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9일 정당 득표율이 3% 미만이면 비례대표 의석을 얻을 수 없도록 규정한 공직선거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론 내렸다.
헌재는 해당 조항으로 인해 거대 양당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우리나라 정치구조에서 군소정당과 새로운 정치세력의 원내 진입을 차단하고 거대정당의 세력만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로 군소정당의 원내 진입 길이 열리게 됐다. 지난 총선 득표율을 기준으로 할 경우 자유통일당과 녹색정의당, 새로운미래가 1석을 얻어 원내 진출이 가능하다.
총선서 3% 미만 득표 시 비례대표 의석 확보 불가에 위헌 심판 청구
헌재 "거대정당 세력만 강화" 위헌 결정
헌재는 29일 오후 노동당, 미래당, 민중당, 녹색당 등 군소정당과 국회의원 선거권자들이 청구한 공직선거법 189조 1항에 1~2호 대한 위헌확인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법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선고했다.
해당 법은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조건을 '비례대표 선거에서 유효투표 총수의 3% 이상을 득표한 정당'(1호) 또는 '지역구 선거에서 5석 이상을 얻은 정당'(2호)으로 정한다.
청구인들은 이른바 '3% 저지조항'으로 불리는 해당 법률이 헌법상 선거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이에 대해 헌재는 "해당 조항은 투표 가치를 왜곡하고 선거의 대표성을 침해하는 현저히 비합리적인 입법"이라며 "평등선거원칙에 위배해 선거권, 피선거권,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저지조항 제도의 목적 자체가 타당하더라도 새로운 정치세력의 원내 진출을 막는 부정적 효과가 있는 만큼 우리나라 정치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지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군소정당이라는 이유만으로 의석 배분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헌재는 저지조항을 폐지하더라도 우리나라 정치 환경상 군소정당의 난립으로 의회 기능이 마비될 우려는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국회의원 총 300명 중 비례대표 의원은 46명에 불과해 저지조항을 폐지해도 원내 진출 소수정당이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헌재는 "지역구 선거는 소선거구·다수대표제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이미 거대정당에 유리하고 사실상 군소정당 후보자의 진출이 어렵도록 설계돼 있고, 거대양당은 위성정당을 창당해 비례대표 의석을 추가로 얻고 있는바 그만큼 군소정당이 원내에 진출할 기회는 작아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기에 더해 선거법은 저지조항까지 둠으로써 소수정당의 의회 진입에 이중적 장벽을 설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유권자로 하여금 저지선을 넘지 못 하리라 예상하는 소수정당에 투표를 기피하도록 유도해 소수정당이 원내 진출을 통해 성장할 기회를 박탈한다"며 "정치적 다양성과 정치과정의 개방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짚었다.
다만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은 반대의견에서 "오늘날 극단주의 세력이 단순하고 강력한 메시지로 사회에 대한 분노와 불안을 자극함으로써 중도정당보다 빠르게 지지층을 결집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며 "극소수의 지지만을 받는 극단주의 세력이 의회에 진출하게 된다면 그 활동이 크게 고무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두 재판관은 "거대정당에 대한 의석 집중 현상은 저지조항 자체가 원인이라기보다는 지역구 선거에서 적용되는 소선거구·다수대표제, 매우 낮은 비례대표 의석 비율, 이른바 위성정당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온 결과"라며 현재 상황만을 이유로 저지조항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상환·정정미 재판관은 보충의견에서 "유효투표총수의 3%는 22대 총선 기준 약 84만표에 해당한다. 이는 제주 전체 선거인의 규모를 상회하고, 세종특별자치시의 2배가 넘는다"며 "이처럼 3% 저지선은 광역자치단체 하나 또는 중소 광역자치단체 2개 이상의 규모에 달하는 국민의 선택을 한순간에 무효로 할 수 있는 강력한 장치인 바, 그 헌법적 의미와 영향이 가볍게 취급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총선 소급시 자유통일당·녹색정의당·새로운미래 원내 진출 가능
이날 헌재 결정으로 22대 국회의 의석수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만 지난 총선 득표 결과를 기준으로 이 조항이 삭제됐을 경우를 가정해보면 국민의힘 비례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는 18석에서 17석으로, 더불어민주당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은 14석에서 13석으로, 조국혁신당은 12석에서 11석으로 의석수가 줄어든다.
반면 자유통일당(2.26%)·녹색정의당(2.14%)·새로운미래(1.7%)는 각각 0석에서 1석으로 의석수가 늘어난다. 개혁신당은 2석을 유지한다.
