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 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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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 한 사례

문화매거진 2026-01-29 17:24:11 신고

▲ M과의 쌀국수 / 사진: MIA 제공
▲ M과의 쌀국수 / 사진: MIA 제공


[문화매거진=MIA 작가] 
M: 언니 하는 거 되게 많잖아. 멋있어 보여.
나: 그래 보이는 것 뿐이야. (그런 것만 인스타그램에 올리니까)

지금까지 먹어본 쌀국수 중 가장 맛있다고 느낄 만큼 깊은 육수 맛을 음미하며, 어느 쌀국숫집에서 M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스타그램을 포트폴리오 용도로 업데이트할 뿐, 이미지 메이킹이나 마케팅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바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M의 말을 빠르게 받아쳤다. 그런데 가끔 말은 이상해서, 생각을 그대로 옮긴 것 같은 그 말이 또 다른 생각을 불러오며 반론을 제기하거나 질문을 부풀릴 때가 있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렇게 대답했을까.’

하나에 꽂히면 줄곧 그것밖에 생각 못 하는 성향 탓에 당시 내 태도의 원인은 무엇일지 거의 하루 종일 곱씹었다. 내린 결론은, 나는 지금 어딘가 불만족스러운 상황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과연, ‘불만족’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기에 이 상태를 더 정확히 진단할 말을 다시 골라 본다. 이런 문장은 어떨까. ‘나는 지금의 나를 매끄럽게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왜?

N: 작가님 인스타그램을 보면 ‘몸이 몇 개지’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요.
나: 그래 보일 뿐이에요.

M과 대화를 나눈 이틀 후, N과도 비슷한 대화가 오갔다. 이번에도 반사적으로 답하고 생각에 잠겼다. N의 말에는 이만큼의 작업량과 이만큼의 활동이 가능하려면 하나의 몸으로는 부족하다는 추정, 그리고 그 추정이 자연스럽게 성실함이나 열정으로 환원된다는 해석이 담겨 있다. 마땅해 보이지만 이번에도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을 내놓았고, 이틀 전의 여파 때문인지 이 대화 또한 그냥 넘기지 못했다.

집착적으로 분석하기에 이르렀다. N의 말을 뜯어보면 ‘몸이 몇 개지’하는 생각은 실제로 몸이 몇 개일 리 없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 내 삶은 하나의 몸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쓰고 있다는 쪽이 더 정확할 것이다. 말인즉슨 집중력과 체력을 나누고 감정의 여유를 줄이고 회복의 시간을 뒤로 미루는 방식으로 지금의 리듬을 유지하고 있다는 말과도 동의어다. 겉으로 보기엔 큰 문제가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내부에서는 어느 쪽이든 무언가가 무너지고 있을지 모른다.

다 나 같진 않을 것이다. 실제로 여러 종류의 일을 하시는 분께 ‘어떻게 그 모든 일의 컨트롤이 가능한지’ 물어봤을 때 돌아온 답은 ‘내겐 모두 하나이다’였다. 그런 사람도 있다. 분명한 건 지금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를 긍정적으로 승화할 해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가령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먹고 살고 싶었던 꿈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던가.’라며 감탄하는 정도로. 이 문장을 쓰고 보니 꽤 중의적이다. 읽기에 따라 그 ‘얼마나’를 실제로 묻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분명 여기에 다다르기까지 오래 걸린 것 같은데, 아직도 평안하지 못하다면 원인이 무엇인지, 이 원인을 알면 다음엔 만족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더 많은 성과를 바라는 게 아니다. 진실로 깊은 만족을 느끼고 싶다.

이렇게까지 파고드는 이유는 이 문제가 윤리적인 차원과 관련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원하던 현실에 다다랐는데도 기쁘지 않다는 건 그저 내 욕심이 너무 많아서인가 의심이 든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 자체는 괜찮지만 이미 누리고 있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기에 쉽게 불평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기회가 있고 반응이 있고 일정한 성취가 있는데도 공허하다고 말하는 건 어딘가 부적절해 보이고, 그래서 어찌 됐든 감사해야 한다는 말로 적당히 자신을 설득하고 포장한다.

K: 사는 게 지치고 피곤하고 모 아니면 도로 끝장내고 싶어요.
나: 작가님 이런 분이셨어요?

한창 이 문제로 혼자 씨름하고 있을 때 K에게 카톡이 왔다. 겉보기에 나와 작가 경력이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어떤 작가의 토로였다. 평소 대체로 조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그의 공격성이 더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 대화를 시작으로 우리는 나름의 속사정을 와르르 쏟아냈다.

그러니까. 뭘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왜 채워지지 않을까. 몇 권의 책을 내고 몇 번의 전시를 했는데도 왜 ‘모 아니면 도’라는 확실한 결괏값을 염원하게 되는지. 어쩌면 지금의 창작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는 개인은 비슷한 절차를 밟는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나는 그저 하나의 사례라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볼까? 의외로 결과가 비슷할 수도 있다. 

이 머리 아픈 사고 과정을 통해 꽤 멋진 사실을 알아낸 것을 나름의 수확이라 할 수 있을지. 사소하지만 적어 본다. ‘꿈은 이뤄도, 줄어들지 않는다’. 향방 없이 팽창하던 고민은 잠시 브레이크를 건 상태지만, 내가 모든 일을 잘 소화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결론만은 확실해졌다. 최선의 대안은, 최적의 속도를 찾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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