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원 아카이빙] 낯선이의 언어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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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원 아카이빙] 낯선이의 언어③

문화매거진 2026-01-29 10:12:1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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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원 아카이빙] 낯선이의 언어②에 이어

 

▲ 무한한 디지털 공허를 상징하는 회색 체커보드 무늬의 UV 그리드와 붉은 조명으로 채워진 복도 공간 /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 무한한 디지털 공허를 상징하는 회색 체커보드 무늬의 UV 그리드와 붉은 조명으로 채워진 복도 공간 /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문화매거진=정서원 작가] 언어라는 것이 반드시 말이나 글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보통 언어를 소통의 도구로 이해하지만, 사실 언어는 세계를 구분하고 질서를 세우는 방식에 더 가깝다. 무엇을 안쪽에 두고, 무엇을 바깥으로 밀어내는지, 무엇을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무엇을 설명 불가능한 것으로 남겨두는지가 곧 언어의 작동 방식이다. 

‘적군의 언어’는 바로 그 구분선이 무너진 상태를 보여준다. 이 전시에서 언어는 명확해지기보다 흐려지고, 의미는 고정되기보다 미끄러진다.

로하스의 작업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가 이 혼란을 감정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위기나 종말, 공포 같은 단어를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이미 그런 상태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작품들은 경고처럼 보이지 않고, 선언처럼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지금을 드러낸다. 인간이 더 이상 세계를 전부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계속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전시장 안에서 인상적으로 느껴지는 지점은 작품과 관객 사이의 거리가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대상은 멀리서 볼 때는 구조물이나 장치처럼 보이다가, 가까이 다가가면 관리되지 않은 잔여물처럼 인식된다. 반대로 자연물처럼 보이던 요소에서 인공적인 흔적이 뒤늦게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이 변화는 작품이 의도적으로 ‘속임’을 택했다기보다, 관객이 어떤 위치에 서 있느냐에 따라 인식이 달라지도록 열려 있기 때문에 생긴다. 로하스는 작품이 하나의 의미로 수렴되기보다 관객의 움직임과 시선에 따라 계속 다른 상태로 남아 있기를 택한다.

이러한 태도는 그가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과도 이어진다. 로하스는 기술을 인간이 완전히 통제하는 도구로 상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디지털 시스템과 자동화된 장치들 역시,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별개로 점점 설명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쓰고 있지만, 동시에 그 흐름에 적응하며 반응하는 쪽에 더 가깝다. 이 전시는 그 상황을 비판하거나 해석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모든 관계의 중심에 서 있지 않은 상태를 그대로 두고 체험하게 만든다. 관객은 이 공간 안에서 결정을 내리는 존재라기보다, 변화에 따라 위치를 조정하는 존재로 남는다.

▲ 인류 종말 이후의 모습을 유기·무기물 복합체로 표현한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의 대형 설치작 '상상의 종말 Ⅲ'(2022년) / 사진: 아트선재센터 제공
▲ 인류 종말 이후의 모습을 유기·무기물 복합체로 표현한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의 대형 설치작 '상상의 종말 Ⅲ'(2022년) / 사진: 아트선재센터 제공


이 지점에서 ‘적군의 언어’는 예술의 역할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예술은 언제나 이해를 돕는 장치였을까, 아니면 이해를 지연시키는 장치였을까. 로하스의 작업은 분명 후자에 가깝다. 이 전시는 빠른 해석을 거부하고, 설명을 미루며, 관객이 불확실한 상태에 머무르도록 만든다. 그러나 그 머묾은 공백이 아니라, 사고가 재정렬되는 시간에 가깝다. 익숙한 언어가 작동하지 않을 때,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감각하게 된다.

결국 작가가 다루는 것은 새로운 기술이나 미래의 상상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세계를 대하는 태도다. 이해되지 않는 것을 너무 빨리 배제하지 않고, 설명할 수 없는 상태를 실패로 규정하지 않는 태도. 이 전시는 그 태도를 훈련시키는 공간처럼 작동한다. 관객은 이곳에서 무엇을 배워서 나가기보다는, 무엇을 쉽게 판단하지 않게 된다.

전시장을 나서며 드는 생각은 단순하다. 세계는 이미 복잡해졌고, 모든 것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언어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더 강력한 설명이 아니라, 설명 이전의 상태를 견디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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