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전효재 기자】 HD현대가 정기선 회장의 리더십 아래 조선·건설기계·에너지 등 주력 사업에 첨단 기술을 접목하며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해상과 육상을 아우르는 디지털 대전환 전략을 추진하고, 첨단 제조와 자율운항을 실체적 기술로 입증하고 있다.
29일 HD현대에 따르면 정 회장은 조선·중공업계의 관행을 깨고 새로운 경영 방정식을 써 내려가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조직 안정과 소통 강화에 주력하고,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무대에서 기술 리더십을 발휘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지난 24일을 기준으로 취임 100일을 맞은 정 회장은 쉴 틈 없는 현장 경영 행보를 이어갔다.
정 회장은 재무적 성과와 관리 중심의 전통적 경영 방식과 달리 현장과 소통을 중요시하는 스타일로 평가받는다. 재계 관계자는 “정 회장은 지난해 사업장에 수차례 방문하고 내부 행사에도 자주 참석하며 직원들과 격의 없이 대화했다”며 “특히 올해 시무식은 임원 중심 행사에서 벗어나 임직원과 함께 진행했다”고 말했다. 수평적 조직 문화와 소통을 강조하는 정 회장의 경영 철학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정 회장은 주요 국제 행사에서 산업계를 대표하는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 최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해 테라파워 빌 게이츠 창업자 겸 회장과 만나 에너지 전환을 논의했고,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 알렉스 카프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와 회동하며 인공지능(AI) 전환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했다.
정 회장의 기술 로드맵은 단계적으로 진화했다. 2022년 미국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쉽 빌더’에서 ‘퓨처 빌더’로 그룹의 본질을 재정의했고, 2023년 CES에서는 바다에 대한 관점과 활용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오션 트랜스포메이션’ 청사진을 발표했다. 2024년 CES 기조연설에서는 무인·자율화, 전동화, 디지털 트윈, 친환경 기술을 산업 전반에 적용하는 ‘사이트 트랜스포메이션’을 그룹 중장기 전략으로 제시했다.
정 회장이 CES에서 던진 화두는 경영 철학과 맞닿아 있다. 정 회장은 2013년 현대중공업으로 복귀하기 전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컨설턴트로 약 2년간 근무했다. 컨설턴트 근무 경험에서의 전략적 사고방식이 그룹 운영에 적용되면서 제조 자산 확대보다 기업 체질 개선과 신사업 발굴, 제조 효율화 등에 주력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 회장은 선박을 많이 수주하고 빨리 만드는 양적 성장을 넘어 기술 격차를 통해 질적 성장으로 나아가겠다는 출사표를 던졌다. HD현대의 미래 좌표도 변화하고 있다. ‘바다의 대전환’을 추구한다는 정 회장의 선언은 제조, 해상, 육상을 잇는 실체적 기술력으로 입증되고 있다.
제조 혁신은 ‘미래 첨단 조선소(FOS)’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선박 설계부터 생산, 인도까지 모든 공정을 디지털로 연결하는 스마트조선소 구축 사업이다.
FOS는 3단계로 구분해 추진된다. 1단계는 설계·생산 경험과 노하우를 디지털화·가시화하는 ‘눈에 보이는 조선소’다. 2단계는 디지털화된 데이터를 연결하고 최적화해 설계·생산에 활용하는 ‘연결-예측 최적화된 조선소’다. 디지털 트윈 기술을 기반으로 현장의 데이터를 가상 공간에 그대로 재현하고, 설계 단계에서 구축한 3D 모델을 곧바로 생산계획과 시뮬레이션으로 연동되도록 한다.
HD현대는 현재 프로젝트 1단계를 완료하고 글로벌 기업과 협력으로 2단계를 추진하고 있다. 팔란티어의 파운드리 시스템을 도입해 전사에 흩어진 데이터와 프로세스를 하나로 연결하고, 지멘스와의 협력을 통해 설계와 생산을 하나로 잇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구축하고 있다.
마지막 3단계는 지능형 자율 조선소다. AI가 축적된 데이터를 학습하고 로봇과 장비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제어하며, 품질과 안전까지 스스로 관리하는 완전한 자율화 단계다. HD현대 관계자는 “2030년 최종 단계가 완성되면 조선소의 건조 능력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선박 건조 현장의 생산성을 30% 높이고, 건조 기간도 30% 단축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해상 혁신은 자율운항 전문 자회사인 아비커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아비커스의 AI 기반 대형 선박 자율운항 솔루션 ‘하이나스’는 각종 항해 장비와 센서에서 제공된 정보를 융합해 선박이 최적 항로와 속도로 운항할 수 있도록 안내·제어하는 시스템이다.
아비커스는 2022년 대형 선박의 대양 횡단 자율운항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미국 휴스턴에서 출항해 한국까지 사람의 개입 없이 자율운항으로 항해했다. 지난 15일에는 국내 최대 해운사 HMM의 40척의 선박에 하이나스를 공급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자율운항 기술이 만들어내는 변화는 항해를 보조해 연료를 절감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운항 과정에서 축적되는 방대한 항해 데이터가 설계와 건조, 유지, 정비까지 이어질 수 있다.
육상 혁신은 무인 건설장비를 통해 시동을 건다. HD현대는 건설장비의 원격 조종 수준을 넘어 완전 자율화를 목표로 삼았다. AI 기반 운용 시뮬레이션, 센서 데이터 분석, 자율 주행 경로 최적화 알고리즘 개발, 장비 간 협업 통신 시스템 등을 병행 개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현장 전체 작업을 실시간으로 조율하는 ‘스마트 건설현장’ 구현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정 회장은 과거 철판을 용접하고 조립하는 하드웨어 중심의 조선 산업에 AI와 소프트웨어를 불어넣고 있다. 이제는 미래 전략 방향이 실제 성과로 이어져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조선업 호황 국면에서 다음 도약을 어떻게 이뤄낼지가 관건이다.
정 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시장이 인정하는 독보적인 기술과 제품을 만들어 기술 초격차를 유지해야 한다”며 “그룹이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AI·자율운항 등 미래 신사업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과들이 나타나고 있는 만큼 원천 기술을 조기에 확보하고 이를 실제 제품에 적용해 상용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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