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혜련 작가] DDP에서 열린 ‘장 미셸 바스키아’전을 도슨트의 설명과 함께 감상하며, 나는 한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시간을 넘어 지금 이 시대의 미술계 구조와 그 안에서 청년작가로 살아간다는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전시는 바스키아라는 상징적인 이름을 중심에 두고 있었지만, 나에게 더 강하게 다가온 것은 그를 둘러싼 ‘시스템’과 ‘속도’였다. 도슨트의 설명은 바스키아의 작품 세계뿐 아니라 그가 어떻게 빠르게 스타 작가로 부상했는지를 짚어주었다. 거리에서 출발한 그의 회화는 강렬한 언어와 날 것의 감정을 품고 있었지만, 미술 시장은 그 거침마저 하나의 스타일로 규정하고, 곧바로 가격과 명성의 언어로 번역해 갔다. 그 과정에서 작품은 질문을 던지는 매체이기보다 소유 가능한 가치로 재편되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바스키아의 작품 가격이 급격히 상승한 과정이 결코 작가 개인의 의지나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작품의 가치는 컬렉터와 갤러리, 경매 시장, 미술 제도가 서로 맞물리며 만들어 낸 구조 속에서 형성되었다. 작가는 그 흐름의 중심에 있었지만, 동시에 그 흐름을 통제할 수 없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
이 설명을 들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현재 한국 미술계의 신예 스타 작가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오늘날 ‘유망한 청년작가’라는 호명은 축복이자 부담이다. 빠른 주목과 기회는 작가에게 문을 열어주지만, 동시에 작업의 속도와 방향까지도 외부의 기대에 맞추도록 요구한다. 작품이 충분히 숙성되기도 전에 ‘다음 작업’, ‘다음 시리즈’, ‘다음 가격’이 먼저 논의되는 현실 속에서, 작가는 점점 자신의 언어보다 시장의 리듬에 더 민감해진다.
바스키아의 작품을 마주하며 나는 화면 속에 남아 있는 조급함과 과잉된 에너지를 느꼈다. 반복되는 단어와 지워진 흔적, 불안정한 구도는 마치 더 많은 이야기를 더 빠르게 쏟아내야 했던 한 작가의 시간을 증언하는 듯했다. 도슨트의 설명은 이 모든 것이 개인의 성향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를 스타로 만들고 소비하는 구조의 문제임을 조용히 드러냈다.
이 전시는 나에게 ‘스타 작가가 되는 것’이 과연 모든 작가가 지향해야 할 목표인지 다시 묻게 했다. 빠른 성공과 높은 가격은 분명 매력적인 지표이지만, 그것이 작가의 삶과 작업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답할 수 없다. 바스키아의 짧고 강렬했던 시간은 오히려 천천히 작업할 수 있는 환경과 스스로의 속도를 지켜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 전시는 나에게 ‘스타 작가’라는 이름과 ‘좋은 작가’라는 기준을 동시에 떠올리게 했다. 흔히 스타 작가는 시장의 언어로, 좋은 작가는 작업의 언어로 이야기된다. 하지만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그리고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작품 앞에 서서 나는 이 두 개의 언어가 결코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사실 나는 스타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도 분명히 있다. 많은 사람에게 이름이 알려지고, 내 작품이 활발히 거래되며,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의 여유를 갖고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고 싶다. 부를 일정 부분 가져야 내가 원하는 실험을 두려움 없이 시도할 수 있고, 유명해져야 내 작품이 더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사회 안에서 살아 움직일 수 있다는 현실 또한 부정하기 어렵다. 이는 이상이 아니라, 청년작가로 살아가며 체감해 온 구체적인 조건의 문제다.
동시에 나는 ‘좋은 작가’로 남고 싶다는 마음 역시 놓치고 싶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작가란, 시장의 속도에 가장 빠르게 반응하는 작가가 아니라 자신의 질문을 끝까지 붙들고 가는 작가다. 주목받는 순간에도 작업의 방향을 스스로 점검할 수 있고, 평가와 가격 너머에서 작품의 밀도를 지켜낼 수 있는 작가 말이다. 바스키아의 이야기는 이 두 욕망 사이의 균형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스타 작가가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작가로서 감당해야 했던 속도와 소모 또한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의 작품 속 반복되는 단어와 지워진 흔적, 과잉된 에너지는 단순한 스타일이 아닌, 스타로 호명되는 순간부터 작가에게 부과되는 시간의 압박을 증언하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정리했다. 스타 작가가 되는 경험을 꿈꾸되, 그 경험이 나를 비워내는 방식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주목과 부, 명성을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받아들이되, 그것이 작업의 기준이 되도록 내어주지는 않겠다고. 스타 작가라는 결과보다, 좋은 작가로서의 태도를 먼저 선택하는 일. 그리고 그 태도를 지켜낸 결과로서 스타 작가가 된다면, 그때의 명성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될 것이라고 믿고 싶다.
도슨트를 들으며 감상한 바스키아 전은 나에게 어느 한쪽을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스타 작가와 좋은 작가라는 두 욕망을 동시에 인식한 상태에서 어떤 균형을 선택할 것인지를 묻고 있었다. 청년작가로서 나는 여전히 내 작업이 사회 안에서 유효해지기를 바란다. 더 많은 사람과 만나고, 더 넓은 맥락 속에서 읽히며, 작업이 지속될 수 있는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싶다. 그것이 명성과 주목의 형태로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도 작업의 질문을 놓치지 않는 일이다. 나는 작업을 대신하는 이름이 아니라 작업을 더 멀리 데려다주는 힘으로서의 주목을 선택하고 싶다. 그렇게 오늘도 다시, 나만의 속도로 작업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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