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정부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공공의료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전문의 부족으로 응급실 운영이 중단되고, 일부 의료원은 정상 진료 유지마저 어려운 상황이다. 진료 정밀도와 효율 제고를 목표로 한 정책이 빠르게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뒷받침할 인력과 재정 기반은 단계적으로 설계되며 지역 공공의료 체계 전반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올해 권역책임의료기관 17곳을 대상으로 AI 진료시스템 도입에 국비 142억원을 투입할 전망이다. 대상은 중증·고난도 진료를 맡는 국립대병원 중심이며 환자안전 강화와 진단 정밀도 제고, 행정업무 효율화가 목적이다. 심정지 발생 예측, 영상 판독 보조, 의료 문서 작성 자동화 등 상용화된 AI 기술이 도입된다.
AI 기반 진료시스템 도입에 대해 정부는 공공의료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중규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권역책임의료기관 AI 진료시스템 도입과 관련해 “AI 기술은 진료의 정밀도와 환자 안전을 높이는 중요한 수단”이라며 “국립대병원 중심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정부 투자 정책이 현장에서 작동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지방 공공의료원 상당수는 전문의 인력 부족과 재정 부담으로 정상적인 진료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먼저 충남 공주의료원은 지난해 12월에만 세 차례 응급실 운영을 중단, 의료원 측은 야간·심야 시간대 응급진료를 담당할 전문의 확보가 어렵다고 언급했다. 강원 속초의료원도 전문의 공백으로 올해 초 20일 이상 응급실 운영을 중단한 바 있다.
재정 여건 역시 악화되는 분위기다. 강원 속초의료원의 경우 임금 체불과 공사대금 미지급액이 4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만성 적자 구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회계·관리 부담이 누적되면서 의료 인력 이탈 압박도 커지는 모양새다. 의료계와 지역 사회에서는 응급의료 공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진료 공백을 보완하기 위한 대응도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대구의료원은 경북대병원이 비정규직 전문의 16명을 상시 채용해 파견하는 방식으로 인력 공백을 메우고 있다. 채용은 국립대병원이 맡고 진료는 지방의료원이 수행하는 구조로, 전문의 수급의 불안정성이 상시화된 상황이 반영된 운영 방식으로 해석된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이 같은 방식이 단기적인 진료 공백 완화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공공병원의 인력 운용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는 한계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공공의료 인력 확충이 주요 과제라는 점을 전제로 정부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27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확대하고, 증원분 전원을 지역의사제로 선발해 지역·필수·공공의료 분야에 배치할 계획이다. 공공의대와 의대 없는 지역의 신설 의대를 통해 연간 200명 규모의 별도 인력을 확보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다만, 공공의대의 경우 첫 졸업생 배출은 2034년, 신설 지역 의대는 2036년으로 예정돼 있다.
의대 증원 규모와 방식은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정부 산하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는 2037년 기준 의사 부족 규모를 2530~4800명으로 제시, 추계 과정에서 수치가 조정되면서 환자·노동계에서는 정책 판단을 둘러싼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의료계는 추계 방식의 적정성을 근거로 증원 논의에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고, 증원 인력이 지역·필수 의료 현장에 실제로 정착할 수 있을지를 두고도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정책 당국과 연구기관은 의대 증원이 단순한 인력 총량 확대가 아닌 지역·필수의료 인력 확충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의료정책연구실장은 의사 인력 정책과 관련해 “의대 증원은 숫자를 늘리는 문제가 아닌, 증원된 인력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하느냐가 핵심”이라며 지역과 필수의료 현장으로의 유입 구조 설계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정책 추진 일정과 현장 사이의 시차도 확인된다. AI 진료시스템은 올해부터 도입이 시작되며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는 2027년 이후 본격 가동될 예정이다. 의대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에 따른 인력 공급 효과는 2030년대 중반 이후에나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일부 공공의료원에서는 전문의 인력 공백이 발생할 경우 응급실 운영에 즉각적인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울산의 공공의료원 설립 논의는 최근 정책 방향을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된다. 정부는 재정 여건을 이유로 울산을 공공의료원 설립 우선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첨단 제조업과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에는 정책적 지원이 쏟아지고 있으나, 일반 공공의료원 설립은 지방정부 판단 영역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정책 판단이 지역 의료 현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두고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공공의료 혁신이 기술 투자만으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AI가 의료진을 대체하기보다 진료를 보조하는 수단인 만큼, 인력과 재정 기반이 함께 마련되지 않을 경우 지역 간 의료 격차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되기 때문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AI 도입을 위한 인프라는 갖춰지고 있지만, 이를 운영할 의료 인력 확보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며 “공공의료 체계의 안정성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AI 도입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차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의사 인력 확충이 중장기 과제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10년을 기다릴 수 없는 문제”라며 “공공의료는 미래 계획 이전에 현재 작동 여부가 먼저 점검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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