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한국인 929만명 분석…"20세 이전 흡연, 심근경색 위험 2.4배 높아"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최근 법원이 흡연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국내 흡연 피해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그러나 의학계에서는 이와는 정반대로 흡연의 폐해를 입증하는 과학적 근거가 대규모 연구를 통해 꾸준히 제시되면서 법과 의학 사이의 간극이 뚜렷해지는 모양새다.
최근에는 흡연의 건강 피해를 가르는 핵심 요인이 '얼마나 많이 피웠느냐'보다 '얼마나 빨리 시작했느냐'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규모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31일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박세훈 교수, 숭실대 정보통계보험수리학과 한경도 교수 공동 연구팀은 2009년 국가건강검진을 받은 성인 929만5천979명을 대상으로 평균 9년에 걸쳐 흡연 시작 연령, 누적 흡연량에 따른 심혈관질환 발생 및 사망 위험을 분석해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 최신호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에서 전체 흡연자는 372만4천368명(40.1%)이었으며, 이 중 23.5%는 20세 이전에 흡연을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15세 미만부터 흡연을 시작한 경우도 2%로 적지 않았다.
연구팀은 흡연자를 흡연 시작 연령과 누적 흡연량에 따라 세분화해 분석했는데, 그 결과 흡연 시작 연령이 빠를수록 심혈관질환 위험이 단계적으로 증가하는 뚜렷한 경향이 관찰됐다.
특히 20세 이전에 흡연을 시작하고 누적 흡연량이 20갑년(하루 한 갑씩 20년) 이상인 집단은 비흡연자와 비교해 심근경색 위험은 2.43배, 뇌졸중 위험은 1.78배, 심근경색·뇌졸중 복합 위험은 2.0배로 각각 증가했다. 전체 사망 위험 역시 비흡연자보다 1.82배 높은 수준이었다.
20세가 넘어 흡연을 시작한 경우에도 위험도가 각각 1.82배, 1.38배, 1.52배로 높아졌지만, 20세 이전 흡연자보다는 확연히 낮았다.
연구팀은 이런 결과가 단순한 생활 습관 차이를 넘어, 흡연 시작 시점이 평생 건강 궤적에 구조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해석했다.
연구팀은 흡연 시작 연령이 빠를수록 위험이 커지는 이유로 몇 가지 생물학적·역학적 메커니즘을 제시했다.
청소년기와 젊은 성인기는 혈관과 장기가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시기로, 이때 담배의 독성물질에 노출될 경우 내피 기능 장애, 산화스트레스 증가, 죽상동맥경화의 조기 진행이 나타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조기 흡연자는 니코틴 의존이 더 강해져 금연 실패와 장기 흡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고 분석했다.
박세훈 교수는 "흡연을 이른 나이에 시작할수록 니코틴과 담배 연소물에 노출되는 기간이 길어지고, 그만큼 혈관 손상과 만성 염증 반응이 누적돼 심혈관계 노화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지금까지 써온 '갑년'이라는 누적 흡연량 지표만으로는 흡연 피해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에서 확인된 것처럼 동일한 갑년의 흡연자라도, 흡연을 시작한 나이에 따라 질병 위험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흡연 예방 전략의 초점을 금연뿐 아니라 흡연 시작 연령을 최대한 늦추는 데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담배를 얼마나 오래 피웠는지도 중요하지만, 언제 처음 피웠는지는 더 결정적일 수 있다"면서 "청소년과 젊은 성인층에서 흡연을 차단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심혈관질환 부담과 조기 사망을 줄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공중보건 개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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