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제약업계 캐시카우였던 제네릭(복제약) 시장이 정부의 약가 인하 개정안으로 수익성에 경고등이 켜졌다.
위기에 직면한 제약업계가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새로운 돌파구로 떠오른 것이 바로 '디지털 치료기기(DTx)'다.
디지털 치료제는 화학적 반응을 이용하는 기존 약물과 달리 소프트웨어를 통해 환자의 인지행동을 교정하는 3세대 치료제다.
단순한 건강관리 앱을 넘어 엄격한 임상과 승인을 거쳐 의사가 직접 처방하는 정식 '약(藥)'으로 분류된다.
사후 치료를 넘어 질병 예방까지 아우르는 DTx는 이미 독일과 프랑스 등에서 국가 급여 체계에 편입되며 효용성을 입증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지금, 국내 디지털 헬스 산업의 성패는 결국 정부의 정책 지원과 건강보험 급여 등 제도적 안착에 달렸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뉴스락>뉴스락>은 제약 산업의 신성장 동력으로 급부상한 '디지털 치료기기'의 현주소와 시장 전망을 집중 조명해 본다.
스타트업이 열고 대형 제약사가 키운다... DTx로 재편되는 투자 지형도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급격히 팽창하며 국내 제약업계의 투자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관련 산업 매출은 ▲2023년 5조 7206억 원 ▲2024년 6조 4930억 원 ▲2025년 7조 7049억 원으로 매년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기업들의 투자액 역시 2024년 3조 원을 돌파하는 등 시장의 기대감이 수치로 증명되는 모양새다.
국내 DTx 시장의 포문은 스타트업들이 열었다.
선두 주자인 에임메드(대표 오광신)는 지난 2023년 불면증 치료기기 '솜즈(Somzz)'를 통해 국내 1호 디지털 치료제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에임메드는 지난해 전담 자회사 '에임넥스트'를 출범하며 전문성 강화에 나섰다.
오광신 에임메드 대표는 "에임넥스트를 통해 사업화와 글로벌 진출에 전념하고, 헬스케어 산업의 미래를 변화시킬 혁신 솔루션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에서 스핀오프한 웰트(대표 강성지) 역시 국내 2호 불면증 치료제 '슬립큐'를 앞세워 무서운 속도로 성장 중이다.
웰트는 한독과 전략적 협업을 이어가는 동시에 지난해 12월 디지털 헬스 선진국인 독일에서 첫 임상시험에 돌입하며 글로벌 공략의 깃발을 올렸다.
강성지 웰트 대표는 '독일 임상은 슬립큐의 우수성을 세계 시장에 입증할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스타트업이 닦아놓은 길에 대형 제약사들도 전주기 헬스케어 전략을 앞세워 속속 뛰어들고 있다.
대웅제약(대표 이창재)은 웨어러블 센서 기반의 병상 통합 모니터링 시스템 '씽크(Cync)'를 통해 예방부터 사후관리까지 잇는 생태계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의약품 중심의 치료를 넘어 데이터 기반의 '전주기 관리'로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복안이다.
한미약품(대표 박재현)은 디지털 기술을 자사 주력 파이프라인과 접목하는 '융합' 전략을 택했다.
비만 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에 운동중재기반 DTx를 결합한 통합 솔루션을 개발 중이다. 지난 2025년 말 국내 허가 신청을 완료한 데 이어 멕시코 수출 계약까지 성사시키며 국내외 시장을 동시에 정조준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제약사를 넘어 유통 기업들도 이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매일유업(대표 김선희, 이인기, 곽정우)은 자회사 매일헬스뉴트리션을 통해 디지털 헬스 기업 '하이(HAII)'와 손을 잡았다.
단백질 브랜드 '셀렉스' 등 자사 영양 설계 역량에 AI 기술을 접목해 미래형 건강관리 모델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뉴스락> 과의 통화에서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이 2033년 2393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AI 기반 협업을 통해 개인 맞춤형 의료 솔루션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락>
규제 장벽 허무는 '80일의 기적'... 정부, 디지털 헬스 혈맥 뚫기 총력
정부 역시 디지털 헬스케어를 미래 먹거리의 핵심축으로 보고 파격적인 정책 지원에 나서고 있다.
과거 디지털 치료기기가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식약처 허가부터 신의료기술평가까지 개별 단계를 거치며 약 490일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됐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식약처, 보건복지부, 심평원이 동시에 심사를 진행하는 '혁신의료기기 통합심사' 제도를 도입했다.
이로 인해 시장 진입 기간은 80일 이내로 대폭 단축됐으며 혁신성을 인정받은 기기는 현장에서 즉시 비급여나 선별급여로 사용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또한 흩어진 개인 건강정보를 한눈에 관리할 수 있는 '건강정보 고속도로' 인프라 구축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는 환자의 동의하에 병원 간 데이터를 연결함으로써 기업들이 더욱 정교한 맞춤형 치료 솔루션을 개발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정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을 통해 글로벌 상용화 지원사업을 확대하며 국내 기업들이 좁은 내수 시장을 넘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여전히 과제가 남았다는 지적이다.
