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A4 종이 크기 수준의 13형 '삼성 컬러 이페이퍼'를 글로벌 시장에 순차 출시하는 것은 단순한 신제품 확대가 아니라, 상업용 디스플레이 시장의 경쟁 축을 '해상도·밝기'에서 '전력·소재·운영 효율'로 이동시키겠다는 전략적 선언에 가깝다. 기존 디지털 사이니지가 전력 소모와 설치 제약, 유지 비용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면, 컬러 이페이퍼는 '화면을 유지하는 동안 전력이 들지 않는 디스플레이'라는 개념을 통해 시장의 전제를 다시 정의한다. 특히 A4 크기, 0.9kg 무게, 8.6mm 두께라는 물리적 스펙은 디스플레이를 더 이상 고정 설비가 아닌 '이동 가능한 정보 매체'로 바꾸는 조건을 갖췄다는 점에서, 종이 포스터와 전통 사이니지의 경계 자체를 허물고 있다.
이번 13형 제품이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디스플레이 기술 경쟁'이 '소재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식물성 플랑크톤 오일 기반 바이오 레진을 적용한 것은 친환경 이미지를 넘어, 디스플레이 제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는 구조적 해법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기존 석유 기반 플라스틱 대비 40% 이상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글로벌 인증기관의 검증을 통해 재활용 플라스틱과 바이오 레진 비중을 명확히 수치로 제시했다는 점은, ESG가 마케팅 언어가 아니라 제품 설계 단계로 들어왔음을 보여준다. 이는 향후 글로벌 유통·리테일 기업들이 사이니지 도입 시 '에너지 효율'뿐 아니라 '소재 탄소발자국'을 구매 기준으로 삼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선제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제품 전략 측면에서도 삼성 컬러 이페이퍼는 하드웨어 단독 경쟁이 아니라, 콘텐츠·운영 솔루션까지 결합한 생태계 확장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컬러 이미징 알고리즘을 통한 시인성 개선, 전용 모바일 앱을 통한 콘텐츠 관리, 그리고 '삼성 VXT'를 통한 기존 사이니지와의 통합 운영은, 소규모 매장부터 대형 유통망까지 하나의 플랫폼에서 관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이는 초저전력 디스플레이라는 하드웨어 혁신이 실제 시장 확장으로 이어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으로, 삼성전자가 단순한 디스플레이 제조사를 넘어 '상업용 콘텐츠 운영 인프라 제공자'로 자리매김하려는 전략의 연장선이다.
향후 공개 예정인 20형 모델과 라인업 확장은 이러한 전략이 실험 단계가 아니라 본격적인 시장 공략 국면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특히 2029년 127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글로벌 사이니지 시장에서, 전력 비용과 환경 규제가 동시에 강화되는 흐름은 컬러 이페이퍼와 같은 초저전력·친환경 제품에 유리한 환경을 만든다. 이미 수량 기준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컬러 이페이퍼를 통해 새로운 카테고리를 선점할 경우, 경쟁의 기준은 '얼마나 크고 선명한 화면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적은 자원으로 오래 운영할 수 있는가'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13형 컬러 이페이퍼 출시는, 그 변화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폴리뉴스 정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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