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노묘정 작가] 작년에 드디어 ‘시네마 천국’을 봤다. 워낙 유명한 영화라 OST와 대충의 내용은 알고 있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하게 감상한 적은 없었다. 엄마는 영화를 만든다는 애가 어떻게 그 영화를 안 봤을 수 있냐고 타박했다. 엄마가 이렇게 얘기할 정도면 정말 좋은 영화인 것 같아서 기대감을 갖고 영화관을 찾았다.
‘시네마 천국’은 김영하 작가님이 30주년을 맞이해 직접 여시는 영화제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작가님의 작품에 영향을 끼쳤던 영화들을 골라서 프로그램을 짜시고, 직원들과 함께 모든 작품을 각각의 배급사에 직접 연락해 일일이 상영과 관련된 동의와 파일을 받으셔서 준비하신 걸로 알고 있다. 영화제를 준비하는 프로그래머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게 얼마나 고되고 까다로운 일인지 알기 때문에 더더욱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작가님이 워낙 인기가 많으셔서 1차는 ‘광탈’했는데, 2차 예매가 열려서 10초 만에 예매해 버렸다. 이날 눈이 많이 왔고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어서 기분이 굉장히 설렜다. 제일 좋아하는 영화관인 라이카 시네마에서 제일 기대했던 영화를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여는 영화제에서 본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영화관에 도착해 복복서가 직원분과 책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작가님이 뒤에서 다가오셔서 인사를 해 주셨다. 자기가 직접 아이패드로 그린 그림으로 만든 메모장도 주시고, 연희동에 좋은 공간을 소개해 주는 지도와 각종 엽서를 챙겨 주시면서 안부를 물어보셨다. 마치 어제도 만났던 이웃처럼 그렇게 관객들을 맞이해 주셨다.
몇 분이 지나고 드디어 ‘시네마 천국’을 봤다. 모두가 나에게 눈물을 줄줄 흘릴 거라면서 휴지와 물티슈를 챙겨 가라고 했다. 근데 나는 생각보다 오열하지는 않았다. 그냥 찡해져 오는 마음을 느끼면서 마지막 장면에 토토와 함께 또르르 눈물이 흘렀다. 사실 그 장면보다 알베르토가 토토를 보내 주며 돌아오지 말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더 크게 울었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GV 시간이 이어졌다. 이날의 GV는 함께 대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보통은 관객이 자신이 감상한 영화에 대해 제작진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이날은 작가님이 이 영화를 통해 함께 이야기해 볼 만한 질문을 가져오고 그것에 대해 관객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첫 번째 질문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와 다시 봤을 때 감상이 달라졌는지’였고, 두 번째는 ‘왜 우리는 이 영화를 슬프다고 느끼는지’였으며, 마지막은 ‘자신을 행복한 기억으로 돌아가게 해 줄 만한 것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할머니가 해 주신 고추장 불고기, 애착 이불의 부드러운 촉감과 냄새 등)
작가님이 골라 온 질문도 너무 흥미로웠지만, 함께 영화를 본 사람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거웠다. 전혀 알지도 못하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며 울고 웃고, 그리고 이렇게 깊은 유대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오는 길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영화관을 자주 갔을 때는 누군가와의 유대감이 필요해서 였구나-하는 그런 생각. 사실 요즘은 영화관에 순수한 목적으로 가기보다는 반은 한국 독립영화가 잘되었으면 하는 의무감, 그리고 감독으로서 어떤 점을 배워야 할지에 대한 책임감 반으로 간다. 예전에는 딱히 바라는 바 없이 혼자서 영화관을 자주 갔었는데, 왜 그토록 나는 영화관을 갔었던 건지 그리고 어디에서 위로를 얻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때 나는 너무 외로웠던 것 같다. 이성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외로움이 아니라, 뭔가 세상과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게 했었다. 나는 가능하면 세상에 나를 잘 맞춰서라도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좋은 사람이었는데, 그런 에너지를 쓸 때마다 집에 오는 길이 너무 헛헛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주체가 안 될 때마다 작은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다. 작은 극장은 영화를 볼 때 멀리 떨어져 있는 관객들의 작은 리액션도 다 느껴진다. 같은 장면에서 코를 훌쩍이고, 같은 장면에서 웃고, 또 나와는 다른 장면에서 다른 감정을 느끼는 내가 아닌 타인과 함께 있는 그 시간이 꽤나 큰 위안을 줬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뭐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디자인과 학생이었다. 예술이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면, 디자인은 질문에 답을 해 줘야 하는 사람이라고 교수님이 말씀하셨는데 난 그 어떤 답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내린 결론과 답이 정말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날로 깊어져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 갔다.
그런데 영화를 볼 때면 모든 것이 명확했다. 어렵고 이해가 안 되고 지루한 영화를 봐도 그 인물의 감정선만은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어떤 마음인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려고 애쓰는 시간만큼은 자신도 있었고 즐거웠다. 그리고 그걸 다른 관객들과 함께 나누는 그 침묵의 시간 속에서 연대감을 느낄 때면 세상 한구석 어딘가에도 내가 있을 자리가 존재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요즘 극장이 사라지는 것이 너무 슬프다. 사람들은 이제 함께 무언가를 감상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맞는 것을 따로 보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누군가와 뭔가를 나누면서 시간을 쓰는 것보다 조금 더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고, 남들이 자신의 영역을 해칠 것 같다고 느끼면 언제든 차단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건 나의 조금 과장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점점 사람들이 타인의 지지부진한 감정이나 해결되지 못한 마음을 바라보는 것에 피로감을 느낄 만큼 여유가 없어지는 것 같다. 내가 아닌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선한 본성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에서 나오는 일인데, 계속 사회가 바쁘게만 돌아가고 각박해지는 것이 언제쯤 끝날지 나는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극장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형태가 꼭 옛날을 고수할 필요 없이 또 혁신적인 공간이 나오면 지금과 다르게 극장에 활기가 띨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날이 왔을 때 모든 객석이 꽉 찬 영화관에서 모르는 사람과 함께 울고 웃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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