디지털 치료제가 실제 의료 현장에 완전히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의료진에 대한 처방 인센티브의 현실화와 더불어, 환자들이 앱을 통한 치료를 약물 치료만큼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인식 개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정책적 결단이 산업의 '마중물' 역할을 한 만큼, 이제는 실제 처방 데이터에 기반한 수가의 정밀한 조정이 산업의 장기적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 입을 모은다.
혁신의 문턱 못 넘게 하는 '경직된 수가' 넘어야
디지털 치료기기가 '제3의 신약'으로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실제 의료 현장과 산업계에서는 기술의 혁신 속도를 아직 제도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파격적인 인허가 단축 정책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치료기기(DTx)가 진료실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는 결국 '지불 가치'의 문제로 귀결된다.
현행 건강보험 체계상 디지털 치료기기는 환자 본인부담률이 90%에 달하는 선별급여나 비급여로 처방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불면증 치료를 위해 수십만 원의 비용이 드는 앱을 내려받느니, 단돈 몇 천 원이면 처방받을 수 있는 알약을 선택하는 것이 환자들에겐 지극히 당연한 경제적 논리다.
이러한 '가격 장벽'은 혁신 산업의 핵심 연료인 데이터의 고갈을 초래한다.
지난 12일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의 주체로 열린 '대한민국 미래 바이오헬스 포럼'에서도 이같은 내용들이 화두로 올랐다.
디지털 치료기기는 실제 의료 현장에서 활발히 쓰여야 치료 효과를 입증할 실사용 데이터(RWD)가 쌓이는데 높은 비용 탓에 활용도가 떨어지니 데이터 자체가 모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데이터 부재'는 다시 '급여 진입 실패'로 이어지며 산업 전체가 성장의 악순환에 갇히는 결과를 낳고 있다.
반면 디지털 헬스케어 선진국으로 꼽히는 독일은 우리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독일은 지난 2019년 디지털 헬스케어 정책으로 일단 안전성이 입증된 기기라면 선제적으로 국가 건강보험 수가를 부여하는 '선(先) 진입 후(後) 검증' 제도를 도입했다.
일단 시장에 진입시켜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처방하게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1년간 쌓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식 등재 여부와 가격을 최종 결정한다.
'증명해야 들어갈 수 있는' 한국과 '들어가서 증명하는' 독일의 제도적 유연성 차이가 글로벌 경쟁력의 격차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은 "글로벌 표준과 동떨어진 경직된 보상 체계가 혁신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제도 정비를 강조했다.
결국 알약보다 비싼 앱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단순한 허가 기간 단축을 넘어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대폭 낮추고 의료진의 처방 유인을 높이는 실질적인 수가 체계의 혁신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뉴스락 미니인터뷰]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
디지털 치료제(DTx) 기반 데이터 축적이 시장 발전의 큰 관건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디지털 치료제(DTx)가 향후 바이오 산업의 핵심 축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기존의 장기 복용 약물과 병용하는 '콤보(Combo) 치료' 형태에서 큰 시너지가 발생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은 디지털 치료제는 현재 연 20~25% 수준의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으며, 특히 치매와 같은 인지 기능 질환 분야에서 적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무엇보다 한국의 강점인 IT 기술력과 높은 의료 수준을 결합한 AI 알고리즘 개발 능력을 강조하며, 결국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싸움인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기술적 기반이 탄탄해 가장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는 국가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디지털 치료제의 잠재력은 충분하지만, 시장 안착을 위해서는 '신뢰도'라는 문턱을 넘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 부회장은 기업들이 가장 기대하는 건강보험 수가 적용에 대해 "정부가 국민의 혈세인 국가 재정을 투입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데이터가 필수적"이라며 "정부를 탓하기에 앞서 기업들이 먼저 시장에서 파일럿 데이터를 축적해 기술의 유효성과 안전성에 대한 신뢰를 증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업은 데이터를 통해 정부와 소통하고,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전향적인 검토에 나서는 '투트랙(Two-track) 협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부회장은 새로운 혁신 기술이 시장에 진입할 때 겪는 리스크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며, 미국에서 유전자 치료제가 오랜 기간 데이터를 쌓은 뒤에야 대규모 허가를 받기 시작한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규제 환경에 대해서는 독일이나 중국과 같은 '네거티브 규제(금지한 것 외에 모두 허용)'로의 전환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점을 짚었다.
독일은 산업 혁명을 거치며 형성된 유연한 제도적 틀이 있고, 중국은 전략적으로 네거티브 규제를 채택해 속도를 내고 있지만, 한국의 보수적인 행정 구조상 당장 이를 실현하기는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는 "한국에서 혁신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 사업을 전개하기가 냉정하게 보아 매우 어려운 환경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각자적인 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이 과정을 감내하고 데이터를 쌓아나간다면 결국 혁신의 문이 열리는 '좋은 날'이 올 것"이라며 업계의 지속적인 노력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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