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1일 인제스피디움에서 열린 인제 마스터즈 시리즈 최종전은 트랙 위에서 끝났지만 행정의 영역에서는 끝나지 않았다. 대회 종료 이후 계측 오류가 확인됐고, 10월 16일 공식 기록이 정정 게재됐다. 그리고 이 정정 과정의 책임을 이유로 대한자동차경주협회(KARA)는 당시 심사위원장에게 자격정지 3개월이라는 중징계를 처분했다.
그렇다면 기록 정정이 자격정지 3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아야 할 사안일까? KARA 상벌 및 분쟁조정위원회는 이와 관련 ‘기록 재개시 과정에서 협회 파견 심사가 배제된 과정에서 심사위원 3인의 협의 또는 의결 없이 기록이 수정 게시된 점’을 이유로 심의를 했다. 그러나 이 사안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징계는 ‘누가 잘못했는가’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제도는 애초에 책임을 누구에게 어떻게 지우도록 설계돼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인제 마스터즈 시리즈의 공식 기록표는 ‘기록위원장’, ‘경기위원장’, ‘심사위원장’ 등 단 3명의 서명이 들어간다. 이 가운데 심사위원장의 서명은 선택이 아니다. 심사위원장이 사인하지 않으면 그 기록은 공식 기록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심사위원장은 기록의 적정성을 판단하고 그 효력을 최종적으로 승인한다.
그런데 이번 사안에서 KARA 상벌 및 분쟁조정위원회는 바로 그 지점을 징계의 근거로 삼았다. KARA 파견 심사가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심사위원장이 정정 기록표에 서명했고, 그 행위가 절차 위반이라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논리는 스스로 무너진다. 서명해야만 기록이 성립하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서명했다는 이유로 징계한다면 심사위원장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서명하지 않으면 직무 유기이고, 서명하면 절차 위반이다. 이건 개인의 판단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자기모순이다.
더구나 KARA 파견 심사는 보조적 검증 장치다. 호출·배정·운영의 주체는 KARA다. 그 절차가 작동하지 않았거나 명확히 개입하지 않았다면 이는 시스템의 문제다. 그 책임을 현장 심사위원장에게만 귀속시키는 것은 권한과 책임의 배분 원칙에 맞지 않는다. 또한 경기 조직위원회가 KARA에 기록 정정과 관련 문의를 했고, KARA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문제는 일단락 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징계의 배경과 과정 역시 깔끔하지 않다. 상벌 및 분쟁조정위원회는 1차 심의에서 결론(견책 정도의 벌칙)을 내리지 못했고, 2차 심의에서 자격정지 3개월을 확정했다. 이 징계 기간은 공교롭게도 해당 심사위원장이 예정돼 있던 다른 대회 일정(2026 슈퍼레이스 개막전 4월 18~19일, 에버랜드 스피드웨이)과 정확히 겹친다. 일부에서는 “징계라기보다 실질적 배제”라는 말이 나온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시점이 지나치게 정확하다.
상벌 및 분쟁조정위원회 위원 구성에 대한 의문도 남는다. 징계를 심의한 5명 가운데 2명은 피징계자와 직접적인 이해충돌 관계에 놓여 있었다. 한 위원은 과거 대회 심사 중 조직위원회가 오류의 책임을 물어 하차시켰고, 그 공백을 피징계자가 채우고 있다. 또 다른 위원 역시 피징계자가 앞서 심사의 오류를 바로잡는 과정에 연관돼 있다. 전원 찬성은 아니었지만 이 구조를 두고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심의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기록 정정이 경기 결과에 미친 영향도 냉정하게 봐야 한다. 순위에 변동은 있었지만 드라이버 포인트와 시상, 상금 등 경쟁의 핵심 요소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가장 강한 징계 수단 중 하나가 선택됐다. 절차 위반은 징계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절차 위반이 곧바로 중징계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항소 구조 역시 문제다. 피징계자는 항소를 검토하고 있지만 항소 비용은 상당하고 승소하더라도 비용을 돌려받을 수 없는 구조다. 이에 대해 KARA에 질의했을 때 돌아온 답변은 “규정상 또는 관례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권리는 있으되, 행사하기에는 지나치게 무거운 구조다. 이는 방어권을 보장하는 제도라기보다 분쟁을 포기하게 만드는 장치에 가깝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행정 실수나 개인의 판단 착오로 정리될 문제가 아니다. 서명 권한을 부여해 놓고 그 권한 행사를 처벌하는 구조, KARA 파견 심사의 역할이 불분명한 시스템, 이해충돌 논란이 있는 위원 구성, 특정 시점과 겹치는 징계 기간, 그리고 사실상 항소를 막는 제도까지. 이 모든 요소가 한 지점에 모였다.
규정은 공정을 위해 존재한다. 규정이 선택적으로 해석되고, 구조적 책임이 개인에게 집중되는 순간, 그 규정은 공정의 도구가 아니라 통제의 수단이 된다. 이번 인제 마스터즈 시리즈 최종전이 남긴 가장 무거운 질문은 이것이다.
이번 징계는 규정을 집행한 결과였는가?
아니면 규정을 이용한 결과였는가?
모터스포츠는 기록으로 경쟁하지만 신뢰로 유지된다. 그리고 그 신뢰는 트랙이 아니라 이런 결정의 순간에서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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