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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로] 바뀔 것은 바뀐다

연합뉴스 2026-01-31 06:59: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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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해지려는 인간 본능 이긴 역사 없어…러다이트·적기조례의 교훈

AI 충격에 당황한 인류…대량실업 공포·노동해방 낙관론 등 혼재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베틀의 북이 스스로 움직이고 하프가 스스로 켜지면, 주인에겐 노예가 필요 없고 장인에겐 조수가 필요 없을 거야." '인류의 지성'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서 '정치학'에서 제시한 예언 같은 상상이다. 기원전 4세기에 살았던 그의 예리한 통찰이 무려 2천400년 정도 지난 지금 실현 중인 건 놀라울 뿐이다. 바로 인공지능(AI) 혁명이다. 스스로 학습하고 사고하는 사이보그가 시중을 들고 힘든 일을 대신하는 과학소설(SF) 같은 세상이 거짓말처럼 눈앞에 다가왔다.

손인사 하는 현대차그룹 아틀라스 손인사 하는 현대차그룹 아틀라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인류의 혁명적 도약 단계를 분류하는 여러 기준이 있지만, 개인적으론 네 차례 퀀텀 점프가 있다고 본다. 인류를 종의 최강자로 올려놓고 뇌 크기를 비약적으로 키운 불의 발견, 정착 생활과 식량 안정의 토대가 된 농업 혁명, 대량 생산·소비를 가능케 한 산업 혁명, 그리고 도구인 기계가 사람을 대체할 지금의 AI 혁명이다. 이제 인류는 이전까지와 차원이 다른 편리함을 누릴 수 있게 된 동시에 새로운 삶의 패턴에 적응해야 하는 숙제도 안았다.

산업혁명 시기 많은 저항이 있었듯 AI 혁명기에도 마찰은 불가피하다. 산업혁명 시절 신구 패러다임이 부딪친 대표 사례는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과 적기조례(Red Flag Act)였다. 18세기 증기기관 발명은 직물공장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였지만, 베틀을 돌리던 영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앗아갔다. 쫓겨난 노동자들은 직물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로 저항했다. 19세기 영국에서 등장한 증기자동차는 마부의 종말을 예고했다. 하지만 마차 업계의 압력에 영국 정부는 적기조례를 제정, 자동차마다 운전사, 기관원, 붉은 기를 든 기수 탑승을 의무화하고 최고 속도를 사람이 걷는 속도와 비슷하게 제한했다.

두 사건의 결말이 어땠는지 우리는 잘 안다. 7년여 러다이트 투쟁은 정부의 강경 대처로 진압됐고, 직물공장 자동화는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일자리 감소로 노동자들이 굶어 죽을 줄 알았으나 생산성 증대는 살인적 노동 시간을 줄였고 복지국가 건설을 앞당겼으며 새로운 직업군을 창조했다. 특히 어린이들의 노동이 사라진 건 엄청난 인권 개선이었다. 적기조례로 기존 질서를 옹호한 영국의 선택은 큰 대가를 치렀다. 산업혁명 발상지로서 자동차란 혁신을 먼저 일으켰지만, 상식 밖 규제 탓에 자동차 산업 주도권을 후발 주자인 독일과 미국에 넘겨줬다.

우리가 얻은 교훈은 '결국 바뀔 것은 바뀐다'는 것이었다. 변화 과정에 갈등과 충돌이 일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예외 없이 세상은 변해 있었다. 인간의 본성과 본능 때문이다. 계량언어학자 조지 킹슬리 지프가 설파한 '최소 노력의 원칙'처럼 인간은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편한 걸 찾으려는 본능을 지녔다. 최소 에너지로 최선의 결과를 얻으려는 인간 본성이 수많은 발명과 진보를 낳았고 인류는 게으름과 이기심 덕에 역설적으로 지구 최강 생물체가 됐다.

최근 현대차에서 피지컬 AI를 공정에 투입하려는 계획을 밝히자 노조가 반발한 장면은 러다이트 운동을 떠올리게 했다. 네오 러다이트란 말까지 나왔다. 18세기 노동자들이 직조 기계를 적으로 여겼듯, 마부들이 자동차를 어떻게든 퇴출하려 했듯, 생산 라인 노동자들에게 AI 로봇은 근본적 생존 위협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아프지도 않고 불평이나 파업도 하지 않는데, 생산성과 비용 효율은 훨씬 뛰어난 로봇에 밀려날 게 불 보듯 해서다. 같은 노동자로서, 나아가 인간 대 로봇이란 관점에서 그들이 느끼는 공포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문제는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 말처럼, 변화를 멈추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단 점이다. 엔트로피 증가를 막을 수 없다는 물리학 법칙에도 도덕적 잣대는 적용되지 않는다. 자동차 생산 라인을 피지컬 AI가 채우는 건 결국 시간의 문제일 것이다. 로봇 투입에 반대했던 노동자도 김밥집 사장이 되면 사람을 고용하는 대신 자동 김밥말이 기계를 들이는 게 인간 본성이기 때문이다. AI 로봇을 한 대도 들일 수 없다는 반발이 이해되지만, 적기조례 사례에서 보듯 신기술을 막는 회사일수록 예외 없이 먼저 문을 닫았던 건 역사가 증명했다. 우리 삶에 AI가 훌쩍 들어왔다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면, AI를 인간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활용하도록 사고의 틀 자체를 바꿔야 한다.

머스크 "인간 능가하는 AI 나올 수도…(CG) 머스크 "인간 능가하는 AI 나올 수도…(CG)

[연합뉴스 TV 제공. 재배포 DB 금지]

AI 혁명이 무서운 건 과거의 혁신과 차원이 달라서다. 산업혁명은 우리 근육을 기계가 대체한 것이지만, AI 혁명은 인간 전유물로 알았던 복합적 사고를 기계가 대신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기계에 종속당하는 게 아니냐는 근원적 두려움을 낳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류는 언제나 불안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냈다. AI가 우리 일자리를 대부분 대체한다면, 생계가 위협당할 것이란 우려도 있지만, 반대로 인간이 고된 노동에서 해방돼 삶을 유희로 채우는 유토피아가 올 수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상상했던 '자동 노예' 세계는 후자의 낙관론이다. 인간 노예를 해방해 모두가 인권을 보장받고 '스콜레'(Schole: 여가)에 몰두하는 세상을 꿈꾼 것이다. 놀랍게도 지금 AI 혁명을 이끄는 선구자 중 하나인 일론 머스크의 생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와 너무나 닮았다. 두 사람 다 '도구가 스스로 일하는 세상이 인간을 고된 노동에서 해방해 고차원의 자아실현에 집중할 수 있게 할 것'으로 믿었다. 2천400년의 거대한 시차를 두고 태어난 두 천재의 세계관이 일치하는 건 소름이 끼칠 정도다.

이제 우리는 AI를 잘 지배하고 관리하고 공존할 방도를 세우는 수밖에 없다. 가족관·노동관 등 가치관에도 대변혁이 올 것이다. AI가 대체하는 직종들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재교육해 새 일자리를 찾아주고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게 일정 수준 소득을 보장할 방법도 찾아야 한다. 모든 시민에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그 재원은 AI가 창출한 부에 세금을 매기는 로봇세로 충당하는 방안 등이 현재 논의되고 있다. '효율 극대화'라는 자유시장 원리가 탄생을 촉진한 AI는 다시 역설적으로 사회 담론의 초점을 '분배의 정의'에 쏠리도록 만드는 효과를 낳고 있다.

AI 업무 활용 (PG) AI 업무 활용 (PG)

[강민지 제작] 일러스트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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