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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까지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래 사는 것은 주로 건강한 생활 습관이나 좋은 환경 덕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서 수명의 절반 이상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스라엘 바이츠만 연구소의 우리 알론 교수 연구팀은 사람의 수명에 유전적 요인이 최대 55%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29일(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이는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사람마다 수명이 다른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노화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유전자가 수명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이라면 건강한 생활 습관만으로 노화를 늦추기는 어렵다. 반대로 유전자의 영향이 작다면 유전자를 연구해 노화를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여러 연구에서 사람 수명과 관련된 유전자를 찾아냈지만 병이나 환경, 생활 방식 같은 외부 요인의 영향이 워낙 커서 유전자의 영향만 따로 계산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수명에서 유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인지에 대한 연구 결과들도 제각각이었다.
특히 쌍둥이를 대상으로 한 기존 연구들은 수명에서 유전적 요인이 차지하는 비율을 10~25% 정도로 추정했다. 이 때문에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사는지는 주로 질병, 환경, 생활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수학적 모델과 컴퓨터 시뮬레이션, 대규모 쌍둥이 자료를 활용해 사망 원인을 두 가지로 나눠 분석했다. 하나는 노화나 유전적 질환처럼 몸 안에서 비롯된 내인적 사망 원인이고, 다른 하나는 사고나 감염병 같은 외부에서 비롯된 외인적 사망 원인이다.
분석 결과, 사고나 감염병 같은 외부 원인으로 인한 사망을 제거하면 유전적 요인이 수명에 미치는 영향은 55%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화가 빨리 진행되면 수명도 짧아진다. 이는 기존 쌍둥이 연구에서 제시한 수치의 2배가 넘는다. 즉 사람 수명의 절반 이상은 이미 태어날 때 유전자로 정해진다는 뜻이다.
연구팀이 덴마크, 스웨덴, 미국 등에서 모은 여러 쌍둥이 자료를 분석한 결과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함께 자란 쌍둥이뿐 아니라 따로 떨어져 자란 쌍둥이 자료를 분석했을 때도 외인적 사망을 제거하자 유전적 요인의 영향이 50~55%로 나타났다.
이러한 발견을 뒷받침하는 증거도 있다. 장수하는 친척이 있는 사람은 사망률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또 일란성 쌍둥이는 이란성 쌍둥이보다 두 사람의 수명이 비슷할 확률이 더 높다. 이런 연구 결과들은 장수에 유전적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주요 질환들에서도 유전적 영향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심혈관 질환과 치매는 암보다 유전성이 더 높게 나타났다. 이는 암이 다른 만성 질환보다 외부 요인이나 정상 세포가 암세포로 변하는 우연적인 영향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연구는 왜 중요할까. 수명에서 유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장수와 관련된 유전자를 찾고, 유전자 검사를 통해 위험도를 예측하고, 노화를 조절하는 유전자와 생물학적 과정의 연관성을 밝히는 등 다양한 노화 연구에 힘이 실릴 것으로 기대된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세포 및 분자의학부의 다니엘라 바쿨라 교수와 모르텐 셰이뷔에크누센 교수는 이번 연구에 대한 논평에서 "노화를 다시 해석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연구"라며 "사람의 노화 속도가 진화 과정을 통해 최적화됐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외부 원인에 의한 사망을 적절히 보정하면 사람 수명에 대한 유전적 요인의 기여도가 약 55%까지 급격히 증가한다며 기존 연구 추정치의 2배가 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번 결과는 유전자가 사람 노화의 핵심 요인이며 사람 수명도 다른 동물 종과 비슷한 수준에서 유전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적 요인의 기반이 되는 유전 변이를 규명하는 것이 사람 노화의 근본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과거 100년 이상의 쌍둥이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연구팀이 사용한 쌍둥이 코호트는 주로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들로, 당시에는 사고나 감염병으로 인한 사망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연구팀은 이런 외부적 사망 원인의 영향을 최대한 제거해 순수하게 유전적 요인이 수명에 미치는 영향만 계산했다.
연구팀이 제시한 55%라는 수치는 실험실에서 교배된 야생 생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나온 수명 유전율 38~55%와 비슷한 수준이다. 또 대부분의 사람 생리적 특성의 평균 유전율인 49%와도 유사하다. 이는 사람 수명도 다른 복잡한 형질들과 마찬가지로 유전적 요인의 영향을 상당히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유전적 요인이 55%라는 것은 나머지 45%는 다른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연구팀은 나머지 변이는 생활 습관, 사회경제적 요인, 의료 접근성 같은 환경적 영향과 생물학적 우연성, 유전자 간 상호작용, 후성유전학적 변화 등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의 핵심 통찰은 외인적 사망이 전통적인 분석에서 수명에 대한 유전적 기여도를 체계적으로 가렸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스웨덴 쌍둥이 코호트를 출생 연도별로 나눠 분석했을 때 외인적 사망률이 감소하면서 유전율 추정치가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유전율이라는 것은 특정 집단, 특정 환경, 특정 시점에 적용되는 통계치이며 중력 상수처럼 고정된 값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서로 다른 코호트, 시간대, 환경을 조사한 연구들이 서로 다른 수명 유전율 추정치를 보고한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최근 대규모 가계 분석 연구들은 약 10%라는 낮은 추정치를 보고했는데, 이들 연구는 약 300년에 걸친 자가 보고 자료에 의존했으며 외인적 사망률이 높은 역사적 코호트, 일관되지 않은 연령 기준, 복잡한 배우자 선택 패턴을 포함했다. 여러 지역과 시기의 사람들을 포함하면서 상당한 환경적 이질성이 유입됐고, 이것이 유전적 변이의 추정 비율을 낮췄다는 설명이다.
반면 연구팀은 연령 기준과 외인적 사망을 보정한 뒤 스칸디나비아 쌍둥이 코호트에 초점을 맞춰 더 균질한 환경 조건에서 내인적 수명에 대한 유전적 기여도를 추정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외인적 사망을 보정하면 쌍둥이 및 형제자매 연구에서 사람 수명의 유전율 추정치가 약 55%로 상승하며, 이는 기존 추정치의 2배 이상이자 대부분의 사람 형질의 유전율과 일치하는 수준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유전율의 기반이 되는 유전 변이를 규명하는 것이 사람 노화의 근본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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