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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S/S WALES BO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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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S/S WALES BONNER
2023 S/S WALES BONNER
에르메스 남성복의 미래를 이끌 차세대 디자이너, 그레이스 웨일스 보너. © Malick Bodian

지난 1년여간 패션계의 인사이동은 도미노처럼 전개됐다. 누군가는 자리를 떠났고, 또 누군가는 그 빈자리를 채웠다. 그러나 업계의 시선이 오래 머물던 이름 하나는 좀처럼 호명되지 않았다. 예술성과 상업성, 개념과 완성도를 동시에 축적해온 디자이너, 그레이스 웨일스 보너(Grace Wales Bonner)다. 거의 모든 자리가 채워진 뒤에야 에르메스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선택을 공개했다. 37년간 남성복을 이끌어온 베로니크 니샤니앙(Veronique Nichanian)의 뒤를 이을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그레이스 웨일스 보너를 공식 임명한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통해 차분하면서도 견고한 세계관을 구축해온 그녀는 이번 임명을 통해 처음으로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역할을 맡게 된다.

웨일스 보너의 의상을 입고 2025 멧 갈라에 참석한 루이스 해밀턴. @walesbonner
루이스 해밀턴의 의상 디자인을 위한 무드 보드. @walesbonner

보너는 1990년생으로, 런던 출신 디자이너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한 2014년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브랜드를 론칭하며 패션계에 등장했다. 자메이카계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그녀는 흑인 문화의 정체성, 아프로-아틀란틱 서사, 보헤미안 감성을 영국식 테일러링 구조와 자연스럽게 결합해왔다. 남성복으로 출발한 브랜드는 2018년 여성복까지 확장되며 미학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그녀의 컬렉션은 시적이되 감상적이지 않고, 지적이되 과시적이지 않다. 단기적 유행이 아닌, 시간 속에서 축적된 세계관이 먼저 읽힌다.

아디다스와의 협업을 지속해온 웨일스 보너가 선보인 아디다스 오리지널 2024 F/W 컬렉션. @walesbonner
보스(Bose)와 협업해 테니스 선수 코코 고프와 벤 셸턴을 위한 커스텀 헤드폰을 디자인한 웨일스 보너. @walesbonner

수상 이력은 그녀의 행보를 더욱 또렷하게 증명한다. 2015년 브리티시 패션 어워즈 신진 남성복 디자이너상을 시작으로 2016년 LVMH 프라이즈, 2019년 BFC/보그 디자이너 패션 펀드, 2021년 CFDA 인터내셔널 남성복 디자이너 오브 더 이어에 이르기까지. 2025년 영국 패션협회가 주관한 패션 어워즈에서는 올해의 남성복 디자이너로 이름을 올렸다. 이는 일시적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라 지난 10여 년간 이어진 연구와 실천의 결과다. 보너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은 문화적 하이엔드다. 이는 화려함이나 장식의 밀도가 아니라 시간의 축적과 손의 흔적에서 비롯되는 감각에 가깝다. 비즈와 조개, 자수, 바로크 진주, 유리 비즈 등 수공예적 요소는 그녀의 컬렉션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장식을 넘어 하나의 서사로 기능한다. 2022년 피티 우오모에서 게스트 디자이너로 선보인 2023 S/S 컬렉션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자메이카 시장에서 직접 조달한 황마 자루로 덮은 메디치 리카르디 팔라초, 테일러링과 애슬레틱 요소의 결합, 독일 아디다스 아틀리에에서 수작업으로 완성한 스니커즈까지. 개념과 제작, 미학과 완성도가 동시에 작동할 수 있음을 입증한 무대였다. 아디다스와의 장기 협업은 보너를 대중적으로 각인시킨 또 하나의 축이다. 삼바를 비롯한 협업 스니커즈는 프레피 무드와 문화적 레퍼런스를 절묘하게 결합하며 높은 리셀가를 형성했고, 럭셔리와 스포츠웨어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그녀의 감각을 입증했다. 동시에 그녀는 오스트리아 빈 응용미술 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연구와 교육의 영역에서도 존재감을 확장해왔다.

크리스털 자수로 장식한 오간자 소재에 오스트리치 페더 트리밍을 더한 의상을 입고 2025 멧 갈라에 참석한 FKA 트위그스.@walesbonner
할렘 르네상스 시대의 볼룸 문화와 프랑스 쿠튀르의 유산을 결합해 선보인 FKA 트위그스를 위한 의상 디테일. @walesbonner

브랜드 밖에서 이어온 이러한 행보는 보너의 작업이 단순한 스타일 제안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의 태도이자 관점으로 축적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축적은 그녀의 남성복에서 더욱 분명한 결로 드러난다. 보너가 제시하는 남성성은 과시보다는 절제에 가깝다. 곡선과 여백, 부드러운 실루엣을 통해 정제된 강인함을 드러내고, 젠더의 경계를 흐리는 그녀의 옷은 선언적이지 않게 일상에 스며든다. 이러한 태도는 오랫동안 조용한 럭셔리를 통해 남성복의 기준을 다듬어온 에르메스와도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유럽피언적 헤리티지를 출발점으로 삼되, 하나의 기준에 머무르지 않는 에르메스의 태도는 문화적 레이어를 차분히 축적해온 보너의 작업과 정확한 접점을 이룬다. 보너의 첫 에르메스 남성복 컬렉션은 2027년 1월 파리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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