관이 겹쳐진 결과다. 몸에서 떨어져 나갔어도 여전히 ‘나’와 연결돼 있다는 믿음이 이야기를 떠받친다.

쥐라는 존재의 선택도 의미심장하다. 쥐는 곡식을 축내는 해로운 동물이자, 밤에 몰래 활동하는 음지의 상징이다. 인간의 집 안을 드나들며 인간 세계를 엿보는 경계적 존재이기도 하다. 이런 쥐가 인간의 손톱을 먹고 인간으로 둔갑한다는 설정은, 인간 사회 내부에 숨어든 타자에 대한 불안을 투영한다. 낯선 존재는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삶 가까이에 스며들어 있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설화가 전승되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이는 일개 괴담이 아니라 질서와 경계에 대한 경고로 읽힌다. 집안과 바깥, 인간과 짐승, 주인과 도둑의 경계가 무너지면 공동체는 혼란에 빠진다. 그래서 이야기 속 해결자는 무력이 아니라 ‘앎’을 가진 스님이다. 세상의 이치를 아는 존재만이 혼란의 원인을 짚고 질서를 회복할 수 있다.

또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는 노력과 태도에 대한 교훈담으로도 변주된다. 어떤 판본에서는 게으른 진짜 도령 대신, 부지런한 가짜 도령이 가족의 사랑을 받는다. 혈통과 본질보다 삶의 태도가 더 중요한 가치처럼 제시되는 대목이다. 결국 진짜 도령은 자신의 나태함을 반성한 뒤에야 자리를 되찾는다. 둔갑담이 자기성찰 서사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설화가 다양한 대중문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소환된다는 사실도 눈에 띈다. 애니메이션, 게임, 아동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나를 대신한 가짜’라는 설정은 시대를 넘어 변주된다. 이는 정체성에 대한 불안이 여전히 유효한 현대적 감각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SNS 속의 또 다른 자아, 타인의 시선으로 규정되는 이미지 역시 일종의 ‘둔갑’에 비유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수많은 프로필과 데이터로 재현된다. 얼굴, 말투, 취향, 관계망까지 복제 가능한 시대에 개인의 고유성은 점점 더 불안정한 기반 위에 놓인다. 설화 속 도령처럼, 사람은 타인의 판단에 의해 진짜와 가짜가 갈릴 수도 있는 존재가 된다. 신체의 일부였던 손톱이 정체성을 빼앗는 매개가 되었듯, 오늘날에는 디지털 흔적이 또 다른 분신을 만들어낸다.

결국 ‘손톱 먹은 들쥐’는 기괴한 상상력을 통해 인간 존재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이야기다. 사람은 스스로를 단단한 실체라고 믿지만, 사회적 관계와 상징, 믿음의 체계 속에서 언제든 대체 가능한 위치에 놓이기도 한다. 오래된 설화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화두를 가장 불안한 방식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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