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고(故)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으로 구성된 이른바 'KH(이건희) 컬렉션'의 첫 해외 순회 전시를 마무리하며 미국 워싱턴 D.C.에서 갈라 디너를 연 것은, 단순한 전시 종료 행사를 넘어 한국 기업이 문화 외교의 주체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세계 최대 문화 복합체인 스미스소니언에서, 그것도 미국의 정치·외교 중심지 워싱턴 D.C.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한국 문화유산이 글로벌 외교 무대의 한가운데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이번 갈라 디너가 열린 스미스소니언 예술산업관은 미국 문화사에서 상징성이 큰 공간이다. 이 장소에서 한국 미술품을 매개로 미국 정·관계 인사, 글로벌 기업 CEO, 문화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점은, 문화가 더 이상 부차적 교류 수단이 아니라 국가 간 신뢰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핵심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 전시가 스미스소니언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한국 미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은 한국 문화의 위상이 질적으로 달라졌음을 방증한다.
갈라 디너 참석자 구성 역시 이번 행사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낸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을 비롯해 노동부 장관,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 공화·민주 양당 상원의원, 주지사까지 아우른 정관계 인사들의 참석은 이 행사가 단순한 문화 이벤트가 아니라 사실상 '민간 외교 무대'로 기능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코닝·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페라리 등 글로벌 산업을 대표하는 경영진이 함께한 것은, 문화가 산업·기술 협력의 신뢰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자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수행한 역할은 더욱 상징적이다. 이 회장은 전시와 만찬을 통해 한국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고 이건희 회장이 강조해온 '수집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사회적 환원'이라는 철학을 직접 설명하며 삼성의 문화적 정체성을 부각했다. 이는 기업 총수가 단순히 경영 성과를 넘어, 역사·문화·가치를 설명하는 '스토리텔러'로 나선 장면으로 해석된다. 특히 6·25전쟁 참전용사들을 직접 언급하며 감사를 표한 대목은, 이번 행사가 문화 전시를 넘어 한미 동맹의 역사적 맥락까지 포괄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번 KH 컬렉션 전시가 거둔 성과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이미 6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고, 하루 평균 관람객 수는 스미스소니언의 기존 유사 전시 대비 2배를 상회했다. 미국의 공휴일인 마틴 루터킹 데이에는 하루 3,500명에 달하는 관람객이 몰렸고, 달항아리와 인왕제색도를 활용한 전시 굿즈는 조기 매진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이는 한국 미술이 더 이상 '낯선 동양 문화'가 아니라, 미국 대중이 자발적으로 소비하고 향유하는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번 전시가 갖는 또 하나의 의미는, 삼성의 역할이 '후원 기업'을 넘어 '문화 플랫폼 제공자'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으로 기획한 전시를 삼성이라는 글로벌 기업이 해외 무대에서 실질적으로 구현함으로써, 공공 문화기관의 자산이 국제사회와 만나는 통로를 제공했다. 이는 국가·공공 영역이 보유한 문화 자산과 글로벌 기업의 네트워크가 결합할 때 어떤 시너지가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KH 컬렉션의 해외 순회는 이번 워싱턴 D.C. 전시에 그치지 않는다. 2026년에는 미국 시카고미술관, 이어 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는 한국 문화유산이 세계 최고 수준의 미술관 네트워크 속에서 장기적으로 소개된다는 의미이며,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지속 가능한 문화 외교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종합하면, 이번 스미스소니언 갈라 디너와 KH 컬렉션 해외 전시는 삼성의 사회공헌을 넘어, 한국 기업이 어떻게 문화·외교·산업을 연결하는 '비가시적 국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다. 반도체와 스마트폰으로 알려진 기업이, 이제는 한국 문화의 품격을 세계에 설명하는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행사는 한국 기업의 위상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이정표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폴리뉴스 정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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