당시 더불어민주연합에 합류했던 기본소득당이나 사회민주당도 독자 출마했다면 비슷한 득표율로 1석 이상을 얻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만큼 소수정당이 원내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조국 "소수 목소리 정치 반영되도록 정치개혁"
녹색·정의·진보 등 소수정당 "환영" 자유통일당도 환영 성명
이번 위헌 결정에 대해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는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표의 비례성을 강화하는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했다.
조 대표는 "이 사안 외에도 소수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도록 하는 정치 개혁은 우리 시대의 과제다. 집권당이 책임지고 추진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박병언 조국혁신당 대변인도 이날 논평을 내고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에서 거대 양당이 자리 잡은 한국사회 현실에서 새로운 정치 세력의 원내 진입을 차단하고 거대정당의 세력만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헌재의 이번 지적을 뼈아픈 국회에 대한 비판으로 새겨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국민 주권 원리의 실현을 위해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기초의회 2인 선거구 폐지, 광역비례대표 확대, 단체장 결선투표제의 도입 필요성이 명백해 졌다"며 "민주당은 국회 단독 과반 정당으로서, 공직선거법을 단독으로 개정할 수 있다. 헌재 결정에 민주당이 화답해달라"고 덧붙였다.
다른 소수 정당들도 일제히 "헌재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손솔 진보당 수석대변인은 29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이번 결정은 소수 정당에 부당하게 가해졌던 진입장벽을 허무는 역사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며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 특히 소외된 노동자와 서민의 목소리가 국회라는 담벼락에 막혀서는 안 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국회는 헌재의 결정 취지에 따라 즉각적인 정치개혁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재연 진보당 대표 역시 이날 SNS에 "의회의 비례성, 다양성, 대표성 강화를 주문한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을 환영하며, 국회가 이러한 취지에 입각해 조속히 선거제도 전반을 개혁할 것을 요구한다"며 "특히 이 같은 결정 취지를 총선 뿐만 아니라 지방선거 제도 개편에도 반영해 이번 6.3 선거를 지방의회의 비례성, 다양성, 개방성을 높이는 역사적 계기로 만들어야 하겠다"고 주장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는 같은 날 페이스북에 "대한민국 정치개혁의 전환점이 될 역사적 판결이라 평가한다"며 "국민의 뜻을 고스란히 반영해 공직선거의 비례성·다양성·대표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가 이번 헌재의 결정에 고스란히 담겼다"고 했다.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도 페이스북에서 "그동안 3% 봉쇄 조항으로 인해 진보정당 등 작은 정당들은 표를 받은 만큼 의석을 얻지 못하고 원내 진출이 제한되거나 좌절됐었다"며 "더 정치 개혁을 미룰 명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헌재의 결정 취지에 따라 국회의원 선거는 물론, 5%의 지방의회 비례대표 득표 기준을 즉시 개정해 다가올 지방선거에서부터 비례성과 다양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정의당은 이날 논평에서 "국회는 위헌으로 확인된 공직선거법을 조속히 개정해 법 공백을 해소하고 정치적 다양성을 강조한 헌재의 지적에 따라 군소정당의 성장을 가로막는 정당법·공직선거법·정치자금법 등을 즉각 개혁하라"며 "지방의회 비례대표 선거에도 5% 저지조항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헌재의 위헌 결정에 따른 후속 조치가 국회의원 선거에만 머물러서도 안 된다"고 했다.
녹색당도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3% 봉쇄조항으로 인해 버려지는 비례대표 투표 수가 약 10%에 달했는데 1인 1표제의 평등권을 침해하며 표의 등가성을 훼손해 왔던 것"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대변하는 다양한 정당들의 원내 진입에 걸림돌이 하나 제거됐다"고 했다.
보수진영의 소수정당인 자유통일당도 환영 성명을 냈다.
자유통일당은 29일 긴급 성명서를 내고 "거대정당만 살아남는 정치환경에서 다양성이 보장될 수 없는 국민적 비판이 대두되고 있는 현실에서 자유통일당은 헌재 판결 취지를 대환영한다"며 "2024년 제22대 총선에서 자유통일당은 비례대표 투표에서 총 63만3181표를 얻어 2.26%의 득표율을 기록했으나 원내 진입 기준인 3%를 넘지 못해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는데 국회는 지금이라도 자유통일당이 얻은 2.26%에 해당하는 의석수를 배분하라"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적 여망을 받들어, 소수정당의 정치적 진출을 봉쇄하고, 유권자의 진정한 의사를 왜곡하는 불합리한 제도를 개혁하는데 앞장서나갈 것을 천명한다"고 했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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