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산은 적막하다. 나무들은 잎을 모두 떨군 채 가지를 드러내고, 덩굴식물은 말라붙은 줄기만 남겨 바위와 나무를 붙잡고 있다. 겨울 산행길에서 마주치는 덩굴은 대부분 시선을 스치고 지나가는 존재다. 먹을거리로 연결하기엔 지나치게 메마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을 오래 다닌 사람들의 시선은 다르다. 겨울에 드러난 덩굴은 봄을 예고하는 표식이 된다. 어느 골짜기에서 먼저 연해질지, 어느 방향이 햇볕을 더 받는지 머릿속에 이미 지도가 그려진다. 그중에서도 채취 시기가 유난히 짧아 시간과의 싸움으로 불리는 나물이 있다. 바로 '노박덩굴'이다.
노박덩굴은 4월 중순부터 5월 초까지, 길어야 보름 남짓한 기간만 먹을 수 있다. 시기를 놓치면 줄기는 빠르게 굳고 섬유질이 늘어나 식탁에 오르기 어렵다. 산나물 애호가들 사이에서 한 번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하는 나물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길가에 흔해 보여도 얕보면 안 된다, 노박덩굴의 정체
노박덩굴은 노박덩굴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 덩굴식물이다. 전국 산과 들 어디에서나 자라며 양지와 음지를 크게 가리지 않는다. 나무나 바위를 감고 올라가는 성질이 강해 산길 가장자리나 계곡 주변에서 쉽게 발견된다. 덩굴은 10미터 이상 길게 뻗고, 조건이 맞으면 주변을 뒤덮는다.
이름에는 생김새와 성질이 함께 담겨 있다. 노박은 길가나 들판 어디서나 늘 자라 길을 막을 만큼 무성하다는 뜻에서 붙었다는 설이 있다. ‘노상’처럼 ‘항상’이라는 의미가 있는 우리말과도 통한다. 덩굴이 길게 뻗은 모습이 노각과 닮아 붙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한자로는 뱀이 나무를 감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 남사등이라 부른다.
가을이 되면 노란 껍질이 세 갈래로 갈라지며 붉은 열매가 드러난다. 관상용으로 눈길을 끌지만, 식용 가치는 봄철 새순에 집중돼 있다. 뿌리부터 줄기까지 생명력이 강해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며 숲의 빈 공간을 빠르게 채운다. 그만큼 번식력도 강해 조림지에서는 관리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람에게는 귀한 나물이지만, 숲에서는 부담이 되는 존재다.
지금은 못 먹는다, 그래서 지금 알아둬야 한다
노박덩굴은 ‘때’를 아는 사람이 먹는다. 채취 적기는 4월 중순부터 5월 초순 사이, 새순이 올라와 잎이 완전히 펴지기 전이다. 이 시기를 지나면 줄기는 질겨지고 쓴맛이 강해진다.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여도 손으로 만져보면 차이가 확연하다.
채취할 때는 줄기를 살짝 꺾어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힘을 주지 않아도 ‘톡’ 하고 부드럽게 끊어지는 지점까지만 채취한다. 줄기가 휘어지거나 잘 끊어지지 않으면 이미 식용 시기를 넘긴 것이다. 욕심을 부리면 나물 전체의 식감이 망가진다.
무침과 볶음, 가장 많이 먹는 방식
손질을 마친 노박덩굴순은 아삭하면서도 부드럽다. 씹을수록 은은한 단맛과 고소함이 올라온다. 가장 흔한 조리법은 나물무침이다. 물기를 짠 순에 고추장이나 된장, 매실청, 다진 마늘, 참기름을 넣어 무치면 쌉싸름한 맛과 양념이 잘 어우러진다.
기름과도 잘 맞는다. 들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국간장으로 간을 해 볶아내면 고소함이 한층 살아난다. 들깻가루를 더하면 질감이 부드러워진다.
주의할 점도 있다. 노박덩굴에는 미세한 알칼로이드 성분이 있어 생으로 먹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데쳐야 한다. 소금을 약간 넣은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뒤 찬물에 담가 쓴맛과 성분을 우려낸다. 반나절 정도 담가두며 물을 두세 번 갈아주면 떫은맛은 빠지고 구수한 향만 남는다.
짧은 철이 아쉽다면, 말려 두는 선택
채취 기간이 짧은 만큼 말려 두는 방법도 많이 쓰인다. 데친 노박덩굴을 햇볕과 바람이 잘 드는 곳에서 바짝 말리면 묵나물이 된다. 이렇게 준비해 두면 계절에 상관없이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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