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임나래 기자] 금융당국이 연체채권의 소멸시효를 관행적으로 연장하고, 부실채권을 매각해 관리 책임을 외부로 넘겨온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이에 따라 연체채권 관리의 중심축이 ‘사후 매각’에서 ‘조기 판단·정리’로 이동할 전망이다. 연체자의 신용회복 기회는 넓어질 수 있지만, 금융권에서는 “관리 기준과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위, ‘끝없는 연체’ 구조 손본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28일 열린 월례 기자간담회에서 개인연체채권 관리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핵심은 ▲연체채권 소멸시효의 기계적 연장 관행 개선 ▲채권 매각 규제 강화 ▲금융기관의 자체 채무조정 활성화다.
특히 채권이 추심기관으로 넘어간 이후 불법·과도한 추심이 적발될 경우, 원채권자인 금융사가 채권 양도 계약을 해지해야 하는 의무를 지도록 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채권을 넘긴 뒤에도 일정 수준의 관리 책임을 지우려는 취지다.
앞서 이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새도약기금 출범식’에서도 “회수 가능성이 없는 연체채권의 소멸시효를 연장해 채무자의 경제활동 복귀를 가로막는 관행은 개선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회사는 연체채권을 회계상 비용으로 처리해 법인세 감면 혜택을 받으면서도, 소멸시효는 연장해 채무자를 장기간 연체 상태에 묶어두는 구조가 반복돼 왔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연체 초기부터 회수 가능성을 판단하고, 채무조정이나 정리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부실채권을 나중에 넘기기보다 발생 단계에서 적극 관리하라는 신호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사후 매각’에서 ‘조기 판단’으로…현장 부담도 커진다
이번 제도 개선으로 연체채권 관리는 ‘매각 후 정리’에서 ‘초기 단계 판단’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갈 전망이다. 연체가 길어지기 전에 채무조정이나 상각 여부를 결정해 장기 관리 부담을 줄이라는 의미다.
다만 현장에서는 현실적인 부담도 적지 않다는 반응이다. 은행권 다른 관계자는 “연체 기간이 길어졌다고 해서 일률적으로 상각 처리하지는 않는다”며 “부분 상환이 이뤄지거나 회수 가능성이 있다면 관리 채권으로 유지하며 상각을 유예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자가 연체된 경우에도 원금 상환을 우선하도록 회수 구조를 조정하는 등 채권별로 탄력적인 관리가 이뤄진다”며 “상각 이후에도 채권 관리에는 인력과 비용이 계속 투입되는데, 대출 재원이 결국 예금인 만큼 소액이라도 회수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초기 단계에서 충분히 관리하더라도, 채무자의 상환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장기 연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한계도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신용회복 기대 커졌지만…‘기준의 공백’은 남았다
최근 일부 은행이 취약계층 특수채권을 감면하는 자체 채무조정 계획을 내놓으면서, 신용회복이 쉽지 않았던 차주들에게 재기의 기회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제도 역시 초기·경계선 연체자에게는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에는 폭언·협박 등 명백한 불법 추심에 대한 기준은 있지만, ‘합법과 과도함 사이’에 있는 추심 강도의 적정 수준이나 채권 매각 이후 원채권자의 관리 책임 범위는 명확하지 않다. 특히 채권이 매각된 이후에는 인수 업체가 실질적인 관리를 맡는 만큼, 제재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은행권 또 다른 관계자는 “추심의 적정 수준이나 매각 취소 요건을 일률적으로 정하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당국 차원의 보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로서는 추심 강도나 계약 해지 기준이 모호한 만큼, 향후 세부 기준이 얼마나 정교하게 마련되는지가 이번 제도 개선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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